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광복 50주년 특별기획] 한국 천주교회의 어제 오늘 내일 36 - Ⅵ 한국 가톨릭교회 사회개발 및 복지사업 5 여성복지

이현숙ㆍ임상사회복지사ㆍ서울사회복지회
입력일 2012-03-19 수정일 2012-03-19 발행일 1996-06-23 제 2008호 16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소외 여성 인간성 회복에 특별한 관심 필요
법적인 불평등 해소 노력과 전문가 양성 요청
해외 여성단체와의 연대 및 체계적 연구 시급
어려움 함께 나눌 “전문 상담창구 확충” 현안
여성문제와 여성복지

여성문제는 사유재산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계급불평등 현상만큼이나 인간의 역사에서 오래된 문제이다. 몇 년 전 한국을 방문한 필리핀 여성 신학자 헬렌 그레암 수녀는 「성서 안에 나타난 가정폭력」이라는 여성사목 세미나에서 『유교적인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한국 가정은 가정폭력을 남들에게 이야기하기가 어렵고, 또 폭로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천주교 신자들은 그런 것에 대해서 더 참아야 하고,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더욱 표면화되지 않는다. 수도자, 성직자들 특히 종교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이 가정폭력으로 희생당하는 여성들을 대할 때 이처럼 참으라고 하는 경향이 많다』고 하면서 문제의 정확성을 인식하기보다는 가부장적인 사고에서 죄의식만을 조장하는 잘못된 종교교육이나 사회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 성서의 인간관은 남녀 성차별을 타파한 평등을 선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비롯한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여성경시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과정 속에서 사회복지의 한 분야인 여성복지는 처음에는 모자복지, 부녀복지라는 이름으로 미혼모, 가출여성, 빈곤모자가족, 윤락여성 등 불우여성을 대상으로 하였으나, 1980년대에 들어와서 성차별 문제가 이 분야에서 다루어지면서 여성복지의 용어로 변화되어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여성복지는 부녀복지에 비해 여성해방운동이라는 사회상황과 남녀평등을 달성하려는 현대여성들의 욕구를 반영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변화와 여성복지

한국의 초창기 여성사목의 태동은 1791년 신유박해때 사회풍습에서 탈피하여 주문모 신부에게 영세한 후 심한 박해로 인하여 감옥에 갇힌 교우들을 돌보다가 자신도 감옥에 잡혀 갇히는 몸이 되어 순교한 강완숙의 활동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유교적 봉건사회에서 남녀평등을 바탕으로 한 신앙심으로 「명도회」의 최초의 여회장이 되어 과부와 동정녀들을 공동체로 구성하여 조직적인 전교활동을 펼치고 이웃에 대한 형제애를 실천하였던 것이다. 여러 차례의 박해로 고초를 당하던 당시 교우들은 버려진 아이들을 모아 신자들의 가정에 위탁 양육하고 과부나 배고픈 이들과 함께 나누는 구빈행위를 실천적 덕목으로 활동하면서 끝까지 굴하지 않고 박해를 이겨 나갔다. 이러한 일을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1854년에는 프랑스 선교사 메스테르 신부의 도움으로 「영해회」를 설립하여 박해시대때 근대적인 아동복지활동의 효시를 이루었다. 신앙의 자유가 묵인되자 천주교회는 곧 복지사업의 새로운 형태인 고아원과 양로원을 설치 운영하여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인권을 되찾아 주었고 사랑의 실천으로써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에게도 구제와 보호를 충실히 하였다. 그 뒤로 개화기의 사회복지는 민중계몽운동 중심으로 아동과 노인의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고, 일제시대에 이르러서는 많은 젊은 여성들이 일본군의 위안부로 끌려가는 등 일제의 만행이 극에 달하였으나 교회는 소외된 여성들에 대한 활동 뿐만 아니라 대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해방 이후 교회의 사회복지활동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전쟁미망인사업을 비롯하여 아동복지사업, 구라사업, 의료복지사업 등이 활발히 전개되었으며 이러한 외원에 힘입어 전재민 구호에 큰 기여를 하였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의 사회복지사업은 대회 의존적인 경향을 강하게 띠게 되어 자주적 자립적 복지활동의 추진에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다고 조광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그 뒤 민족의 분단과 함께 60년대의 본격적인 산업화 과정을 겪은 근현대사의 흐름은 가정과 사회 속에 있어서 여성의 인간화를 저해하고 예속과 억압의 질곡으로 몰아왔다. 천주교의 여성복지는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와 때를 같이 하여 60년대 이후 열악한 환경과 저임금으로 시달리는 여성노동자들을 위한 노동 사목활동이 주류를 이루었고, 70년대에는 본당이나 수도회 등에서 청소년 근로자를 위한 야학과 의무교육을 받지 못한 부녀자들을 위하여 문맹퇴치운동을 실시하였으며, 80년대에는 미혼모들과 윤락여성을 위한 시설보호와 직업훈련사업을 전개하였다. 90년대에는 매 맞는 여성들의 쉼터운영과 상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천주교의 여성복지활동 중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것은 1989년에 가톨릭 사회복지회가 중심이 되어 「가톨릭 여성복지 사목위원회」를 조직함으로써 비로소 본격적인 여성문제인 윤락여성, 미혼부모, 가정폭력, 에이즈와 알콜문제 등 소외받은 여성들의 인권과 복지 향상 등 인간성 회복을 위한 구체적인 노력을 보이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것이다.

