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광복 50주년 특별기획] 한국 천주교회의 어제 오늘 내일 33 - Ⅵ 한국 가톨릭교회 사회개발 및 복지사업 2

한상호 신부 ㆍ수원 가톨릭대 총장
입력일 2012-03-12 수정일 2012-03-12 발행일 1996-04-28 제 2000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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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1만불 시대…그늘에 가린 노인들
신자 15% 노인 불구 사목적 관심은 “잰걸음” 
교회 어른으로서 독특한 동기부여 시급 과제
양로원 운영이 고작…다양한 복지ㆍ문화 프로그램 개발 요청
노인복지

노인문제와 노인사목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인한 노인인구의 증가와 1960년 이후 사회구조가 급격히 산업화, 도시화, 서구화되면서부터 우리나라의 노인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노인에 대한 가족부양의식과 기능이 약화됨에 따라 점점 많은 노인들이 생존에 위협을 느끼며 심한 고독감이나 자아상실감과 함께 많은 사회 심리적 부적응 징후를 나타내고 있고, 특히 전반적인 노인복지대책이 제도적으로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많은 노인들은 경제적 빈곤과 질병 그리고 무료함이나 심리적 소외감 등으로 고통스러운 노년기를 보내고 있다. 얼마 전 어느 70대의 노부부가 아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 마음에 걸려 함께 세상을 하직했다는 신문보도는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노인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사도적 권고인 「가정공동체」를 통하여 가정의 존엄성과 복음적 기능을 강조하면서 현대 산업사회 안에서 점점 소외당하고 있는 노인들의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본 권고에서는 현대의 많은 노인들이 무질서한 사회변화와 가치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인간 본연의 존엄성을 무시당하며 심지어는 가정에서조차 부당하게 소외되고 있음을 우려하면서 가난과 고독 속에 극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노인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베풀도록 배려하고 있다. 또한 본 권고에서는 교회공동체가 실시하는 효율적인 노인사목을 통하여 도움과 후원을 필요로 하는 노인들을 위해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애덕을 최대한 베풀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노인들이 마땅한 존경과 보살핌을 받으며 만족스러운 노년기를 보낼 수 있도록 고유한 지역전통과 환경 속에서 노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심리적 그리고 영성적 요구를 채워줄 수 있는 다양한 복지, 교육, 문화, 사목, 전례프로그램을 계발, 실시해야 하며 또한 노인들만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독특한 능력을 전적으로 인정하고 활용함으로써 복음화 작업에 적극 참여시키며 세상과 하느님의 교회를 위하여 가지고 있는 온갖 힘을 다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노인사목 현황ㆍ문제점

한국의 초창기 교회공동체는 심한 박해로 인하여 괄목할만한 사목활동을 펼 수 없었지만 버려진 아이들이나 노인들을 신자가정에 위탁하여 서로 돌보는 것을 실천적 덕목으로 삼았으며, 1884년 신앙의 자유가 묵인되면서 불랑 백 주교는 서울 곤당골에 있는 기와집을 사들여 양로원을 설립하여 교우들로 하여금 돌보게 하였으며 1887년까지 수용된 노인들의 수는 40여 명이나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이후, 특히 1960년대부터 한국의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노인문제가 사회적 관심을 끄는 문제로 부각되면서 교회의 노인문제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좀 더 다양한 사목활동이 노인들을 위하여 배려되고 있으나 아직도 불우한 노인들을 수용 보호하는 무료양로원 시설운영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실정이다. 1996년도 한국 천주교 사회복지편람에 의하면 현재 천주교회에서 운영하는 양로시설은 총 68개이며 거기에 2천 5백여 명의 남녀노인들이 보살핌을 받고 있는데 행려자 복지시설에 포함되어 있는 노인들까지 계산하면 숫자가 훨씬 더 많다고 본다. 이 양로시설들은 교구에서 설립 운영하는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도단체들과 뜻있는 독지가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으며 정부로부터 시설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곳도 있다. 최근에는 교회 내에서도 경제적 능력이 있는 이들을 위한 유로 양로시설이 몇 군데 이미 생겼으며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정부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13개의 종합복지관을 통하여 노인들에게 의료, 교육, 여가활동 분야에 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시설운영과 함께 그동안 교회가 관심을 두고 있는 노인 사목분야는 노인학교 운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서울대교구에서는「노인대학 연합회」를 설립하여 전반적 노인교육과 복지증진에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으며 각 본당을 중심으로 단위노인대학을 개설하여 전반적 노인교육과 복지증진에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다. 각 본당을 중심으로 단위노인대학을 개설하여 훈련과정을 이수한 자원봉사자들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5~6천명의 노인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교구 전체 숫자의 절반도 못 미치는 70여 개 본당만이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며 다른 교구에서는 몇몇 본당을 제외하고는 노인학교 제도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회내의 비공식 집계에 의하면 60세 이상의 노인교우 숫자가 전체 가톨릭 인구의 15%이상이 되는 40~50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또한 인구의 노령화와 더불어 노인교우 인구의 숫자는 점점 증가 추세에 있다. 그러나 교회공동체는 이러한 노인들을 얼마나 큰 관심을 가지고 포용해 왔으며 그들의 원만한 노년기 삶을 위하여 배려해 왔는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교회공동체는 어린이나 청소년 그리고 젊은 계층의 교우들에게는 많은 사목적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노인들은 신앙적으로도 열심하고 또 그들을 부양할 수 있는 가족들이 있다는 이유 때문인지 특별한 사목적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듯 하다.노인들을 위해서 하는 일이란 주로 병환중이거나 임종시에 방문하여 봉성체나 병자성사를 베풀어주는 일과 일 년에 몇 차례 노인잔치를 열어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노인들은 나이가 많아서, 상대하기 어려워서, 사고방식이 구식이고 고집이 세다는 이유 등으로 그들이 훌륭하게 수행할 수 있는 사도직이나 봉사직책으로부터 제외되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많은 본당에 노인들로 구성된 「안나회」나 「연령회」같은 단체들이 있기는 하지만 목적이나 운영방법이 특수하고 제한적이어서 극소수의 노인들만 참여하고 있을 뿐 포괄적인 노인사목 활동방안으로는 미흡한 실정이다.

