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 가톨릭 문학산책] 18 신 고전파 시인 - 프랑시스 잠

이규식ㆍ안젤로ㆍ한남대 불문과 교수
입력일 2012-03-26 수정일 2012-03-26 발행일 1996-07-28 제 201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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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사랑에서 신앙의 은총으로…, 문체의 장식 배제… 소박한 어휘 사용 
유유자적한 목가시인의 면모 “물씬”
삶의 주변ㆍ일상에서 아름다움 도출
섬세한 감수성… 아이처럼 단순 “특징”
프랑시스 잠이 시를 쓰던 시대는 프랑스 문학사에서 실로 다채롭고 혼란스러운 시대였다. 보들레르에서 비롯된 상징의 미학이 벨를렌느, 랭보에게서 절정을 이루며 만화경처럼 펼쳐졌던 19세기 후반기가 저물고 20세기가 시작되자 그 화려한 빛은 시들어 어느덧 가냘픈 흔적만을 남기게 되었다. 이 시기에 이르러 일부 시인들은 상징주의 쇠락의 원인이기도 하였던 지나친 기교와 난해성을 완화하는 한편 고전적 순수성을 도입한 신 상징주의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또한 낭만주의 서정성을 다시 가미한 신 낭만주의 같은 움직임도 일어났다. 이외에도 각기 새로운 경향을 추구하여 잡다한 문학사조가 범람하였는데 이른바 나튀리슴의 경우 앞선 시대 고답파의 냉담, 몰개성과 상징주의의 결점을 모두 거부하고 생명, 자연, 사랑, 노동, 영웅심 등을 찬양하면서 건강한 시적 상상력의 원동력을 회복하려고 노력하였다. 또한 개인의 정서보다는 집단, 도시, 군중, 국민 등 전체적 생활을 노래하면서 유대감과 상호이해의 미덕을 실천하려한 전일주의가 두드러진다. 그리고 상징주의의 기법과 난삽함을 거부하고 익살맞은 기지, 농담조를 수용하는 순박한 감동의 환상주의 등이 상징주의 쇠락의 대체세력임을 주장하였지만 그다지 큰 영향력을 끼치지는 못하였다. 더구나 이 무렵 현역장교의 국가기밀 누설 여부에 관련된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를 뒤흔들며 지식인, 예술가, 문인들의 현실참여를 첨예하게 부추기면서 사회적 사명, 예술과 민중의 접근 등이 지대한 관심사로 떠오르게 되었다. 갖가지 논쟁, 합종연횡의 문단세력, 소란스러움과 격양된 목소리속에서 우리는 한마리 새의 지저귐같은 천진한 한 시인의 목소리가 신기할 정도로 그 안에 섞여 있는 것을 알아보게 된다.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1868∼1938). 그는 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고 시의 형식과 근원을 쇄신시키려는 임무를 스스로에게 부과한 시인이었다. 이를테면 잠주의(Jammisme)로 부를 수 있는 그의 문학관은 이러하다. 시인은 나름대로의 시세계가 개화되기 이전에 하나의 공식이나 틀에 갇혀버리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참된 시인이라면 간직해야 할 영원한 숙명이라는 것이다. 단순하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쉬운시를 주장하였고 문학과 웅변을 분리시키려 했다. 앞선 세대의 낭만주의 문학의 과도한 서정 토로와 감정 노출에 대한 반동이기도 했지만 그 결과 시 창작에 있어 가식없이, 문체의 장식을 배제한 채 소박한 어휘와 이미지 사용에 이끌리게 되었다. 낡고 진부한 표현을 「새롭게」단장하고 거기에 생명의 옷을 입히는 능력에 잠의 문학성은 근거한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늘 사용하는 어휘들을 자신의 작품안에서 괄목할 만큼 새롭게 기적적인 신성함으로 바꾸는 마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잠의 작품을 처음 대하면 대개 놀라게 된다. 이른바 시라는 문학의 속성이 내포하는 여러 고정관념, 이를테면 언어의 압축, 비유, 상징, 관념적 이미지 등에 길들여진 관계로 순수한 자연이라든가 원초적 은총 등을 시에서 대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러나 잠의 시를 계속 읽으며 바야흐로 거기에 익숙해지면 나머지 것에서는 인위적이며 부자연스러운 꾸밈새가 눈에 띄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물질문명이 만들어 놓은 인공성과 복잡함, 거대한 도시문화의 격동에 따른 흥분과 열광이 삶을 시시각각으로 수축, 이완시키는 현대사회 구조속에서 잠은 이와 정반대로 유유자적한 목가시인의 면모로 나타난다. 프랑스 문학에서 적지않은 시인작가들이 전원을 배경으로 목가문학을 시도한 바 있지만 그들 대부분의 신분은 고관귀족이나 궁정인 등 상류계층이었다. 작품에서는 짐짓 우아하고 순수한 목동 행세를 하지만 그들의 정서와 감수성은 어디까지나 특권계급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잠은 시종 자신의 영혼이 꽃, 과일, 흐르는 물, 살랑이는 바람, 산들로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또한 자기가 노래 부르는 땅에 발디디고 사는 모든 선량한 사람들의 넋이 자신에게 이입되기를 바랐다. 내면세계의 소통과 교류에 있어 잠의 영혼은 어린아이처럼 단순 소박하였다. 그러나 떨리는 섬세한 감수성이 거기에 함께 하였고 그 바탕에 있어 드러난 외양보다 훨씬 심층적이었다. 그리하여 시를 쓰는 잠의 기법 또한 복합구조를 보여준다. 그 복합성은 그 누구보다도 내밀하고 원초성에 닿을 수 있는 정교함을 드러낸다. 천진함과 맞물리면서 잠의 독특한 내면의 울림이 자연스럽게 퍼져나가게 하였다.