여성복지 현황과 문제

1996년도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가 펴낸 「시회복지편람」에 의하면, 여성복지시설의 수는 모두 17개로 장애인복지기관 1백9개와 노인복지기관 68개와 청소년복지 43개 등에 비하면 다른 복지 분야에 비해 열악함을 알 수 있다. 이는 정부의 부녀복지사업의 미비한 예산배정과 정책부재의 비율과 일치한다고도 볼 수 있다. 천주교 여성복지기관의 종류를 보면, 미혼모 보호 및 직업교육 상담기관, 그리고 윤락여성의 일시보호와 선도사업, 학대받는 여성을 위한 쉼터 운영, 가출부녀자보호, 파출부 교육파견사업, 직업훈련, 매매춘여성 상담 및 보호사업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정부의 위탁사업은 부산과 대구, 춘천, 청주 등의 지방에서 수도회에 의해 운영되는데, 대체로 윤락여성이나 미혼모 및 입양 아동의 일시 보호소나 직업훈련시설이다. 그밖에 나머지 시설들은 무인가 시설이지만 중간의 집 형태로 일시 보호와 치료, 교육과 예방의 지역운동의 차원의 소규모 인원의 운영을 하고 있다. 이는 다른 사회복지단체나 여성단체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천주교 사회복지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중에서 서울대교구에는 용산이나 영등포, 이태원 등 윤락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일시보호소 형태의 소규모 쉼터와 매 맞는 여성을 위한 상담소까지 모두 8개로 여성복지활동은 대체로 대도시에 편중되고 있으며, 지방도시에는 정부의 위탁사업을 대체로 많이 하고 있으나 중소도시일수록 가부장문화의 뿌리가 깊어 더 많은 욕구가 있다고 본다. 특히 마산교구의 경우 일찍이 여성의 문제에 눈을 떠 1991년에 「여성의 쉼터」를 운영하여 교회내 가정폭력 피해자의 보호와 예방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부산교구도 현재 이러한 여성들의 문제에 대한 예방과 치료를 위한 상담과 일시보호 쉼터를 준비 중에 있다. 서울대교구는 지난 1989년에 여성을 위한 복지사업과 불우여성의 인권보호와 복지향상을 꾀하고 서로간의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여성복지 종사자들이 모여 「가톨릭 여성복지 사목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이들은 매월 정기 모임을 통하여 현장생활의 나눔과 정보제공, 「성서 안에 나타난 여성의 역할」을 비롯하여, 수차례의 「가정폭력 세미나」로 서울과 지방으로 여러 차례 순회강연을 하였고, 「AIDS세미나」를 연속으로 열어 감염자에 대한 대책과 예방적 측면에서의 사목적 대책을 논의하는 등 소외된 여성에 대한 교회와 사회의 역할을 강조하여 새로운 문제에 대한 대응과 교회의 관심을 촉구하였다. 그밖에 정신대 문제와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과 공청회 참가, 그리고 미군 범죄근절을 위한 한미 행정협정의 개정을 위한 여성단체들과 연대활동을 하고 있으며, 해외 학자와 활동가들을 초청하여 정보교환과 함께 교류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1992년 학대받는 여성을 위한 「여성의 쉼자리」가 마련되고 그 다음해에 가정폭력 상담전문의 「화해의 집」상담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천주교의 여성복지활동의 특징은 관주도형의 대규모 보호시설보다는 정부의 혜택이 못 미치는 가난하고 소외된 여성들을 찾아 현장 지역 속에 함께 살면서 일시보호와 상담, 직업훈련, 생활교육 등으로 사회에 나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배우며 자립기반을 위한 각종 교육훈련,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여성에 대한 무관심으로 모금과 후원이 부족하여 환경이 열악하고 전문가도 부족한 형편이어서 이에 대한 사회와 교회의 적극적인 지원이 요구되고 있다.

