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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기도] 믿음을 키우기 위한 기획 9 신앙과 삶

입력일 2012-03-05 수정일 2012-03-05 발행일 1996-03-17 제 1994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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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믿음을 선포할 의무 잊지 말아야
침묵은 신앙을 부인하는 행동
신앙과 삶은 분리될 수 없다. 믿음은 삶 안에서 그리고 삶을 통해서 표현되고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신앙은 삶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그러기에 삶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삶을 신앙의 장소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앙을 삶의 행위로 보는 것은 신앙이란 실제로 살아야 하는, 즉 산 신앙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삶 자체가 많은 문제들을 동반하고 있으며 신앙 역시 그 장소를 삶 안에서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앙문제는 곧 삶의 문제이고, 삶의 문제는 곧 신앙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삶 안에서 가지고 있는 신앙의 장소는 참 삶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신앙은 잘못된 삶을 끊임없이 반대, 질책하며 참된 삶을 살도록 요구, 촉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 신앙은 삶의 모순속에서 실현되어야 하고 또한 삶의 내적 모순, 갈등들을 극복해야만 하는 요청을 안고 있다.

● 삶의 장소는 신앙 안에서

신앙은 삶에 관련되어 있다. 삶의 관계를 말하지 않으면서 신앙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아들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요한 3,36). 우리는 바로 이 말씀 안에서 믿음과 삶이 연관되어 있음을 본다. 신앙의 주제는 삶이다. 하느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죽은 자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자들의 하느님이시다(마태오 22,32). 믿음의 생명은 미래에 있지만 이미 현재에 있고, 영원한 생명이지만 현세의 삶 가운데 있다. 여기에 이미 새로운 탄생, 새 생명의 시작이 비롯된다.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의미에서 생명은 부활의 신앙에서 분리될 수 없다.

◉ 신앙의 의무들

▲ 신앙을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믿음의 공동체 앞에서 고백해야 한다. 고백은 하느님의 역사하심에 마음을 열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태도이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찬미를 올바로 인식하고 공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에 관해 고백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에 관해 고백할 것입니다』(마태오 10,32:루가 12,8)고 약속하셨다. 따라서 우리의 구원은 『마음으로 믿는 것을 입으로 고백하여』(로마 10,10 참조) 얻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신앙의 고백이 요구될 때에는 분명하게 대답해야 한다. 만약에 이런 경우에 신앙고백을 거절하거나 신앙인으로서의 신분을 밝히지 않거나 또는 침묵하는 태도 따위는 신앙을 부인하는 행동이 된다.

▲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 : 예수께서는 당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마르코 3, 13)을 부르시어 그들을 『사람 낚는 어부』(루가 5,10)로 만드시고 진리를 선포하기 위해서 파견하셨다. 또 사도들에게 교회를 이끌어 갈 책임을 주시고 전권을 주어 진리를 가르치고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까지(마태오 18, 18 참조) 주셨다. 그러므로 교회의 이름으로 가르치는 교황이나 주교들의 교리는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 근거를 둔 권리이다(1 디모테오 3,15 : 에페소 2,20).

▲ 선교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파견을 받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다. 파견받은 이의 사명실천은 파견한 자의 파견목적에 따른다. 그러므로 예수의 모든 삶의 행동지침 내지 방향은 언제나 당신을 파견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이다. 성부께서 성자를 보내신 것처럼 성자는 사도들을 보내시며 『너희는 가서 만백성을 가르치고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주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다 지키도록 가르치라. 보라, 나는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노라』(마태오 28, 18~20) 하시었다. 예수는 말과 행동, 즉 삶으로 아버지를 증거하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인도 부활하시어 항상 우리 가운데 현존하고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해야 한다.

교회의 사명은 선교이다. 선교하지 않는 교회는 곧 죽은 교회이다. 신앙인은 자기의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을 선포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된다.

▲ 봉사해야 한다

바울로 사도는 신앙의 행동(1테살 1,3)과 사랑으로 행동하는 신앙(갈라디아 5,6)을 강조하였다. 신앙은 사랑으로서 나타나고, 사랑을 통해서 그 진실성이 증명된다. 사랑이 없는 신앙은 참 그리스도교적 신앙이 아니다. 신앙의 대상이신 하느님은 사랑이시다(1요한 4,9). 하느님 계명의 중심은 사랑이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친히 봉사의 삶의 모습을 보여 주셨다. 제자들의 발을 씻으면서 『너희도 서로 그렇게 하라』(요한 13,15 : 13장 참조)고 가르치셨다. 『나는 봉사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봉사하러 왔다』(마태오 20,28 : 마르코 10,14)고 하신 주님은 하느님과 인간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어 주고 봉사하셨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미천한 어린애로 이 세상에 오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인간에게 봉사하셨다(필립비 2장 참조).

우리의 봉사는 정신적인 것이나 물질적인 것으로만 끝나서는 안된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부와 선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실천이 없는, 즉 사랑의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예수께서 인간의 병을 치유해 주시고 고통과 질병으로부터 해방시키신 것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의 표현이다. 사랑과 봉사는 분리시킬 수 없다. 사랑이 있는 곳에 참된 봉사가 있고, 참된 봉사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천이나 봉사가 없는 교회에서는 참된 공동체 의식이 있을 수 없다.

초대교회는 그들이 가진 바 모든 것을 서로 함께 나누는 친교의 공동체, 사랑의 나눔의 공동체였다. 이처럼 참된 신앙은 깨달음만으로 족하지 않고 실천하는 삶이 요구된다. 『실천이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야고보 2,26)이기 때문이다. 신앙의 실천을 위해서는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