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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기도] 믿음을 키우기 위한 기획 9 신앙의 위기와 극복

정하돈 수녀ㆍ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입력일 2012-03-05 수정일 2012-03-05 발행일 1996-03-24 제 1995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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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위기, ‘하느님에 대한 신뢰’로 극복
믿음 성장 위해 서로의 인내ㆍ도움 필요
인생에서 높낮이와 굴곡이 있듯이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그러하고 늘 한결같을 수 없다.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기쁨과 평화로 가득한 때가 있는가 하면, 어떤 때에는 유혹, 의혹, 시련 고통과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그러나 신앙은 이 모든 것들, 즉 사건, 상황, 만남들 안에서 언제나 하느님을 찾으며 그분과 함께 살아가고 하느님의 섭리를 찾고자 노력한다.

신앙의 어려움과 위험성은 어디에 있는가? 무엇보다 믿음의 어려움과 위험성은 바로 믿음 자체에 내포되어 있다. 계시된 하느님의 진리는 언제나 구체적인 시대, 장소, 문화권 안에서 표현되고 그 진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도 그 배경 안에서 받아들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계시가 수천 년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졌고 그 계시 진리를 받아들이려면 그 당시의 배경과 제한성을 외면한 채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래서 그 당시의 표현방식이 현대인들에게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특히 문화, 언어, 생활양식이 전혀 다른 선교사들이 동양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정도도 사람 따라 달랐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같은 신앙의 회의나 어려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영원한 진리의 선포로 보기 보다는 「구원이 필요한 인간에게 신앙과 회개를 바라는」요청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구원이 필요한 존재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그것을 약속하신 분으로 받아들이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믿음에 대한 회의는 신앙의 생활형태 안에서도 올 수 있다. 우리는 믿음을 여러 가지 형태 안에서 표현한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생활풍습이 바뀌거나 표현양식이 변한다. 그러면 신앙인들은 적합한 새로운 양식을 찾아 얻기까지 신앙의 위기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과거에 중요하게 여기고 길들여진 생활풍습이나 표현양식이 (예컨대 신심행위나 예식 등) 달라지면 거부감을 가지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면 신앙생활은 헤이해지고 등한시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 역사 안에서 이 같이 어려운 현실을 오직 하느님께 대한 신뢰심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위기를 극복한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어려운 현실 속에서 믿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산 신앙인이다.

『믿습니다. 제 믿음이 부족하오니 도와주십시오』(마르꼬 9, 24). 이 말은 곧『나는 믿고 싶습니다!』라는 말과 같고 아울러 믿음의 어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말한 아버지는 의심없이 믿고 있었다. 신앙은 모든 지난날의 의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것 앞에서 흔들리지 않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는 믿고 싶지만 믿을 수가 없다! 신앙의 의혹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도와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바울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이 같이 말했다: 『그를 믿는 이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10, 1).

그러나 어떻게 믿어야 할까? 누가 믿도록 도와 줄 것인가? 신앙은 일차적으로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무엇인가 주어지길 기다리는 것이다. 신앙은 적극적인 찾음이다 :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이는 누구나 구원받을 것입니다』(로마 10, 13 ; 요엘 3, 5 참조). 그러나 『그들이 믿지 않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그들이 들어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또 선포하는 이들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 14).

그러므로 신앙에는 적어도 선포하는 자와 듣는 자가 있어야 한다. 신앙은 처음부터 사람들 사이에 있는 공동체이다. 신앙이 성장하려면 서로간의 격려와 인내와 도움이 필요하다. 그 위에 공동체, 교회가 세워진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사도행전 2, 44). 신앙을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말씀을 경청하고 신앙의 공동체와 일치해야 한다. 교회공동체는 신앙의 「규범적 장소」이다. 신앙은 교회 안에서 믿는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예수는 그의 반대자들로부터 거절과 불신앙을 겪으셨다. 『의회의원들이나 바리사이들 중에 누가 그를 믿었단 말인가?』(요한 4, 48). 이처럼 신앙과 의혹, 공적 고백과 분명한 불신앙은 서로 가까이 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총으로 구원받았습니다』(에페소 2, 8). 신앙은 선물이다. 그러나 신앙은 듣는 데서부터 온다(로마 10, 1) :『나의 말과 나의 선포도 지혜에서 나온 설득력 있는 말로(알리려)하지 않고 오직 영과 능력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믿음을 사람들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능력에 의거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 고린토 2, 4~5).

정하돈 수녀ㆍ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