여성복지 전망과 제안

그동안 여성복지활동은 요보호여성에 대한 선별주의적 대상 선정과 보완적 모델에 입각한 사후치료적 성격이 더 강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복지는 사회정책의 한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일반여성을 포괄하여 보편적이고 제도적인 예방차원의 여성복지로 발전시키고, 성차별로 인한 불평등의 보호를 중요하게 다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여성의 존엄」에서 『여성들은 인류가 매우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는 시기에 지대한 세력과 영향력과 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복음의 정신으로 무장된 여성들이 인간성의 상실을 막는데 대단한 공헌을 할 수 있다고 본다』고 시대의 징표로서 여성 사도직의 중요한 역할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교회와 우리사회가 수행해야 할 여성복지의 전망과 과제를 간략하게 제시할 수 있겠다.

첫째, 소외받은 여성의 인간성 회복을 위하여 교회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랫동안 전통적인 가부장제와 대가족제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저버리고 살아온 여성노인들, 그리고 열악한 근로환경 속에서 노동에 매달려야 하는 근로여성, 외국인 노동자, 농촌 여성, 윤락 여성, 미혼모, 정신대 할머니, 빈민여성과 학대받는 여성 등 사회적으로 무시와 무관심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위하여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제도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데 노력해야 할 것 이다.

둘째, 여성의 법적인 불평등 문제의 해결에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부장제의 골간인 가족법에 있어서 상속세나 재산분할 청구, 호적입적과 각종 비현실적인 남녀차별의 보수적인 규정에 대한 개정과 이해가 필요하다. 또한 남녀고용평등법과 근로기준법의 방조로 야기되는 조기정년과 결혼퇴직, 육아휴직제, 성차별의 피해와 불평등한 취업구조, 승진과 대우 등 많은 문제가 일반 사회는 물론 우리 교회 종사자 등에도 크게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제도적인 뒷받침이 조속히 이루어져 불이익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여성사목과 여성복지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며 국내외 여성단체와의 연대를 꾀하고 자원의 개발과 서비스의 전달을 위하여 이를 전담할 수 있는 주교회의 산하단체나 교구 및 전국 차원의 기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교회 여성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렴하고 전달하는 대사회적인 창구를 마련하여 세계화에 걸맞는 적극적인 사목활동을 펴 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 여성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전문 상담창구가 더 많이 있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교회 여성으로서 가질 수 있는 심리적, 정서적 고민들이 너무나 많은데 비해 쉽게 자신의 문제를 내어 내놓을 수 있는 곳은 극히 미비하다. 특히 부부문제나 자녀문제, 그리고 낙태나 교회법에 따른 혼배문제, 재혼과 별거, 이혼, 가정폭력 등 교회의 가르침에 대해서 갈등을 가진 여성과 가족들의 적극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 가족치료나 장단기 상담치료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본당에 사회복지사나 전문 상담가를 배치하고, 지역 상담센터를 두어 항시 그들을 도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여성복지 전문가의 양성이다. 현재 여성복지를 비롯한 교회의 특수사목은 대부분 외국인 선교사에 의해 여성복지활동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순수한 한국인의 정서로 그들을 이해하고 함께 할 전문가가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여성 스스로도 시대적 소명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능력을 개발하여 존엄과 권리를 향상시켜 더욱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현숙ㆍ임상사회복지사ㆍ서울사회복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