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나는 왜 냉담했나] 16 자녀 혼사문제로 갈등 끝에 냉담

전대섭 기자
입력일 2012-03-05 수정일 2012-03-05 발행일 1996-03-31 제 1996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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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원인 분석/그 예방을 위한 기획
무심코 던진 한 마디 상처로 남아
아들 내외 교회혼 시키려던 희망마저 무산
성직자의 관심과 이해 신자들에겐 “큰 힘,,
『일이 이렇게까지 된데는 부모로서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그만큼 참고 설득해보려고 노력했던 것을 생각하면 인간적으로 화가 치밀기도 합니다』.

중소도시에 사는 김모씨. 몇년전 기억을 떠올리는 그녀의 얼굴엔 불쾌한 감정이 역력하다. 또 그때 일이 결국은 냉담에 빠지는 계기가 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고 고백한다.

몇해전 그녀는 아들과 함께 갑작스레 집에 들이닥친 한 처녀를 보고는 놀랐다. 어릴적부터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 아이였고, 아들과는 성당 선ㆍ후배 사이로 가끔씩 얼굴 정도는 보던 터였지만 그날은 뭔가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었다.

사정을 듣고 난 김씨는 당황스럽기만 했다. 1년전부터 사귀던 두 사람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고, 여자아이의 거처가 마땅치 않으니 아예 집에 들어와 같이 살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당한 사태에 놀라고 아들의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김씨는 『다 못난 아들을 둔 탓이려니』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또 『젊은이들이 한때 실수로 더 잘못되기 전에 일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점에서 숨기지 않고 모든 것을 털어놓은 자식들이 고맙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어느날 이 소식을 전해들은 여자아이 집에서 몰려와서는『곱게 키운 남의 딸자식을 다 망쳐놓고는 사람까지 빼돌렸다』면서 소란을 피웠다.

김씨는 할말이 없었다. 다만 『이 일을 어떻게 여자아이 집에 전할까, 어떻게 하면 오해없이 원만히 해결할 수 있을까』궁리하다 시간적 여유도 없이 일이 터져버려 안타깝기만 했다. 온갖 수모를 당하면서 그날은 그렇게 돌아갔다.

며칠이 되지 않아서 언니라는 사람들과 친척들이 찾아와서는 또 한바탕 법석을 떨었다. 욕설을 하다 모자라 김씨와 남편이 넘어지고 채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가게 물건들이 깨어지고 아수라장이 되었다. 집에까지 들어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막았다.

『그 일을 겪으면서 인간적인 오기도 생겼지만 그 집 식구들의 면면을 조금은 알게 됐습니다. 그러니 오히려 그 여자아이를 보호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저런 사정은 이미 소문으로 돌아 김씨의 입장은 매우 난처하게 됐다. 성당에서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않다는걸 느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러나 애써 참기로 했다.

김씨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본당 신부를 찾았다. 이미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던지 탐탁치 않은 눈빛이었다. 부끄럽고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 몰랐지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두 사람 반드시 교회혼을 시켜서 새출발을 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김씨는 커다란 상처만 안고 돌아왔다. 『처음엔 얘길 잘 들으려고 하지 않더군요. 부끄러움을 참고 얘기를 꺼내는데 갑자기 신부님이 「거 찻집이라는 것도 그렇고 그렇지 뭐」하는 거예요. 말문이 막히던군요. 잘못 들은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김씨는 당시 전통 찻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사실을 본당 신부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본당 신부가 던진 한 마디 말은 김씨의 기대를 깡그리 무너뜨리고 말았다. 어떤 의도였는지 되묻지는 않았지만 극도로 예민해있던 김씨의 심정으로선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당사자들끼리의 문제는 어떻게든 해결되겠지요. 신자들이나 주민들도 저의 입장을 이해해 주었고 또 시간이 어느 정도 해결해 주더군요. 하지만 그때 들은 신부님의 그 한 마디는 너무 큰 상처가 되어버렸습니다』.

여자아이 집안에선 아직도 이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아들과 여자아이는 몇군데 거처를 옮기다 직장을 얻어 한곳에 정착했다.

『아들이 있다고 내놓고 자랑한 것도 없습니다. 처음엔 내 자식이 한 일이라 책임을 느꼈고 본인들이 그렇게 원한다면 결혼을 시켜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또 그 딸아이가 너무 측은해 보이고 착해서 받아들인 거지요』.

김씨는 오빠 신부님과 본당 신부님을 모시고 장남 혼배미사를 올리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그 꿈을 버리지는 않고 있지만 갈수록 자신이 없어진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신자들 중에도 술집이나 다방, 혹은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는 분들이 있을겁니다. 그런 사람들을 그러면 모두 퇴폐적이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사람으로 봐야 되겠습니까』.

이 란은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자신이나 혹 주변에 냉담과 관련한 사연이 있으시면 연락해 주십시오(02-778-7671: 053-255-2485). 신자 여러분들의 참여와 다양한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전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