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금주의 복음단상] 233 고난을 이겨내는 체험/강길웅 신부

강길웅 신부ㆍ광주 지산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2-03-05 수정일 2012-03-05 발행일 1996-03-03 제 1992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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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2주일 (마태 17,1~9)
우리가 한 세상 걸어가노라면 소중한 체험을 도처에서 만나게 됩니다. 그것들은 어떤 의미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당신의 사랑이며 또한 고달픈 길을 은혜로써 걸어갈 수 있는 큰 축복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많은 경우 우리는 그 값진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립니다. 듣고도 듣지 못하며 보고도 보지 못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여정이 다 비슷합니다. 누구는 좀 부유하게 살면서 편하게 걸어가고 있고 누구는 또 좀 가난하게 살면서 외롭게 걸어가고 있지만 그러나 그 길이 실제로는 모두 비슷합니다. 부자에게도 고난이 있을 수 있고 가난한 길에도 눈부신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눈을 어디에 뜨고 귀를 어디에 열고 있느냐가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께서 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 그의 모습이 환하게 빛나면서 제자들을 놀라게 합니다. 그리고 그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하는 목소리가 구름 속에서 들려왔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수님 자신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똑같이 아주 소중한 체험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독서(창세12,1~4)에서는 아브라함에게 내리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나옵니다. 거기서 하느님은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큰 사랑을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생전에 얻은 땅은 자기 마누라 무덤자리 조금 뿐이었으며 또 자손 역시 아들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느님의 축복과 약속은 무엇이냐. 하늘의 별보다 더 많은 후손을 약속해 주셨는데 그 후손을 아브라함은 보질 못합니다. 또 넓은 땅을 약속해 주셨는데 아브라함은 그 땅도 얻질 못합니다. 그러면 그 축복과 약속의 의미는 무엇이냐. 그것은 지금 당장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모든 축복이 그렇습니다.

이를테면,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에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선언하셨는데 하느님은 그 아들을 십자가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사랑하신다고 하시고는 곧장 죽음의 길로 이끄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의 사랑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서 하느님께서 약속하시는 말씀의 뜻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아주 고달픕니다. 너무 외롭고 또 눈물납니다. 차라리 하느님의 사랑이 아니라면 세속에서 더 떵떵거리며 내 멋대로 살 수 있습니다. 간섭 안 받고 눈치 안보며 신간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라는 것이 뭔지,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것이 뭔지 눈에서 피가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눈물이 없다면 그 가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축복은, 고난과 슬픔이 없다면 그 의미가 상실되고 맙니다. 아마 그래서 하느님께선 우리로 하여금 역경을 이겨나가게 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좋은 체험을 마련해 주십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변모의 사건도 그런 것이고 아브라함이 체험한 내용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가정에 젊은 어머니가 갑자기 병을 얻어 일찍 죽게 되었는데 큰 딸이 겨우 열 살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딸에게 그랬습니다. 『너는 나이가 열 살이라도 이제 이 집에선 어머니와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내가 없어도 네가 동생들을 잘 돌보고 키워야 한다』. 그때 그 딸 밑으로 동생이 셋이나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큰 딸은 어머니의 말씀을 하루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열 살밖에 안 된 딸에게 어머니의 역할을 맡기신 그 자체가 딸에게는 너무도 감격스런 소명이었으며 그리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엄청나게 큰 에너지였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딸, 내 마음에 드는 딸이다』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그 딸에게 늘 들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큰 딸은 정말 자기 동생들을 잘 키웠으며 셋 다 대학까지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결국은 성공해서 백악관의 비서로 들어갔습니다. 벌써 오래전의 얘기지만 그녀의 전기를 읽었을 때 그것은 참으로 큰 감동이었습니다. 사랑은 고달픕니다. 그러나 사랑을 믿는 자들에게는 절대로 고달프지 않습니다.

우리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딸이다』라는 목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듣는 사람하고 못 듣는 사람하고는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납니다. 우리가 귀만 열면 그분의 목소리는 도처에서 들러옵니다. 그리고 그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때 우리는 어떤 처지에서도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강길웅 신부ㆍ광주 지산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