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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경의 반투명 인생노트 (44) 기적투성이

성찬경 (시인·예술원 회원)
입력일 2012-03-13 수정일 2012-03-13 발행일 2012-03-18 제 2787호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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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순간 감사하며 살아가는 습관에서 멀어지지 마십시오
세계 곳곳에서 정해진 때도 없이 대형 참사가 일어난다. 지진, 쓰나미, 토네이도, 홍수, 방사능 오염 등 걷잡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사건이 발생한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보면 이러한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곳보다는 일어나지 않는 곳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불행한 일을 당한 사람들은 불행한 일을 당하지 않은 사람들의 동정과 도움을 받아가며 견디고 있고 세상은 그럭저럭 평온하다.

만약에 불행한 큰 사건이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다면 사태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겹겹으로 짜인 기적(奇蹟)의 조밀한 조직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기적들은 서로 작용하여 균형과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 기적은 시시각각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위태롭게 하는 무서운 사건이 일어나게 하는 것을 막아주는 그러한 기적이다. 이러한 기적들 상호간의 균형에 결함이 생기고 깨질 때 대형 참사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물론 방금 말씀드린 이 부분은 나의 환상적(幻想的) 상상(想像)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세상을 이런 각도에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줄타기 곡예사가 아슬아슬한 곡예를 무사히 마치고 줄에서 내려온다. 관중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물론 저 줄타기 곡예사가 무사했던 것은 피나는 노력 끝에 얻은 수련과 숙달의 결과이지만,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시시각각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기적의 연속 속에서, 어쩌다가 발을 헛디디지 않는다는 기적의 연속 속에서, 순간 밧줄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기적의 연속 속에서 맡은 바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다시 땅을 밟을 수 있었던 것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우리의 인생도 저 줄타기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모두 저러한 줄타기 곡예사와 같은 국면을 지나고 있다.

원고 마감 날짜가 벌써 지난지 오래다. 애써 얻은 연기의 기간도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밤중에 전등을 켜놓고 열심히 펜을 달리게 한다. 조명은 쾌적하다. 그런데 순간 쓸데없는 잡념이 인다. 이 순간 정전이 되어 저 불이 나간다면…. 맙소사! 하느님 살려 주십시오!

그래도 전기불은 나가는 법이 없다. 여전히 자비스럽게 내 책상을 비춰주며 내가 무사히 써야 할 분량을 탈고 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준다.

나는 평소에 않던 짓을 한다. 진심으로 전등불에 감사의 염(念)을 담은 시선을 던진 것이다. 그뿐만 아니다. 문명의 혜택에 대해서도 감사를 바쳤다. 이 감사는 백열등을 발명해준 토마스 에디슨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까지 알쏭달쏭한 화제(話題)로 얘기를 이어 왔지만, 나의 의도는, 우리는 매순간 감사하며 살아가는 습관에서 멀어져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왜 어떤 사람은 불행한 일을 당하고 어떤 사람은 그런 일을 면하는가? 우리가 그것까지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그것은 근원적으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만큼) 사물(事物)을 다루는 척도(尺度)가 다른 하느님께 맡겨놓을 일이며, 사람이 나설 일이 아니다. 매순간 매사에 감사를 바치는 것이 사람이 해야 할 본분이며, 그 이상의 숨은 뜻을 궁금해 하는 일은 부질없는 노릇이다.

사람의 꾀가 무섭도록 놀랍지만, 그렇다고 사물의 궁극의 비밀까지 캘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망상이다. 나는 더러 이런 상상을 해본다. 과학이 아무리 발달을 해도 이 세상과 저승 사이에 전화를 가설할 수 있을까?

내가 건강하고 능력이 있어야 살아가지, 하느님이 밥 먹여주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이런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대지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켜주는, 보이지 않는 기적의 큰손이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성찬경 (시인·예술원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