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나는 왜 냉담했나] 20 돈부담에 열성식어 그만···

김상재 기자
입력일 2012-03-19 수정일 2012-03-19 발행일 1996-06-30 제 2009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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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원인 분석/그 예방을 위한 기획
각종 기부금 너무 많은듯
가난한 사람 부담없이 다닐수 있어야
소도시에서 자그마한 식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전길호(가명·52세)씨.

전씨는 함께 가게일을 보는 아내와 함께 대학을 다니는 두 아들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막내딸 뒷바라지에 일생을 보낸 평범한 가장으로 심약한 성격이지만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하고 살 정도로 한없이 착한 사람이다.

전씨는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고등학교를 다닐때까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지만 고교졸업후 대도시로 나가 혼자 직장생활을 하면서 냉담을 하다 결혼과 함께 다시 신앙을 찾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전씨는 결혼후 10년쯤 지나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지금의 식품점을 내 생계를 꾸려가며 성당일도 열심히 했다고 한다.

『도시의 삭막함이 싫었습니다. 성당에서도 가난한 자신이 아이들 보기도 민망했구요』

고향으로 돌아온 전씨는 아이들의 교육비가 별로 들지 않은 중학교때 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지냈고 성당에서도 소위 몸으로 때우며 즐거운 생활을 했다.

『그때만 해도 다 어려운 시절이라 큰 어려움이 없었지요. 성당규모도 작고 교무금도 현금이 없으면 꿀 한통, 쌀 한말 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고향이 현대화 되기 시작하면서 본당 살림살이도 커졌고 전씨의 본당에서 분가된 본당만 2개일 정도로 주변의 모든 것이 빨리 변했다.

이와 함께 전씨의 가계는 아이들의 진학과 함께 더욱 궁핍해졌다.

두 아들의 대학진학, 딸아이의 고등학교 입학과 함께 엄청난 교육비의 감당에 전씨 부부는 늘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고 좋아하던 담배도 끊었다.

그러나 그런 경제적인 어려움보다 전씨가 요즘 앓고있는 문제는 다름아닌 자신의 신앙문제다.

전씨의 신앙적 갈등의 계기는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온 각종 교회 기부금.

전씨 부부가 냉담 전까지 가입한 신심단체는 4개. 매달 고정적으로 내는 교무금과 헌금 그리고 신심단체 회비에 거의 한주일 건너 내야하는 2차 주일헌금 등 각종 기부금이 전씨의 마음을 옥죄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전씨 본당에서 새성당을 지어 분가 시킬때 내야 했던 2배의 교무금과 신부님 면담 그리고 성전건립 추진위원회의 독려 등이 많은 부담을 안겨 주었다.

『다 제가 못난 탓이고 돈이 원수죠. 돈 때문에 성당에 나가기가 두려운 신앙심도 부끄럽고요』

전씨는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못했다고 한다.

이런 전씨의 푸념에 취재 도중 내내 말없이 옆에 있던 전씨의 친구는『성당에 각종 기부금이 근래에 와서 부쩍 늘어난 것이 사실입니다. 저희 본당도 본당 분가때 교무금의 두배를 내야 했고 심지어 교육관에 비치할 선풍기 등의 각종 물품도 들여놓을때마다 본당예산으로 충당하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에게 봉헌하기를 바라는데 조금 심하다는 생각이 들때도 많습니다』라고 거들었다.

전씨의 경우 각종 성당일을 하면서 회비나 행사경비 그리고 신자들 간의 술자리 등에서 자신의 한 달 용돈을 거의 다 사용했다고 한다.

전씨는 그러고도 계속되는 각종 기부금은 신앙을 떠나서 가난한 자신을 자꾸 되돌아보게 했다고 한다. 전씨는 1년전부터 냉담아닌 냉담에 빠져있다.

『누가 돈 내라고 한 것도 아니고 돈 때문에 성당에 안나가는 걸 알면 모두가 펄쩍 뛰겠지만 솔직히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한두번 성당일에 빠지게 됐고 여기까지 온거죠』

가난한 사람도 마음 편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전씨는 『기왕 돈이 쓰여져야 할 것이면 너무 본당건물 같이 물질적이고 외적인 것 보다는 영성적이고 교육적인 분야에 사용되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15년전 도시를 또나 고향으로 올 때가 자꾸 생각난다는 전씨의 말을 떠올리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동안 전씨 가게 앞의 넓은 신작로가 너무 황량해 보였다.

김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