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나는 왜 냉담했나] <21·끝> 종합/모두가 나서야 할 때

전대섭 기자
입력일 2012-03-20 수정일 2012-03-20 발행일 1996-07-14 제 2011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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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원인 분석/그 예방을 위한 기획 
친교와 일치가 살아있는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자
인간적 신뢰회복·제도개선 등 시급
지난해 11월 본보가 기획 보도를 시작한 냉담원인 분석과 예방을 위한 기획「나는 왜 냉담했나」시리즈가 이번호로 막을 내린다. 그동안 등장했던 다양한 냉담사례들을 종합해 보고 예방 및 냉담자들의 회두를 위한 처방을 찾아본다.

소위 냉담교우, 혹은 쉬는 교우들의 원인을 찾아 분석해 보고 사목적 차원의 대안을 모색하는 작업이 중요하지만 결코 쉽지않다는 것이 직접 그들을 만나고 취재해 본 결과 더욱 분명해졌다.

냉담의 요인이 대부분 복합적이어서 특정 범주에 넣어 분류하기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다만 크게 구분해서 교회 내외적인 요인과 신앙심 결여에서 오는 원인, 그리고 가정문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겠고, 이를 다시 세분해서 다양한 원인과 그 대책 또한 끄집어낼 수는 있었다.

우선 그동안 취재대상이 됐던 냉담자들을 원인별로 구분해 보면, 「본당생활」에서 오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7명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이 신앙교육을 포함한「가정문제」가 4명이었고, 교회행정 (본당행정)에 관한 문제가 2명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교회법적인 문제에 연루된 사례가 있었고 영세후 방치된 경우, 금전거래에 얽힌 사연, 죄의식을 이기지 못해 냉담한 경우 등 다양한 냉담 유형이 표출됐다. 물론「본당생활」에 얽힌 사연도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원인들이 나열될 수 있겠다.

그러나 형태는 달리 했을지라도 이들이 한결같이 지적한 것은 바로 우리 교회가「친교와 일치가 살아있는 사랑의 공동체」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좀 막연하긴 하지만 진정으로 복음적인 환경, 예수 그리스도와 한 형제자매로서 끈끈한 정과 신뢰가 살아있는 공동체를 만나게 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이를 가로막는 장애요소로 교회 대형화에 따른 무관심 소외감 친교상실 등이 가장 많이 거론됐다. 특히 본당내 단체간 폐쇄성을 지적한 이가 의외로 많았다. 『기껏해야 친목단체 수준에 머물기 쉽고 끼리끼리 만나는「게토화」가 위험수위에 도달했다』는 항변이었다. 『교회가「이익집단화」되어 간다』는 성급한 주장도 나왔다.

이 가운데는 사목자와의 불화가 냉담에 빠진 요인이 된 사람도 있고, 사목자의 독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태도가 신앙에 회의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들은 성직자와 평신도간에 격의 없는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원했고 가장 바람직한 사목자상으로는「기도하며 인자한 사제」「인내롭고 온유한 사제」를 꼽았다.

아들 혼배문제로 본당을 찾았다가 실망만 안고 돌아왔다는 김근일씨(가명)는 『가톨릭교회의 행정이 관료주의적 공기업의 이미지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며 하소연했다. 그는『세상에 열린 교회로서, 봉사하는 교회로서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서는 좀 더 탄력적이고 인간적인 교회행정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본당 교구 어디를 문의해봐도 본인의 교적을 찾을 길이 없고 자상하게 안내해 주는 이조차 없어 포기했다는 한동일씨(가명)경우도 역시 교회행정의 사각지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듯 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이미연씨(가명)는 개종신자들을 위한 재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해 관심을 끌었다. 이씨의 경우에서「신자만들기」에만 급급해온 교회의 근시안적인 대응이 문제로 드러났다. 그녀는 단체간 두터운 벽과 성직자 수도자를 비롯한 신자들의 무관심이 상상외로 심각했다고 고백했다.

사업상 반복되는 윤리적인 문제로 고민하던 김정호씨(가명)는『흑백논리 식으로 죄에 빠진 인간을 사정없이 질타』하는 본당신부의 강론을 듣고는 성당을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아직도 신앙생활과 죄의식 사이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고 털어놨다.

교회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교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제도적 개선에 앞서 구성원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교회공동체 내에서 참된 친교와 봉사를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대화노력을 통해 사목자와 신자간 신뢰를 회복하고 편견을 불식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현행 예비자 교리교육 기간과 방식, 교재 등을 과감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각 지역에서 다양하게 시도된 방법들을 비교 분석해보는 자리도 유익할 것이다. 영세후 지속적인 교육기회가 주어져야 함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무엇보다 교구차원에서 냉담자 문제를 연구하고 대처할 수 있는 전담기구의 설치를 이젠 고려해 봐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상시 상담역할만으로도 상당한 효과를 거둘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본 기획을 연재하면서 『냉담자들을 두둔할 우려가 있다』는 뜻하지 않은 반대 의견이 제기돼 애로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당초 이 기획이 교회의 치부를 드러내고자 한 것은 아니다. 특정인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기획의 의도상 칭찬보다는 비판이 앞서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지 않을까. 발전도 건전한 비판이 있을 때 가능하리라고 본다. 교회구성원 모두의 관심과 분발을 기대해 본다.

전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