오, 주님 제가 당신께로 가는 날에는 축제에 싸인듯한 들판에 먼지가 이는 날로 골라 주소서. 제가 이 세상에서 그랬듯이 대낮에도 별들이 빛날 천국으로 가는 길을 마음대로 선택하고 싶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큰 길 위로 가겠습니다. 그리고 동무들인 당나귀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날 따라오게. 푸른 하늘의 온순한 친구들아, 날쌔게 귀를 움직여 파리와 쇠파리, 꿀벌 등을 쫓는 사랑하는 가여운 짐승들이여…. 제가 당신의 천국 성스러운 물에 몸을 구부려, 영원한 사랑의 맑은 거울에 겸허하고 다사로운 가난을 비추는 당나귀들처럼 저도 되게 해주소서.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가기 위한 기도」에서)

잠의 시에는 특출하거나 기발한 주제가 눈에 띄지 않는다. 늘 마주하는 삶의 주변, 그 일상성에서 아름다움을 이끌어 내는 재능이야말로 천진스러움속에서 어린아이의 시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집안은 장미로 가득차…」, 「아기가 죽지않게 하기 위한 기도」, 「순박한 아내를 가지기 위한 기도」,「성지 주일」,「평화는 숲속에 깃들고」 같은 시 제목이 보여주듯 문명의 번잡함과 욕망의 분출을 멀리하는 때묻지 않은 감수성은 가령 어린이가 당하는 고통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

저 아기를 저렇듯 죽지않게 해주시는 것이 무슨 큰일이겠습니까. 저 아기를 살려 주시면 내년 화창한 성체 성혈대축일에 장미를 바치지 않겠어요. 그러나 당신은 너무 좋은 분이시니 장미처럼 발그레한 뺨에 푸르른 죽음을 놓는 것은 주님이 아니시지 않습니까.(「아기가 죽지않게 하기 위한 기도」에서)

흡사 어린아이의 동시같은 표현마저도 온전한 설득력을 지니게 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모순과 부당함에 마주한 시인의 인식이 드러내 보이는 순수와 발상의 전환 때문이다. 비평가들 중에는 더러 잠의 희귀한 천진성이 가식된 것이라는 부정적 시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잠의 삶과 문학연보는 열심한 가톨릭 신자로서 문학을 통하여 사랑의 마음과 눈길을 구체화 시켜왔음을 증거하고 있다. 실상 잠의 시세계 배후에는 어느 시기까지 한가닥 불안과 우울이 깔려 있었다. 그것은 모름지기 시인의 천부적 고독의 비애이기도 하고 영원 불멸을 향한 동경이기도 하다. 이 길을 통하여 그는 신앙으로 향하는 정신의 여로를 일구어 나갔다. 평생의 친구 시인 폴클로델의 열성적 도움과 어느 주일 보르도 성당에서의 영적 체험으로 신앙에 몰두하게 된다. 이전에는 무의식적 가톨릭 신자였던 그가 이후 시와 신앙을 조화시키는 종교시인이 된 것이다. 잠은 타고난 감상주의자였다. 그와 함께 그는 프랑스 시인 가운데 뛰어난 리얼리스트였다. 새들이 지푸라기며 진흙같은 보잘것없는 부스러기들을 모아 둥지를 만들 듯 시를 썼다. 생활주변에서, 일상의 언저리에 산재한 더없이 평범한 삶의 단편들을 엮어 탁월하고 경탄스러운 시편을 창작한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조롭고 범용한 나날의 생활 언저리에서 깨끗하고 겸손한 시가 이루어진다.

