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UN제정 빈곤퇴치의 해 기획] 9 빈곤 악순환 해결책 없나? - 빈곤과의 전쟁(하)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2-03-05 수정일 2012-03-05 발행일 1996-03-17 제 1994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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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 못 면하는 사회복지
「선성장 후분배」…「삶의 질」 항상 뒷전
장애인 ㆍ 노인분야 등 전반적 개선 서둘러야
예산없는 정책 입안 “빛좋은 개살구”
「복지국가」라는 개념이 노인, 장애인, 저소득계층 등 이른바 가난한 사람들이 얼마나 인간답게 살고 있는가 하는 점을 기준으로 할 때 사회복지의 측면에서 우리나라를 평가한다면 가히 「낙제점 이하」라고 할 만하다.

해방 이후 역대 정권들은 철저하게 성장과 복지를 대립되는 것으로 인식해왔다. 경제성장과 개발정책의 그늘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는 발전을 저애하는 요인으로 취급돼왔다. 복지비용은 자원의 비효율적인 사용, 심지어는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으로 간주됐던 것이다.

따라서 복지문제는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항상 뒷전으로 밀려났고 부의 분배와 국민들의 삶의 질에 대한 고려는 「선성장 후분배」의 원칙에 따라 언제나 부차적인 요인으로 취급됐다.

이러한 복지 경시 풍조는 비록 최근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할지라도 문민정부에 들어와서도 크게 바뀐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평이다. 문민정부는 출범 초기에 복지 정책의 방향을 「취약계층의 기본적인 생활 보장」에 두며 관계부처도 21세기를 대비해 현재의 빈약한 사회복지현실의 개선을 위해 야심찬 정책 대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런 약속들의 실현에 회의를 표시했다. 정책실현을 뒷받침할 예산확보 방안이 희미했기 때문이다.

줄어든 복지 예산

복지정책을 추진할 복지 예산은 과거 군사정권 시대에도 꾸준하게 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문민정부에 들어서면서 오히려 줄어드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가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보건복지부의 예산 비율은 80년대 10년간을 포함해 90년 4.2%, 91년과 92년 각각 4.6%로 조금씩이나마 증가추세를 보여왔다. 그러던 것이 93년 4.3%, 94년 4.1%로 감소되더니 95년에는 급기야 정부예산 50조 1천4백11억원 가운데 1조9천8백30억원으로 4%미만(3.96%)로 떨어지기에 이른다.

이런 보건복지부 예산 비중의 감소는 다른 경제 관련 부처 예산의 「성장」과 비교된다. 건설교통부의 경우 국가예산 대비 점유율은 90년 6.96%에 비해 95년 11.07%, 농림수산부는 90년 4.17%에서 95 년 7.48%로 늘어났다.

외국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복지수준이 얼마나 취약한지가 더욱 여실히 드러난다.

우리나라의 외형적 경제규모는 한국은행 발표를 기준으로 94년 말 현재 국민 총생산 등에서 세계 15위권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국내 총생산액(GDP)중 사회보장 지출액은 프랑스가 21%, 미국과 일본이 각각 11%인데 반해 한국은 92년의 경우 1.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지난해에는 전국 사회복지 관련 교수1백85명이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사회복지예산의 획기적인 증액과 복지제도의 개혁을 요구하고 나선 바 있다. 이들은 생활보호 대상자, 장애인, 어린이, 노인 등 취약계층의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사회복지 예산을 당장 국내 총생산 대비 5%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취약한 사회보장

복지 각 분야를 들여다보면 실상은 더욱 심각하다. 노인복지의 경우 노령인구의 증가로 사회가 점점 고령화되고 있는데도 노인복지 대책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복지 예산은 94년 국가예산대비 약 0.15%, 이는 대만 2.8%, 일본 12%, 서구의 15~25%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12만 명이 넘는 무의탁 노인을 위한 양로원 등 노인복지 시설도 전국 1백여 개 남짓에서 7천여 명 정도만 수용하고 있다.

장애인에 대한 정책 부재 또한 마찬가지이다. 복지정책의 기본인 장애인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조차 없다. 정부는 90년 현재 전국 장애인이 모두 96만6천명이라고 발표했지만 장애인 단체들은 세계보건기구(WHO)에 의거해 4백만 명으로 추산한다.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실업률이 2.1%인데 반해 장애인 실업률은 32.6%이다. 장애인 가구 월 소득은 40만원 미만이 46.5%에 이른다. 이는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액 1백39만8천원과 비교하면 기본적 삶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대다수의 장애인이 절대빈곤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2백만에 이르는 절대빈곤층도 거의 방치돼 있다. 저소득층을 위한 생활보장으로는 정부 추정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몇 푼 안되는 생활지원금이 나갈 뿐이다. 현재 생활보호 대상자에게 지급되는 급여는 93년 5만6천원, 94년 6만5천원, 95년 7만8천원으로 점차 증가되긴 하지만 이는 육체적 생존만을 위한 최저생계비에도 부족한 액수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터무니없는 지원액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기준으로 얻어진 수치가 아니라 정부 예산 규모에 맞춰 가난한 사람들의 숫자와 규모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산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정책 입안 담당자들의 발상의 전환이다.

정부의지가 관건

국부가 증대하고 경제가 성장하면 빈곤의 문제도 자연히 사라진다는 주장은 과거 개발철학의 유산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가난의 나락에서 신음해 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정부의 획기적인 발상 전환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보장의 책임을 가족과 지역사회, 민간기구에 전가하는 보충적 복지이념에서 정부의 제도적 복지이념으로 방향을 과감히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전체 가구의 7.64%를 절대빈곤가구로 산정했을 때 이들을 빈곤선 이상으로 끌어올리는데 필요한 공공 부조비용은 연간 1조8백10억원, 한국의 연간 국방비가 10조5천억 원이라 할 때 그 10분의 1에 불과하다. 그 돈이면 3백만 명의 국민을 인간 이하의 삶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복지비용을 소비비용으로 보는 편견, 복지와 성장이 대립적이라고 보는 단견을 벗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획기적으로 발상을 전환하고 타 분야에 앞서는 과감한 투자가 이루어질 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보장은 그 성과를 눈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