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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 평신도 - 순교자 이양등 베드로와 벗들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2-03-20 수정일 2012-03-20 발행일 2012-03-25 제 2788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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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 함께한 벗들 순교 때까지 서로 격려
죽령교우촌에서 함께 생활한
이양등·김종륜·허인백 3인
124위에도 나란히 이름 올려
이양등·김종륜·허인백이 함께 묻힌 묘소.
경상도 울산 죽령교우촌(현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의 회장이었던 이양등 베드로. 그는 생업을 이어가기 위해 꿀 장사를 하면서 열심히 수계생활을 했던 이다.

하느님의 종 124위에 올라 있는 이양등에게는 어려운 가운데에도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서로 권면한 친한 벗들이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를 피해 죽령교우촌으로 이주해 온 김종륜(루카)과 허인백(야고보)이다.

양반 집안에서 태어난 김종륜은 충청도에서 경북 상주, 언양 등을 거쳐 이곳에 왔고, 1860년 경신박해 당시 언양에서 체포됐다가 고초를 겪고 석방된 허인백은 죽령교우촌에서 나무그릇을 만들어 팔며 생계를 이어갔다. 이들은 현재 이양등과 함께 하느님의 종 명단에 나란히 올라 있다.

병인박해가 막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비교적 안전했던 죽령교우촌에서 이들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지켜나갔지만, 2년 뒤인 1868년 포졸들이 마침내 이곳을 찾아냈고 얼마 되지 않아 교우들과 함께 이양등도 체포됐다.

경주로 압송돼가는 동안 이양등과 벗들은 용기를 북돋아주고 서로의 권면을 잘 받아들여 순교를 결심했다. 실제로 이들은 경주 진영에서 모진 문초와 형벌을 받았어도 천주교 신자임을 고백하고 굳건하게 신앙을 증거했다.

동료들과 함께 울산으로 이송된 이양등은 이곳에서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고 신앙을 증거한 뒤 사형선고를 받았다. 이후 군대지휘소가 있는 장대(현 울산시 중구 병영동)로 끌려가 신앙생활을 같이 했던 허인백, 김종륜과 함께 참수형으로 순교했으니 1868년 9월 14일의 일이었다.

순교 당시 이들은 다른 순교자들처럼 십자 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 이름을 크게 불렀다고 하며, 이양등과 김종륜의 시신은 형장까지 따라온 허인백의 아내 박조이가 거두어 비밀리에 안장했다.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