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 가톨릭 문학산책] 17 스페인 신비주의 문학의 거두 - 십자가의 성 요한

나인자ㆍ교수ㆍ대구 효가대 외국어대학 서어서문학과
입력일 2012-03-19 수정일 2012-03-19 발행일 1996-06-02 제 200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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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ㆍ신앙 어우러진 신비시 “백미”
프랑스 상징주의 문학에 큰 영향 
색채감과 음악성 탁월… 서정미 돋보여 
철학ㆍ신학적 분석을 문학에 가미, 영혼 정화ㆍ하느님과 인간의 일치 추구

십자가의 성 요한은 스페인의 아빌라 지방의 폰타베로스에서 1542년에 태어났다. 몰락한 귀족집안 출신으로 그의 세속명은 후안 데 예페스 이 알바레스였다. 그는 스물두 살 되던 해에 후안 데 산토 마티아라는 이름으로 메디나델 캄포의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갔다. 이미 성자로서의 삶을 말해주듯, 그의 생활은 매우 엄격했고, 살라망카 대학에서 루이스 데 레온과 멜초르 카노같은 유명한 스승들을 모시고 철학을 공부했다. 1567년 스물다섯 살에 사제로 서품됐고 바로 그 해에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착수했던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를 만나 함께 일하게 된다.

첫 번째로 개혁 가르멜 수도원을 두루멜로에 세운 후부터 십자가의 성 요한이란 이름으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그 후 계속해서 여러 수도원이 세워지게 된다. 그가 이렇게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주도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사람들은 그를 고발하여, 1577년 톨레도수도원에서 여덟 달 동안 감금되기도 했었다.

성 요한은 그의 생애 후반을 스페인의 남부 안달루시아에서 가르멜 수도회의 중요 직책들을 맡으며 수도원의 창설 작업을 계속했다. 1591년 우베다에서 선종했고, 1675년 복자로, 1726년 성인으로 시성되었다. 교황 비오 11세는 1926년 그를 교회박사-그리스도 초기의 학덕이 높은 신부의 칭호-로 포고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진정한 시인으로서의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전기를 쓴 작가들은 그가 고독을 사랑했고, 별이 빛나는 밤이면 명상에 잠기곤 했다고 전한다. 그의 서정적 작품들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 주며, 그의 섬세한 애정과 정신적 기품을 보여주고 있다. 극도로 섬세한 지적 감성에 합쳐진 그의 자질은 신앙심이 매우 깊고 훌륭한 체험과 학식을 지닌 것으로 성녀 데레사도 인정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매우 혹독한 시련을 견딜 줄 아는 그 불굴의 의지는 그가 얼마나 강직한 남성적 기질과 영웅적 덕망을 지닌 사람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성 요한의 작품량은 많지 않지만, 그의 폭넓은 종교적 세계의 범위를 보여준다. 그가 가장 즐겨 읽은 책은 성경이었지만,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을 완전히 이해했고, 성인 베르나르와 독일과 플랑드르의 신비주의자들, 그리고 성녀 데레사 같은 국내외의 핵심적 신비주의 전통에 대해서도 정통했다.

그는 또한 하느님을 절대적 미(美)로 생각하는 플라톤 사상도 접했다고 한다.

16세기 스페인의 신비주의 문학가의 두 대가(大家)로 성녀 데레사와 십자가의 성 요한을 흔히 꼽는다. 성녀 데레사가 주로 산문에서 대중적인 표현으로 신비주의를 표현했다면, 성 요한은 주로 시에서 더 이름을 떨쳤다. 그의 작품은 신비주의 문학에 철학적, 신학적 분석을 가미한 것으로서 난해한 요소가 많아 17세기까지 출판되지 못했다.

그는 신비에 관한 교리를 하나의 독립된 체계로 확립했는데, 근본 이념은 내적(內的)인 기도에 최고의 가치를 부여하여 하느님에 대한 영혼의 정화, 하느님과의 완전한 합일에 있었다. 그 자신이 지상의 부를 경시하고, 하느님의 계시, 섭리에 의한 삶을 주장하였지만, 지나친 종교심에 빠져 인간의 이성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사상은 인간이 이성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인정하여 이성적인 신비주의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거의 모든 교리는 그의 시 「어두운 밤」에 집약되어 있다. 신비주의 문학에서 이 이미지는 새로운 것은 아니었으나, 성 요한에 의해서 완전히 독창적인 것으로 새롭게 창조되었다.

사물들을 구별하지 못하는 밤은 그에게 영원함을 불러일으키고, 그 밤에서 현세의 감각적인 것을 거부하는 어떤 상징을 본다. 어두운 밤에는 또한 하느님이 인간을 정화시키기 위해 보낸 가혹한 시험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면 그의 시 「어두운 밤」에 나타난 그의 신비주의 사상을 살펴보자.

열렬한 사랑으로

고뇌하는 어두운 밤에,

오, 행복한 행운이여!

이미 정적 속에 묻혀있는 집을

나는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왔다.

어둠 속에서 안전하게

감추어놓은 은밀한 사다리를 통해

오, 행복한 행운이여!

어둠 속에서 나홀로

이미 정적 속에 묻혀있는 집을.

