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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날 특집] 자살… 장기매매… 반생명적 사회풍토 끝은 없나?

우재철 기자
입력일 2012-03-19 수정일 2012-03-19 발행일 1996-05-26 제 2004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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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설정해 놓은 가정의 달, 생명의 날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 사회에는 인간생명의 존엄성에 도전하는 많은 사건들이 연일 계속되고 있다. 특히 자살과 장기매매 등 잠시 위탁된 생명을 지니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일들이 빈번하게 자행되고 있고 우리 스스로는 그러한 반생명적인 현상에 무디어진 채 공범자로 전락해 가고 있다. 가정의 달이자 교회가 정한 두번째 맞는 생명의 날을 맞아 가톨릭신문사는 요즘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고 교회가 관심을 가져야 할 부문인「청소년의 자살」과 「뇌사인정에 따른 장기매매」를 중심으로 특집란을 마련, 반생명적 현상들을 극복해 낼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찾아 보기로 했다.

■ 뇌사입법과 장기매매

장기매매 방지 안전장치 필요

한해 수백건의 장기 암암리에 거래

브로커들 활개… 보완책 마련 시급

공신력 있는 장기나눔 기구 조직과 활성화 요청

뇌사(腦死)를 사망으로 인정하는 법안을 올 가을 정기국회에 상정할 것이라는 보건복지부의 발표가 있은 직후 뇌사인정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교회 일각에서 거세지고 있다.

이번 뇌사인정 법안이 장기이식의 타당성을 염두에 둔 법안이라는 점에서 의료계와 학계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지만 뇌사인정이 곧바로 장기매매를 부추길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매매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교회 사목자들도 뇌사를 인정하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방침에 대해 『뇌사인정에 따른 장기이식은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적인 희생과 사랑에도 부합된다』면서도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때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원래 뇌간을 포함한 뇌 전체가 손상돼 뇌의 기능이 완전히 소실되는 경우를 뇌사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뇌사의 경우 얼마동안 심장이 뛰고 인공호흡기로 호흡을 시킬 경우 2주일 까지도 심장이 계속 박동된다고 말한다.

다만 심장이 계속 뛰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도 뇌사를 죽음으로 인정하려는 이유는 심장이 뛰고 있을 때 다른 장기는 비교적 손상을 입지 않고 기능을 유지하기 때문에 장기이식이 용이하다는 점이다.

이미 교회에서는 교황 비오 12세가 『의식의 회복없이 죽는 환자의 죽음과 죽음 순간의 명쾌한 정의를 내리고 확인하는 일은 의사들의 영역에 속하는 교회의 권한밖에 놓여진 문제』라며 뇌사에 대한 입장을 의사들의 결정에 유보한 바 있다.

교회가 이러한 가르침에 따르면서도 뇌사 입법화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이유는 이 법이 윤리적으로 악용돼 장기매매로 이어질 가능성을 미리부터 충분히 예측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장기이식 수술이 늘면서 장기매매 알선조직이 부쩍 늘어 한해 평균 수백건에 이르는 장기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 같은 장기거래는 앞으로 뇌사가 인정되면 더욱 급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장기를 매매하는 브로커들이 교묘한 방법으로 이를 이용하는 경우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따라서 교회 사목자들은 뇌사입법에 따른 특별한 보완책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고 한결같이 지적한다. 만에 하나 오진할 경우 아까운 목숨을 잃게 할 염려는 물론 도덕적 윤리적 불감증에 걸린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장기이식을 위해 뇌사상태를 유도하거나 서둘러 사망으로 진단하는 사례도 예측해 두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한 제한된 장기를 두고 벌이게 될 비윤리적인 거래와 뇌사 인정에 따른 인명경시 풍조 등 사회적 윤리적 문제를 사전에 막을수 있는 철저한 안전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장기매매의 근절을 위해 교회는 나름대로의 노력을 기울임과 동시에 장기이식에 필요한 장기를 교회의 생명나눔운동으로 충원하는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종합병원이나 대형 공공시설물, 역이나 터미널 화장실 벽에 부착돼 있는 장기매매 알선 스티커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로 장기매매가 성행하고 있다. 이런 비윤리적 반생명적 장기매매의 근절은 우리 사회에 장기기증 운동이 정착됐을 때 가능하기 때문에 국가적 공신력을 가진 장기나눔 기구와 같은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교회의 장기기증 운동도 뇌사입법을 계기로 더욱 활성화 시켜야 함과 동시에 반인륜적인 장기매매가 성행하지 않도록 계도해 나가는 역할도 아울러 수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 청소년 자살

말없이 죽어가는 생명에 침묵하는 사회

연 자살자 8천명… 청소년 10% 상회

극도의 개인주의ㆍ물질주의가 주인

아까운 생명이 속절없이 죽어가고 있다.

