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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냉담했나] 16 본당 대형화로 인한 냉담

김상재 기자
입력일 2012-03-12 수정일 2012-03-12 발행일 1996-04-28 제 2000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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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원인 분석/그 예방을 위한 기획
대화 끊기고 모두 “제각각”
소공동체 통한 신자간 친교 회복해야
농고를 나와 대도시 근교에서 작은 과수원을 하고 있는 김황길(가명ㆍ그레고리오ㆍ42세)씨는 입교한 지 10년이 채 안 되는 신입교우로 1남 2녀의 자녀를 둔 성실한 가장이다.

김씨는 집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성당에 이웃에서 같이 농사를 짓던 친구의 권유로 다니기 시작했고 당시 김씨의 본당은 전 본당신자들이 5백여 명에 불과한 작은 시골본당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4~5년 전부터 성당 주변으로 아파트촌이 들어서고 신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본당도 대도시 신자들의 유입이 해마다 급증해 신자수 4~5천을 헤아리는 대형본당으로 바뀌었다.

김씨를 비롯한 본당의 옛 신자들은 본당의 성장에 누구보다 반가워하며 새성전 신축이나 전입교우 환영 등에 정말 열과 성을 다했다고 한다.

그러나 1백여 명 만이 들어갈 수 있던 옛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초현대식 성당이 들어서고 신자들의 유입도 어느 정도 안정세에 접어들 무렵 본당 주임신부가 교체되자 곳곳에서 불협화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씨는 『본당신자가 증가하니 정말 형제ㆍ자매처럼 지내던 본당 분위기가 어수선해지면서 대화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미사도 정기적인 행사가 되어버렸습니다』라고 말한다.

『시골본당일 때는 누구나 신부님 수녀님과 만나 이야기 할 수 있었고 소주 한 병 들고 사제관에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주시는 신부님의 모습 속에서 생활고의 어려움을 위안 받을 수 있었지만 신자가 많아져 새로 오신 신부님의 일이 많아지자 신부님이 모두를 만나줄 수도 없었고 신자들도 예전처럼 신부님을 찾아가기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리고 전입해온 신자들은 대부분 대도시에서 온 사람들이라 경제적인 면에서나 학력면 모두에서 예전 신자들보다 나은 면을 가지고 있었고 직업도 대부분 대도시에 근무하는 소위 「하이칼라」여서 농사를 주로 짓는 예전 본당신자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사귀는 사람들도 자연 전입 교우와 예전 교우 두 패로 나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예전 교우들이 본당일에 소외되기 시작했다.

『신부님이나 새로 오신 분들이 일부러 우리를 소외시키진 않았지만 저희들에 대한 배려도 없었습니다. 제가 배우기로 우리 한국교회 초대신자들은 양반 상놈 천민을 가리지 않고 서로를 형제처럼 아꼈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반상의 서열이 없어진 요즘 신자들 간에 학력 재산 직업에 따라 계층이 형성된다는 것이 참 서글펐습니다』. 본당의 대형화에 따른 김씨의 푸념이다.

『대화가 없는데 무슨 사귐이 있고 사귐이 없는데 무슨 사랑이 있으며 사랑이 없는데 신앙이 생활 속에 들어 올 수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하는 김씨는 새로운 신자들과 예전 신자들 사이만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전입해온 신자들끼리도 대화가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처음엔 자신들이 가진 것 없고 무식하다고 자신들과 이야기하지 않나 생각하고 소외감과 더불어 은근히 저항심마저 생겼는데 가만히 본당이 돌아가는 것을 보니 신자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신부님과 신자들 간 그리고 전입 신자들 서로 간, 전입 신자와 예전 신자들 간 모두가 친교를 제대로 나누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어느 누구도 나서서 이 상황을 타개하려 하지 않고 폐쇄적이고 형식적인 분위기에 눌려 사는 것 같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분위기가 너무 숨막힐 정도로 답답했다고 한다.

성당을 지키던 개가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던 성당 흙마당이 콘크리트로 변하고 마당에 늘어선 감나무들이 패인 그 자리에 주일이면 꽉 들어찬 자동차를 보면서 옛 성당이 그립다는 김씨는 2년 전부터 냉담하고 있다.

이 란은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자신이나 혹 주변에 냉담과 관련한 사연이 있으시면 연락해 주십시오. (02-778-7671 :053-256-2485) 신자 여러분들의 참여와 다양한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김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