그 아름답던 여름 날 가난한 삶이 나에게는 그 모든 존엄성을 나타내 보인듯 했다. 나의 의자곁으로 슬프고 말없지만 건강한 농부들이 어둡고 신선한 그늘속으로 수레를 밀고 지나갔을 때 나는 그들에게 아무말 않고 머리만 숙였다. (「광속에서」에서)

잠은 1868년 스페인과 맞닿아 있는 프랑스 서남부 오트 피레네지방 투르네에서 태어났다. 그는 오르테스라는 소도시에 오래 살았는데 이 곳에서 공증인 사무소 서기로 일하면서 시를 발표하였다. 또한 거기서 차츰 이름이 알려지고 39세에 뒤늦게 결혼, 아이들의 출생과 성숙기 재능이 활짝 꽃피는 것을 경험한다. 보르도에서 중등교육을 받은 기간 이외에는 시골마을에 살면서 익숙한 자연, 친근한 전원 풍광과 은밀한 교감을 나누며 속삭이는 듯한 음조로 이를 노래하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새벽 삼종기도에서 저녁 삼종기도까지」(1898)에서는 시인과 자연의 대화를 통하여 신의 계시를 감득하고 있다.

초가집의 벽

돌과 고사리, 송악이 어우러진 틈사이 수채구멍

지금 주님

오, 나의 주님, 나의 주님

참새가 우짖는 푸른하늘 앞에서 당신께 기도드립니다. (「성지주일」에서)

다소 조심스러웠던 신앙표현이 1906년 「천국에 있는 숲속의 빈터」에서부터 적극적인 고백과 권면으로 옮아가게 되었다. 정형시율격을 배제한 독특한 자유시 속에서 모방할 수 없는 재능은 종교적 감흥과 전원의 감동이 절묘한 조화를 보이는 「그리스도교 농경시집」(1919)에서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계절에 따라 변모하는 자연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농부들의 삶을 그리면서 그들의 노고가 의미하는 종교적 가치를 고양 하였다. 실로 소박하고 단순한 아름다움의 전형이 형상화되었다. 잠의 시세계는 그러한 까닭에 주님앞에서 주고 받는 시인-신자와 자연의 대화라고 요약할 수 있다. 습관적인 속내 이야기 나눔을, 잠은 공허한 수사와 가식을 배제하고 순간순간 가슴에 와닿도록 이끈다. 여기에서 배어나오는 진실과 겸양, 순수한 심상은 우리의 교만이나 어리석음, 용렬함을 너그럽게 감싸 안아주는 주님의 현존을 항상 새롭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 미사때 영성체후 우리몸에 오신 주님을 흠숭할 때 오르간 반주에 맞추어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주송자의 묵상인도가 바로 잠의 소박한 신앙시라고 말할 수 있다.

주님, 당신은 저를 사람 가운데서 부르셨습니다. 자 여기 제가 있습니다. 저는 괴로워하고 사랑합니다. 당신께서 제게 주신 목소리로 말했고 당신께서 저의 어머니 아버지에게 가르쳐 주시고 또 그들이 제게 전해준 말로 글을 썼습니다. 저는 지금 아이들의 놀림속에서 고개 숙이는, 무거운 짐을 진 당나귀처럼 길을 가고 있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곳으로, 원하시는 때에 나아가렵니다. 삼종기도 종소리 울립니다.(「새벽 삼종기도에서 저녁 삼종기도까지」서문)

이규식ㆍ안젤로ㆍ한남대 불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