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백민관 신부가 엮는 신약성서 해설] 384 티베리아스 바닷가에 나타나심(Ⅱ)

백민관 신부ㆍ가톨릭대 교수
입력일 2012-03-23 수정일 2012-03-23 발행일 1996-07-28 제 2013호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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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오른편에 그물을…”
인간의 힘ㆍ재주만 믿지 말라는 교훈
요한21, 4∼14

제자들은 밤새껏 애를 썼지만 고기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베드로의 고기잡이가 신통치 않았는가? 어부로 생계를 꾸려온 사람이었다면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복음서에는 그의 고기잡이가 늘 낭패를 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베드로가 사람 낚는 어부로 불림을 받을 때에도 그는 고기잡이를 하고 있었고 밤새껏 그물질을 했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고백하였다. 이것은 베드로가 앞으로 하느님의 어장에서 자기의 힘과 재주만 가지고는 성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교훈으로 받아들여진다.

오늘도 밤새껏 힘들인 성과도 없이 날이 새었다. 실망하여 배를 저어 돌아오고 있었는데 저 멀리 바닷가에 홀연 예수께서 서 계셨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새벽 여명에 날이 어두워서 알아보지 못했을 것 같지만 복음서는 그들이 아직 주님을 알아보는 눈이 어두워서 몰랐다는 것을 강조하려고 한다.

그들의 배가 여울에 와 닿았을 때에 예수께서는 정다운 말씨로 불렀다. 『친구들!』이 말은 어른이 다 큰 손 아래 사람을 정답게 부를 때 쓰는 말로서 원어를 직역하면 『어린 아이야』이다. 이렇게 정답게 부르시고는 『뭐 좀 잡았소?』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이 낯선 새벽 손님을 생선을 사러 온 사람인줄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제법 어부의 말투로 『잡긴 뭘 잡아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물을 배 오른 편에 던져 보시오. 고기가 잡힐 것이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하라시는 대로 그물을 던졌다. 그랬더니 고기가 얼마나 많이 잡혔는지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 말씀에 주님의 사랑을 받던 제자(요한)는 한 2년 전에 있었던 비슷한 상황을 생각하였다. 밤새도록 그물질을 했지만 잡지 못했을 때 『좀 더 깊은 곳에 나아가 그물을 치라』는 말씀이 생각났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쳐다보았더니 이 낯선 사람은 다름 아닌 주님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베드로에게 『주님이시다』라고 외쳤다.

요한이 예리한 통찰력을 가졌다면 베드로는 신속한 행동파이다. 주님이란 말을 듣고 베드로는 작업복의 가벼운 옷차림을 가리기 위해 겉옷을 걸쳐 입었다. 그리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부활날 새벽에 막달라의 마리아의 말을 듣고 헐레벌떡 무덤으로 달려가던 베드로의 모습 그대로 이다. 빨리 주님께로 가기 위해서다. 베드로가 그물을 치던 곳은 육지에서 1백미터쯤의 거리였다. 나머지 제자들은 무거운 그물을 끌며 배를 저어 육지에 닿았다.

배에서 내려보니 그분은 땅에 숯불을 피워놓고 그 위에 생선과 빵을 굽고 있었다. 밤새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고 있던 터라 그들을 무엇보다도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그 분부 말씀을 금방 실행에 옮기기 위하여 배로 돌아가 동료들과 함께 고기가 가득찬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렸다.

그물에 든 고기는 1백53마리였다. 이렇게 많은 고기가 들어 있었는데도 그물은 터지지 않았다. 여기서 153이란 숫자는 중요한 뜻을 가진다. 그물 가득한 고기의 마리수를 일일이 헤아리는 어부들은 없다. 그러니 이 숫자는 실제로 잡힌 고기를 헤아린 수가 아니고 다른 뜻을 지닌 상징적인 수이다. 153에 대하여 여러 가지 주장이 있지만 가장 그럴듯한 해설은 어부인 사도들이 낚은 사람들의 총체라는 것이다. 그물이 터지지 않았다는 것은 교회는 그 안에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하나이다 라는 뜻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침을 들라고 말씀하셨는데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초생교회의 전례적인 뜻을 가진다. 제자들은 이미 이분이 주님이신 것을 알아차렸다. 더 이상 『누구십니까?』라고 물을 필요가 없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까이 가셔서 빵을 집어 주시고 또 생선도 집어 주셨다(요한 6,11 루가 24,30이하 대조).

백민관 신부ㆍ가톨릭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