서울에서만 10대 청소년들의 자살이 월평균 4~5건씩 발생하고 있고 전국에서는 각종 자살사건으로 한해 약 8천여 명의 소중한 생명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최고와 성적만을 강요당해온 청소년들,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기성세대, 생활고와 신병, 외로움을 비관한 노인 등의 잇단 자살문제는 이제 어느계층을 막론하고 빈발하고 있지만 정작 이 사회는 죽어가는 생명에 대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집에 컴퓨터가 없다고 자살한 고교생이 있는가 하면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다는 이유로, 또 부모로부터 공부 안한다는 꾸중을 듣고 난 뒤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 10대 청소년들의 자살문제가 남의 문제로만 치부해 버릴 수 만은 없게 됐다.

최근 10대 청소년들의 자살이 보도된 것만 10여 건이 넘을 정도로 수없이 일어나고 있고 전체 자살자 중 청소년이 차지하는 비율이 10%를 넘는 등 청소년 자살이 해마다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교회는 자살을 감행하는 자들의 「자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처지」에는 분노에 가까운 동정과 연민을 느끼면서도 자살행위 자체에는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큰 죄악」이라며 어떠한 경우에라도 자살은 안된다고 강조해 오고 있다.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입장에서 자신의 극도의 이기주의에 희생된 이웃인 자살자들은 결국 나 자신의 폭력에 의해 목숨을 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반성이 앞설 때 우리 사회의 자살문제는 점차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청소년들의 경우 극도의 개인주의적 경향에 뿌리를 두고 혼자만 최고가 되려는 최고주의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교육 풍토 속에서 성적이 떨어지고 남보다 뒤쳐지는 느낌이 들 때 자신의 목숨을 쉽게 포기하게 된다.

아울러 사회적으로 팽배해있는 물질만능주의는 인간을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잣대로 평가하게 되고 한번 가졌던 물질을 잃었을때 그 물질을 신앙처럼 존중했던 인간은 그 물질과 함께 모든 희망을 잃고 삶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교회 관계자들은 실패와 좌절, 절망은 삶의 끝이 아니라 삶의 한 과정이며 그 실패를 통해 인간의 더 큰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교회가 가르쳐 주는 것이 자살을 막는 한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아울러 이웃에 대한 보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통해 자신의 주위에 이웃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 가톨릭대 이동익 신부, 우리는 자살 방조하는 공범자 아닌가…

이웃 공동체 재건으로

인간 존엄성 수호해야

『생명을 하느님으로부터 성사받은 선물로 이해한다면 자기 목숨을 함부로 다루는 자살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요. 우리는 단지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일정기간 관리하는 관리자에 불과할 뿐인데 그 생명을 임의대로 처분할 수는 없지요』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지고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점차 희박해 질수록 자살을 감행하는 일들이 주위에서 많이 일어나게 된다는 가톨릭대학교 이동익 신부.

그러나 이동익 신부는 그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하느님이 부여하신 천부적인 생명을 파괴시키는 행위인 자살』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자살의 부당성을 역설했다.

특히 이동익 신부는 자살은 대체로 『가족과 친구들의 따돌림 등 이웃과의 단절현상과 모든 것으로부터 배척당하고 있다는 절망감에 빠져 있을때 쉽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고 이러한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이웃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동익 신부는 물질주의가 팽배한 고도의 산업사회로 발전돼 감에 따라 모든 사회적 가치기준이 최고와 일등주의의 정신적 혼란상황에 빠지고 만 것 같다며 이런 사회풍토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쉽게 좌절하고 희망을 잃게 됨으로써 극단적인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살문제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라고 강조한 이동익 신부는 『어떻게 보면 우리 모두가 자살을 방조하고 있는 공범자가 아닌지』한번 반성해 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우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