또한 본당 구역 내에는 부양가족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도움을 받을 형편이 못 되는 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가난하고 병든 노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 26만여 명이 넘는 이들 거택보호 노인들 중에는 양로시설의 보호를 필요로 히는 노인들이 많이 있지만 수용시설의 부족으로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며, 생활보호 대상자가 받는 공적 부조만으로는 생계를 꾸려가기 어려운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노인들을 위한 대책으로 교회에서 식량과 연료, 방세 등을 보조하는 구호활동을 벌이고 있으나 체계적이고 지속적 대책이 아닌 일회적 활동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 빈곤한 노인들을 위한 무료급식소가 늘고 있어 많은 노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노인사목의 과제ㆍ영향

인구가 급격히 노령화 되어가는 2000년대를 맞이하면서 한국교회가 수행해야 할 노인사목의 과제와 방향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제시할 수 있겠다.

첫째는, 경로효친 사상의 고취를 위하여 교회는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현대의 한국 노인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문제 중에 하나는 자신들이 가정과 사회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기보다는 무시와 무관심속에 소외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부모봉양이나 노인공경이 신앙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덕목임을 미사강론이나 주일학교 교육 그리고 다양한 홍보 매체를 통하여 젊은 세대에게 새롭게 인식시키며, 자녀와 노부모가 더 깊은 사랑과 이해 안에서 서로 만나고 나눌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인들을 위한 행사를 자주 마련하여 노인들로 하여금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며 일 년 중 하루를 「노인의 날」로 정하여 기념하는 것도 매우 뜻있는 일이라 하겠다.

둘째로, 교회는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하여야 한다. 우리 지역사회에는 아직도 많은 노인들이 빈곤이나 질병 등으로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있으며, 노인 수용시설의 부족으로 신체적 장애를 가진 무의탁 노인들도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실정이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보다는 가족 간의 갈등이나 심리적인 문제, 상황 및 건강문제, 법적 문제, 직업문제 등으로 힘겨워 하는 노인들도 많이 있다. 이러한 노인들을 위하여 교회는 체계적인 물적 자원 뿐 아니라 의료 활동, 정보제공 및 상담 서비스, 가정봉사 제공 등의 배려를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노인들을 위해서는 양로시설보다는 지역사회에서 불편함이 없이 오래 살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바람직하다.

셋째로, 교회는 노인들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시설을 마련하여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여야 한다. 아직도 많은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무료 양로시설뿐 만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 살 형편이 못 되는 노인들을 위한 실비의 유로 양로원 설립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또한 노인들을 일시적으로 맡아 보호하는 노인휴양소나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의료 및 재활기관의 설립이 절실하다.

넷째로, 본당 내에 노인 주일학교나 노인대학 같은 단체를 만들어 운영할 것을 적극 권장한다. 교회는 노인들이 함께 친밀하게 사귀며 능동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배려해 줌으로써 소외감과 고독감을 감소시켜 줄 뿐만 아니라 소속감과 자아정체감을 갖게 해 줄 수 있다. 또한 지역사회의 노인들이 낮 시간에 자유스럽게 모일 수 있는 「주간 노인센터」를 만들어 노년생활에 유익한 교육이나 신앙행사, 건강 상담, 취미생활이나 레크리에이션 같은 프로그램을 베풀어주고 또 노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거리를 알선하고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노인선교의 장으로서도 매우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보다 체계적인 운영을 위해 서울대교구와 같이 각 교구별로 노인대학 연합회를 구성하고 산하 본당에 단위노인학교를 설치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섯째로, 교회는 노인들을 위해 그들의 적성과 요구에 부응하는 전례나 신심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여야 한다. 소규모의 기도모임, 정기적인 피정이나 신앙 강좌, 전례시기에 따른 말씀의 전례, 국악미사, 노인 성가대, 성시간, 성체강복 등 다양한 신심행사를 고려해 볼 수 있겠다. 또한 노인들이 지니고 있는 신앙과 경험을 토대로 활발하게 교회공동체를 위한 사도직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베풀어 주어야 한다. 독서봉독, 헌금위원, 안내와 같은 일뿐 만 아니라 노인 성체 분배권자들을 양성하여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에게 봉성체를 해볼 수 있도록 배려할 수도 있겠다.

노인문제는 노인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과 사회 그리고 국가라는 좀 더 넓은 공동체적 맥락 속에서 이해하고 다루어져야 하며, 그 해결에 있어서도 노인은 물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가정과 사회전체가 함께 공동으로 노력할 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풍부한 인력과 재력, 다양한 시설과 조직력을 지니고 지역사회에 산재해 있는 교회는 그 어떤 공공조직이나 민간단체들보다도 전반적인 노인복지 증진을 위해 효율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단체이다. 이제부터라도 노인들을 위한 우리의 사랑과 관심 그리고 힘을 한데 모아 2천년대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상호 신부 ㆍ수원 가톨릭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