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UN제정 빈곤퇴치의 해 기획] <10ㆍ끝> 빈곤 악순환 해결책 없나? - 빈곤퇴치, 공동체적 삶의 회복에서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2-03-05 수정일 2012-03-05 발행일 1996-03-24 제 1995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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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화부족」보다 「나눔부재」가 원인
한편엔 남아도는 식량… 한편엔 굶주림 연속
소외된 이웃에 관심ㆍ사랑보일때
「가난은 필연」수동적 의식 버려야
지금까지 9회에 걸쳐 빈곤의 현실, 원인과 배경을 살펴보고 그 대안을 모색해 보았다. 인간답게 살기 위한 제반 조건의 결핍으로서 빈곤은 재화의 부족보다는 근본적으로 나눔의 부재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할 것이다. 지구의 한켠에서는 남아도는 식량이 다른 한편에서는 부족해서 한 줌의 쌀로 며칠을 연명해야 하는 비정한 현실이 곧 빈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복지사회의 구현은 국가에 일차적으로 그 책임이 있고 복지 문제에 대한 정부의 획기적인 발상 전환은 복지사회의 구현을 앞당길 수 있지만 아무리 훌륭한 복지제도와 사회보장정책이 수립되고 실행된다 해도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적 삶이 회복되지 않는다면 참된 복지사회의 이상은 실현할 수 없을 것이다.

빈곤은 인류의 가장 오랜 공적(公敵)의 하나이다. 고금을 통해 볼 때 가난한 사람이 없었던 적은 없다. 그래서 가난은 인간 사회에서 필연적인 부산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심각성은 가난의 필연성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는데 있다. 과연 가난은 퇴치할 수 없는 세력인가 에 대해 인류는,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단호히 아니라고 답해야 할 것이다.

상대적 빈곤 증가

작금의 현실을 바탕으로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의 미래를 예견해본다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 총량적 재화의 생산과 소비는 증가할 것이지만 정치, 문화, 사회적 격변의 과정에서 다양한 소외 계층 또한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분단 상황의 급속한 변화 역시 막대한 소외 계층을 양산할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복지활동의 혁신적 전환이 요청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볼 때에도 강대국 중심의 경제 재편으로 인해 빈국들은 더욱 국제 사회에서 약육강식의 법칙에 희생되기 쉬운 체제로 들어서고 이에 따라 빈부국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21세기 가톨릭 사회복지 방향

가난한 이들의 상황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은 오늘을 사는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할 사명에 더욱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21세기 가톨릭 사회복지」라는 이름으로 지난해부터 새로운 세기를 맞는 한국교회가 어떻게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할 것인지를 본격적으로 모색하기 위해 전국 연수회를 실시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사회사목부 담당 최창무 주교는 지난해 7월5일부터 7일까지 가진 제1차 전국 연수회에서 21세기를 준비하는 한국교회의 사회복지활동 방향을 제시했다.

우선 교회 복지활동은 사목의 틀 속에서 이해되고 수행돼야 한다. 복지활동의 주체는 하느님 백성 전체로서 복지활동 종사자들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의 의무를 수행할 사명을 하느님 백성 전체로부터 위임 받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사회통합적 복지활동의 전개가 요구된다. 복지활동이 지금까지는 시설중심으로 이루어져왔으나 앞으로는 사회 복귀를 겨냥하는 통합적 복지활동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소공동체를 지향하는 최근의 움직임은 바람직하며 구체적으로 이런 방향의 활동은 본당 공동체를 통해 구현될 수 있다. 또한 보다 바람직한 것은 가정이 복지활동의 단위가 되는 것이므로 가장 전통적인 복지 단위인 가정에 대한 지원과 봉사가 오히려 가장 선진적 방법이 될 수 있다.

셋째, 가난한 이들에 대한 접근 방법의 다양화이다. 가난한 이들의 다양한 환경과 조건을 고려한 다양한 복지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넷째, 복지활동의 체계를 정립해야 한다. 단일 민간 조직으로는 국내 최대인 교회 복지활동은 실상 효과적으로 조정과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하다. 체계적으로 정비된 복지활동의 전개는 지금까지의 활동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전문성의 확보이다. 복지활동의 특성상 이론적, 실천적 전문성이 확대돼야 하고 나아가 영성적인 전문성이 무엇보다 요구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북한을 포함한 전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도움과 연대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과거 재화의 절대적 결핍으로 인한 빈곤과는 달리 오늘날 가난의 주된 문제는 재화의 총량보다는 오히려 나눔의 결핍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한 사회, 국가 나아가 세계의 차원에서 가난은 공동체 정신, 공동체적 삶의 상실로 인한 소외와 분열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 벌에 수백만원씩 하는 모피코트를 입는 이들과 같은 값의 방 한 칸에 온 가족이 살아야 하는 극심한 격차, 선진국에서의 애완용 개사료 한 끼 값으로 며칠을 견뎌야 하는 아프리카 주민들의 대조는 깨어진 공동체를 나타낸다.

가난한 이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인류의 공동체적인 삶이 깨어져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가난의 문제는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공동체 삶을 회복하려는 데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장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박석희 주교(안동교구장)는 사회복지위원회 회보에 게재한 글에서 이와 관련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돕는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고백이나, 종교적 또는 무신론적 확신보다도 먼저 인간이, 인간이 되는 인간성의 특성적 의무』라고 강조했다.

가난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희망을 던져준다. 이러한 희망에 부응하는 나눔과 사랑, 공동체적 삶을 교회와 사회는 더욱더 요청받고 있으며 빈곤 퇴치의 전망은 바로 개인과 사회가 이 요청에 얼마나 응답하는가 하는데 전적으로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