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특집] 장애인 주일에 만난 사람들

우광호 기자
입력일 2012-03-12 수정일 2012-03-12 발행일 1996-05-12 제 200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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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부터 지역교회와 교구단위로 지켜오는 있는 장애인 주일(5월 둘째주일)은 국가가 정한 장애인의 날 (4월20일)과는 또 다른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사랑의 의미를 몸으로 체험하는 사랑으로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신자들에게 장애인 주일은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있는 장애인들에 대해 새로운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방향 잃은 삶을 살아가는 정상인들이 대부분인 안타까운 세태에 장애인들이 보여주는 사랑나눔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여기 장애인이 장애인복지에 앞장서는 따뜻한 이야기들이 있어 소개한다.

◆ 가톨릭 맹인산악회

“사랑만 있으면 장애도 두렵지 않아요”

“온 몸으로 자연을 느낀다,,

산행 도와줄 남성 봉사자 더 많았으면…

말 그대로 「온 몸으로 자연을 느끼는」이들이 있다. 한국 가톨릭 맹인 선교협의회의 맹인산악회(회장=김경중) 회원들은 매월 마지막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산을 찾는다.

지난해 11월 27일 창립돼 6개월이 채되지 않은 신생 모임인 맹인산악회는 짧은 시일에도 불구하고 정회원이 17명인 제법 틀을 갖춘 단체로 발전했다. 정상인들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는 이들은 젊은층이 대부분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대부분 40~50대.

불혹을 넘긴 나이에다 앞을 보지 못하는 이들 회원들에게 산은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운동량이 적은 이들은 얼마되지 않는 걸음에도 금방 숨이 차오른다. 그러나 평탄한 길이 아닌 흙길을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들은 기쁨을 느낀다. 비록 봉사자의 인도로 함께 하는 산행, 누구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한 산행이지만 맹인산악회 회원들은 산행을 통한 기쁨을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는다.

산 정상에서 봉사자들이 설명해 주는 산 경치에 만족하는 이들은 보지 않고도 느끼는 믿음을 몸으로 터득하고 있다.

이미 경기도 일원에 위치한 청계산, 남한 산성, 송나산 등정에 성공, 비교적 낮은 산행을 통해 높은 산에 오르기 위한 전 단계 과정을 거치고 있는 맹인산악회 회원들은 앞으로 설악산 등 높은 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여건으로는 이들의 설악산 등정 열의가 희망사항 자체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이들을 인도하며 산행에 나서는 봉사자들이 대부분 여성들이기 때문이다. 높은 산을 목표로 산행을 계획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이들의 산행을 전문적으로 도울 수 있는 남성 봉사자가 적은 탓이다. 그래서 맹인산악회는 남성 봉사자들이 모이는 대로 산행 보조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장소를 섭외하는 등 산악회 회원 중 가장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윤동진(빈첸시오)씨는 4년전 사고로 실명한 중도 실명자다. 산악회 모임을 주도하는 등 평소 성격이 활달한 그지만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따가운 눈총을 생각하면 이내 힘이 빠진다.

「장애인의 어려운 실정을 나몰라라 하는 사회의 풍토가 아쉽습니다. 어려서부터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는 교육이 필요한 때입니다」

비록 앞을 못 보는 이들에게도 산은 열려 있었다. 자연을 몸으로 느끼는 맹인산악회 회원들은 오늘도 산을 오르며 자연처럼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회를 기원하고 있다.

◆ 자장면 봉사 장애인 강희종씨

“제가 필요한 곳에 언제나 달려갑니다,,

한쪽 발 불편해도 봉사는 큰 보람,,

서울 양천구 신정 5동 902-14번지에서 음식점 「옛날옛적」을 운영하고 있는 강희종(사비노·44)씨는 매주일 한두차례 자장면을 차에 싣고 장애인 복지시설들을 찾는다.

지난 1981년부터 복지시설을 찾아 봉사를 시작한 것이 이제는 어느덧 15년을 넘어서고 있다. 당시 신앙도 가지지 않았던 그가 봉사활동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생명의 소중함을 느끼면서부터다.

산을 오르다 사고를 당해 한쪽발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 지난 1981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장애인이 된 그는 이내 삶의 의욕을 잃었다. 자살을 시도한 것도 수차례.

그때 만난 한 신앙인에 의해 우연히 신앙을 접하게 된 강씨는 구두 수선과 음식점 일을 번갈아 하며 재활의 꿈을 키워나갔고 지난해 7월에 영세를 받았다.

