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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교회를 아십니까?] 17 본보 통해 보는 한국교회 그 때 그 모습

이윤자 취재국장
입력일 2012-03-27 수정일 2012-03-27 발행일 1996-09-01 제 2018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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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9월 1일 - 복자찬가

『장하다 복자여 주님의 용사여

높으신 영광에 불타는 넋이여

칼아래 쓰러져 백골은 없어도

푸르른 그 충절 찬란히 살았네

무궁화 머리마다 영롱한 복자시여

승리에 빛난 보람 우리게 주옵소서』

최민순 작가, 이문근 작곡의 복자찬가(福者讚歌)를 모르는 한국 천주교회 신자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 복자찬가는 1984년 김대건 신부를 비롯한 1백3명의 한국순교 복자들이 한꺼번에 성인품에 오르면서 제목부터 「순교자 찬가」로 바뀌었다. 성가 내용에서도 『장하다 복자여』는 『장하다 순교자』로, 『복자시여』는 『순교자여』로 수정이 되었다.

「복자찬가」는 1951년 9월1일, 복자성월에 제작된 천주교회보 2면 상단에 처음 선을 보였다. 이제는 고인이 된 한국교회의 큰 별, 최민순 신부가 노랫말을 쓰고 이문근 신부가 곡을 붙인 걸작 중의 걸작이 바로 「복자찬가」였다.

유추해 보건데 아무런 설명도 없이, 해설도 없이 갑자기 천주교회보에 등장한 「복자찬가」는 당시 처음 발표된 신곡이었고 그 성가가 그대로 천주교회보에 게재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당시 복자찬가는 1925년 79위 복자가 탄생한 이래 26년 만에 발표된 관련 성가로 당시 신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선물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복자찬가는 68년 24명의 순교자가 추가로 복자품에 오름으로써 자랑스런 성가의 하나로 자리를 굳히게 된다.

그 복자찬가가 순교자 찬가로 제목이 변경된 것은 참으로 경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1925년 한국에 첫 복자가 탄생한 이래 근 60여 년 만에 성인이 탄생함으로써 얻어진 값진 결실의 산물이기 때문이었다.

복자들이 성인품에 오르고 그 노랫말이 일부 수정되는 과정 속에서 물론 아쉬운 부분은 남아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는 아직도 많은 순교자들이 있고 그분들 역시 가경자 복자 그리고 성인이라는 최대의 영광을 안겨드려야 할 분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복자찬가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복자들의 영광을 위해 그 이름 그대로 존속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어쨌든 지금 우리는 79위 복자 중 한 분으로 84년 시성의 영광을 안은 김대건 신부 순교 1백50주년의 해를 맞아 갖가지 기념행사를 지내고 있다. 한국 순교자들의 대표 성인이자 한국 성직자들의 대 주보(主保)이신 김대건 성인의 순교 1백50주년을 지내면서 다시 부르는 복자찬가, 아니 순교자 찬가는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건 신부 순교 1백50주년의 해에 맞는 순교자 성월, 우리는 김대건 성인과 그 동료 순교자들이 남긴 커다란 삶의 궤적을 우리의 것으로 되살려 내는데 우리의 힘과 마음을 모으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한 몸을 헐어서 백두산 모으고 선혈을 쏟아서 동해를 이루어 무궁한 신앙의 나라를 닦으신 공 하늘에 영원히 빛나리』를 노래한 최민순ㆍ이문근 두 신부의 「복자찬가」를 우리의 삶속에서 실천하는 고귀한 작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윤자 취재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