스페인 가톨릭 신비주의 문학에서 성 요한이 이룩한 업적은 기존에 이미 알려져 있던 하느님과의 만남에 있어 「어둠」내지 「밤」의 개념을 세분화시킨데 있다. 하느님을 만나는데 있어서의 수행 과정을 그 이전의 많은 신비주의자들도 어둠으로 표현하곤 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은 이 「밤」의 개념을 「능동적인 밤」과 「수동적인 밤」으로 구분했다. 능동적인 밤이란 자신의 세속적인 욕망을 벗어버리는 금욕적 자세를 가리킨다. 이것은 신비주의의 세 단계 중 첫 번째인 「정화의 길」에 해당된다.

위의 시에서 「나」 곧 성 요한이 모두가 잠자고 있는 한밤중에 자기 집으로부터 몰래 빠져나가는 능동적 자세가 보이고 있다.

행복한 이 밤에

아무도 나를 못 본 채 은밀히,

나를 인도하는 불빛은 없지만

나는 내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빛을 보았네.

이 빛이 나를 인도하였네.

대낮의 햇빛보다 더 환하게 나를 인도했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서

나를 잘 알고 있는 분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성 요한에 따르면 모든 세속적인 욕망을 벗어버리는 것으로 하느님과의 합일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수동적인 밤을 제시하는데,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마음 비우기」, 즉 욕망 그 자체를 비우기이다. 욕망을 억압하기는 쉬워도 욕망 그 자체를 그만두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성 요한은 수동적인 밤이 훨씬 어둡고 고통스런 밤임을 이야기한다.

위의 시에서 우리는 그의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대낮의 햇빛보다도 더 밝은 마음의 빛에 인도되어 하느님이 계신 곳으로 가는, 신비주의의 두 번째 단계인 「계시의 길」을 볼 수 있다. 하느님의 존재를 인식하고 각성하는 단계라 할 수 있다.

정화의 단계를 통해 세속적 고통에서 벗어났지만, 육체의 억압은 마음을 극단적으로 강화시키기 때문에 수행자들은 정신적 쾌락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하느님께 이르기 위해서는 이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마음을 제거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수동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다시 말해 마음을 놓아버리는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 자세를 터득해야 하느님과 만나고, 성 요한이 말하는 평온한 밤을 만나는 것이다.

나는 정지된 채 이성을 잃고

사랑하는 님에게 얼굴을 기대었다.

모든 것이 멈추었고 하얀 백합꽃 사이에

나의 근심 놓아둔 채

나의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겼다.

오관(五官)이 정지된 채, 하얀 백합처럼 순결한 영혼의 상태에 하느님을 만나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신비주의의 마지막 단계인 「합일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성 요한은 「정화의 길」 끝에 있는 「감각의 밤」, 그리고 「계시의 길」끝에 있는 「영혼의 밤」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수동적인 두 밤에 영혼은 고독과 체념으로 인한 슬픈 감정과 무서운 시련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를 극복하게 되면 새로운 빛으로 향한 길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하느님은 모든 문제에 해결책을 갖고 있는 것이다.

성 요한의 다른 시 「영혼의 노래」에도 그의 신비주의 문학의 표현이 많이 보인다. 구약성서의 「아가서」에서 영감을 받아썼다는 이 작품에서 시인은 사랑의 비유를 통해 신비주의의 과정인 정화, 계시, 합일을 묘사하는데, 즉 남편을 찾는 아내의 갈망, 행복한 해후, 그리고 신비적 합일 안에서 영혼은 전에는 경시되던 자연 속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

내 사랑하는 님은

산과 한적한 숲이 우거진 계곡들이며

기이한 섬들이고,

속삭이는 강물이며

부드러운 공기의 휘파람 소리어라. (중략)

오, 수정같은 샘이며,

은빛 나는 너의 얼굴에

내 마음에 그려진

보고픈 두 눈이

돌연히 떠오른다면.

색채감과 음악성이 뛰어나고 감동과 이미지에 도취된 서정미가 돋보이는 시이다. 성 요한에게 밤의 이미지는 신비주의 수행상의 밤의 개념 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고도의 상징성을 띠고 있다.

그에게 있어 밤의 이미지는 고통스러우면서도 동시에 달콤한 밤이다. 님을 찾아 떠난 여인이 샘가에서 님의 눈동자를 목도하는 장면이 위의 시에 보인다. 즉 신비체험에 빠진 것이다. 여기서의 샘의 실재는 자신 안의 샘, 즉 시인 마음 속의 하느님의 존재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십자가의 성 요한의 문체는 극도로 심화된 표현력으로 점철되어 있어 난해한 이미지, 상징들이 많이 나타난다. 그러면서도 우아하고 명쾌한 흐름이 뒤섞여 스페인 서정시의 높은 단계를 이루고 있다. 특히 「어두운 밤」에 나타나는 시인의 새로운 삶을 위한 상징적인 죽음으로서의 밤의 이미지, 즉 어둠의 심연에서 능동적 정화를 거쳐 하느님의 은총의 손길로 상승하고 신성을 나누어 갖게 되며 진정한 합일의 신비체험을 겪는 밤의 이미지를 통해, 그의 그리스도적 실재에 관한 견해를 살펴볼 수 있다. 곧 하느님은 인간의 변화를 원하시며, 그리하여 그 인간이 하느님에 의해 변화된 영혼으로 하느님 자신과 본질적으로 하나가 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이룩한 시적 전통은 스페인의 현대 시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고, 세계문학 상으로는 프랑스의 상징주의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나인자ㆍ교수ㆍ대구 효가대 외국어대학 서어서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