신앙을 통해 나누는 삶에 맛(?)을 들인 강씨는 처음에는 운동화, 옷, 가방 등을 수선해주는 봉사활동을 하다가 4년전 음식점을 경영하면서부터는 자장면 봉사로 레파토리를 바꾸었다.

이제 강씨는 복지시설의 아이들에게 자장면 아저씨로 통한다. 「10년만에 자장면을 처음 먹어 본다는 시설의 아이들 이야기를 들을 때면 마음이 아픕니다」.

김포 프란치스코의 집, 청주 소년원, 양평 평화의 집, 벽제 애덕의 집, 서울 사랑손 등 그가 자장면을 들고 매주일 찾아가는 복지시설은 손꼽을 수 없다. 이밖에도 서울 SOS 어린이집 등에는 매월 라면 등을 보내준다. 이 정도면 봉사와 생업의 분간이 안 갈 정도다.

이렇게 복지시설 등을 찾으면서 한달에 자비로 들어가는 비용은 80만원에서 1백만원 선.

4평 남짓한 허술한 음식점을 운영하는 그에게는 큰 부담이지만 삶에는 보다 보람된 것이 있다고 믿는 그에게 있어서는 그리 문제될 것이 없다. 이러한 열성적인 그의 봉사는 시간이 남을 때 봉사를 한다는 기존의 개념을 완전히 파괴하고 있다.

복지시설의 장애인과 아이들에게 자장면 점심을 먹이기 위해서는 아침 6시에 집을 나서야 하는데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음식점을 운영하는 그는 복지시설을 방문할 때면 꼬박 이틀을 잠을 잘 수 없다. 봉사를 천직으로 느끼는 그는 최근 SOS 봉사후원회를 만들고 본격적인 자원봉사자 알선업에 나섰다. 봉사자가 없어 어려워하는 복지시설을 무수히 보는 그다.

「소외된 어려운 시설이 있으면 소개를 해주세요. 비록 한달에 두세번이지만 제가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 김 추기경상 받는 청각 장애 김덕남씨

들리진 않지만 기술은 “1등,,

복지시설 방문, 기술 부수 10년

장애인 주일을 맞아 모범 장애인으로 선정돼 추기경상을 수상하는 김덕남(요셉 ·56)씨는 2살 때 열병을 앓고 난 이후 영원히 소리를 잃어버린 청각 장애인이다.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돼 자연히 말도 잊어버린 김씨는 지난 10년 전부터 자신보다 더 불우한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수상하는 추기경상은 그의 헌신적인 봉사활동에만 근거를 두는 것이 아니다. 혼탁한 사회 안에서 장애인의 몸으로 신앙을 지켜온 모범적인 삶이 오히려 인정을 받았다. 6·25전쟁 이후 공사장 노동일과 농사, 음식점일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그는 유난히 남다른 손재주를 가지고 있다.

1년 전부터 서울 가톨릭 농아 선교협의회의 관리부장직을 맡아올 정도로 그의 손 솜씨는 이미 소문나 있다.

장애인에게 기술을 가르쳐 줄 만큼 성숙한 사회에서 성장하지 못한 그는 모든 기술을 스스로 배워야 했다. 수도가 고장 나도, 문이 삐걱거려도, 창문이 흔들려도, 전기가 안 들어와도 사람들은 언제나 그를 찾는다. 그는 아무런 보상도 없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말없는 (실제로 말을 할 수 없지만)봉사활동을 묵묵히 실천해온 그의 얼굴에서는 항상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국내 장애인 복지가 전무하던 시기의 삶을 살아왔기에 말 못할 온갖 고생을 다한 그지만 그 많은 고난의 편력을 이제 그의 얼굴에서 찾아보는 것은 어렵다.

「제가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느님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이렇게 상을 수상하게 돼 부끄럽습니다」

1987년 12월 세례받은 이후 마음속의 하느님을 느끼게 됐다는 김씨는 이제 주위의 복지시설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꼭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성장한 아들 둘과 막내딸이 노동일을 극구 말리고 있지만 아직도 그는 손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일자리가 그리 쉽게 나는 것은 아니다. 일당으로 일하는 공사장 노동일도 뜸해 요즘은 봉사활동을 나갈 때가 더 많다.

60을 바라보는 나이도 나이지만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회의 인식이 아직은 개방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장애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서 한국 사회의 복지 현실을 읽을 수 있었다.

우광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