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나는 왜 냉담했나] 14 자녀 양육문제로 인한 냉담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2-03-05 수정일 2012-03-05 발행일 1996-03-10 제 1993호 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냉담원인 분석/그 예방을 위한 기획
“아이 돌봐 줄 봉사자 있었으면…”
산후조리하다 보면 두세달 미사불참 예사
생활방식 아이 위주로 변화 자연 소홀해져
인천지역에 사는 김정숙씨(가명ㆍ37세)는 현재 소속 본당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이처럼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이 있어야 했고 87년 영세를 하고 난 후 9년간 두세 차례의 냉담시기를 거쳐야 했다.

고향인 전라남도 광주에서 85년 결혼하고 1년이 조금 넘은 87년 초 세례를 받은 김정숙씨는 영세후 1년 남짓 지난 88년부터 한번 두 번 주일미사를 빠지기 시작하면서 냉담의 기간을 경험하게 된다.

그처럼 열심한 마음으로 예비자 교리를 받고 영세와 함께 새로 태어난 기쁨을 주체 못하던 김씨가 냉담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 양육 문제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곳곳에 성당이 있지 않았고 김씨의 경우만 해도 15분을 걸어나가 뜸한 버스를 한참 기다려야 했고 더구나 2번이나 차를 갈아타고서야 겨우 성당을 갈 수 있었다. 혼자 몸이라면 얼마든지 갈 거리이지만 유난히 몸집이 컸던 아이를 데리고 가는 길은 꽤 힘이 들었다.

남편 역시 건설회사에서 일하는 관계로 일요일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를 데리고 성당을 가는 일은 언제나 혼자서 해결해야 했고 몸도 그다지 건강하지 못했던 김씨는 매주일 성당 가는 길이 쉽지 않았다.

『물론 옛날 선조들은 산길을 숨어다니면서도 신앙을 지켰다는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나름대로는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이듬해인 89년에는 논산으로 이사를 갔다. 논산에서도 성당 가는 길이 멀긴 했지만 아이가 그럭저럭 걸을 수 있게 되자 한결 수월했다. 그러다가 다시 91년 광주로 이사를 했고 두 번째 아이가 태어나면서 다시 주일미사 참례가 쉽지 않았고 냉담은 점점 길어졌다.

『단순히 성당이 멀어서만이 아니라 아이들을 키우면서 모든 생활이 아이를 중심으로 해서 이루어지게 되다 보니까 미사 빠지기가 부지기수예요. 예를 들어 미사 시간이라서 성당을 가야 하는데 아이가 잠을 잔다거나 몸이 좀 안 좋다거나 하면 우선 아이를 돌보는 일이 급하게 되거든요. 그러다보면 미사시간을 놓치게 되지요.』

93년 김씨는 현재 살고 있는 부천으로 이사를 왔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여러 가지 이유로 미사가는 길이 즐겁지 만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 김씨는 일부러 다른 신자들과 적극적인 만남을 가지려고 노력했고 봉사활동 등 성당일에도 능동적으로 나섰다.

그런 노력은 결실을 얻어 본당의 다른 신자들과 친교를 갖고 지금은 주일학교 교사활동이나 반모임 등에서도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임하고 있다. 아이들도 엄마의 손을 일일이 필요로 하지는 않을 정도로 컸기 때문에 신앙생활 자체가 어려움을 겪을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엄마의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신앙생활이 주일미사 참례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김씨는 주일학교 교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일주일에 두세 번씩 되는 모임에 나간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이들은 아무 일 없는지 남편 저녁식사는 했는지 등등 주부로서, 엄마로서의 일들이 성당 활동에 열심히 임하는데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김씨가 다니는 성당은 지역의 특성상 20대 신혼부부에서 결혼한 지 채 10년이 못되는 젊은 부부들이 전체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갓난아이부터 국민학교 저학년까지 어린 자녀를 둔 이들은 단체 활동은 둘째 치고 때로는 본의 아니게 주일미사를 궐하게 되는 일이 많다고 한다.

5살 된 남자아이와 9개월에 접어든 딸을 둔 한 주부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아이를 낳고 나서 산후조리를 하다 보면 두세 달은 미사를 빠지게 되지요. 그 후에도 혹시 겨울이라도 되면 갓난아이를 안고 집을 나서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렇게 몇 달 성당을 안나가다보면 자칫 냉담하게 될 수 있지요.』

김정숙씨는 이런 문제에 대해 성당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요즘에는 성당마다 유아실이 설치돼 있어 훨씬 형편이 낫기는 하지만 미사시간동안 아이를 돌봐줄 봉사자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하지만 김씨는 보다 근본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은 이웃끼리 잠깐씩이라도 아이들을 돌봐주는 등 서로의 어려움을 나누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점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