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앙과 기도] 믿음을 키우기 위한 기획 8 구원을 위한 신앙의 필요성

정하돈 수녀ㆍ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입력일 2012-03-05 수정일 2012-03-05 발행일 1996-03-03 제 1992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신앙은 구원 ㆍ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
바울로 사도, 믿음 통한 구원 ㆍ 사랑행위 강조
우리가 하느님을 믿고 공경하는 것은 구원받기 위해서이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을 인간의 목적으로 설정하셨기 때문에 하느님께 합일하는 것이 인간의 행복이요 목적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구원받는다는 것은 창조주 하느님이 인간에게 설정한 목적을 다 채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목적은 인간의 능력한계를 초월하는 하느님 자신이므로, 하느님께서 먼저 열어주시지 않는다면 도달할 수 없다』: 『눈으로 본 적도 없고 귀로 들은 적도 없으며 사람의 마음속에 떠오른 적도 없는 것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마련해 두셨다』(이사야 64,4인용: 1고린토2,9). 그래서 하느님은 우리 신앙의 대상이요 목적이시고, 인간의 행복은 하느님을 차지하고 뵙는 데 있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제시하는 구원은 자유, 해방, 사랑, 기쁨, 평화, 생명, 빛, 화해, 의화, 치유, 구속, 왕국 등의 개념과 상징들로 표현된다. 특히 요한 복음서에서는 빛, 진리, 생명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앙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여러분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르코 1,15)

예수께서는 신앙이 있을 때에만 기적을 행하셨다: 『나자렛에서는 그들의 불신 때문에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다』(마태오 13,58). 예수는 『너희들이 믿은대로 너희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마태오 9,28~29)고 말씀하시면서 소경의 눈을 만지시자 그들의 눈이 열렸다. 깊은 신앙은 치유와 죄의 용서까지도 가능케 했다: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용기를 내어라 아들이여, 너의 죄는 용서받았다」하고 말씀하셨다』(마태오 9,2).

신앙은 구원을 위한 조건이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맏물로 택하여 영에 의한 성화와 진리에 대한 믿음에서 오는 구원을 주시려 하십니다』(2 테살로니카 2,13). 그러므로 『그대가 그대의 입으로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고, 하느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것을 그대의 마음속으로 믿으면 그대는 구원받을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으면 의로움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면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로마 10,9~10).

바울로 사도는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신비로부터 구원을 연유케 한다. 『아들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것』(요한 3,36)이며, 어둠속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요한 12,46 참조). 길이요 진리이고 생명이며 빛이신 예수를 믿는 이는 죄악에서 죽음을 피하고(요한 8,24)생명을 얻고(5,40) 빛의 자녀가 되며 (12,3)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20,29).

복음선포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 보다 더 날카로워 혼과 영, 관절과 골수를 갈라 놓기까지 꿰뚫으며 마음의 생각과 의향을 판단합니다』(히브리 4,12). 신앙은 인간과 인간세계의 구원의 조건이며 그 시작이다: 「곧 마음으로 믿어서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놓이게 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된다」(로마 10,10).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없고」(히브리 11,6), 신앙이 없이는 의화에 이를 수도,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없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하느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내 보여주신 말씀과 행위를 인정하며 받아 들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은 하느님의 의로움을 인정하는 동시에 인간의 불의를 인정한다. 신앙은 인간의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동시에 그리스도의 은총과 구원을 인정하며 고백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인간은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다.

참 신앙은 과거 세속적 생활을 떠나고, 나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으로 사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신앙은 묵은 자아가 죽고 새로운 나가 탄생하게 한다. 「떠나라」 혹은 「따르라」는 말은 자신으로부터의 이탈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으로부터 떠나야 하고, 자신을 내맡기고, 자신의 삶속에서 실제로 그분이 가신 길을 뒤따라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이탈, 자아포기, 즉 죽음이 요구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썩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요한 12,24).

자기이탈, 자아포기, 죽음은 자유를 얻기 위함이다. 구원은 참 자유를 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죄없는 참 자유인이시다(요한 8,46: 히브리 4,15). 예수는 당시 모든 생활관습이나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관습과 이해로부터 자유로우셨다. 그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우셨기 때문에 하느님과 인간에게 온전히 자유롭게 봉사할 수 있으셨다. 드디어 그분의 자유는 십자가의 죽음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고 절정에 이르렀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다』(로마 1,17). 그러므로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는 아무도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질 수 없다』(로마 3,20). 그렇다면 신앙만이 인간을 구원하는가? 『오직 믿음을 통해서』란 말은 인간의 선한 행위나 공적 또는 노력이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행위가 인간을 의롭게 하지 않고 신앙만이 인간을 의롭게 한다. 신앙이 그리스도에게 속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라면 열매를 맺어야 한다. 신앙의 열매는 곧 사랑의 행위이다. 그러기에 참 신앙이 있는 곳에는 사랑이 있고 아울러 사랑의 행위가 있다. 사랑의 행위가 없다면 그것은 참 신앙이 아니다. 사랑하는 신앙만이 우리를 의화에로 인도한다. 이처럼 신앙은 사랑을 포괄하며 사랑은 행위속에서 산다. 그러기에 신앙과 삶, 신앙과 행위는 분리될 수 없다. 그러므로 바울로 사도는 믿음을 통한 구원을 강조하면서 사랑의 행위를 또한 강조한다 (갈라디아 5장, 로마 1장 참조): 「오직 사랑으로 행동하는 신앙」(갈라디아 5,6) 이 중요하다. 사랑이 곧 신앙의 삶이기 때문이다.

정하돈 수녀ㆍ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