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금주의 복음단상] 232 사랑은 원수까지도/강길웅 신부

강길웅 신부ㆍ광주 지산동본당 주임
입력일 2012-02-28 수정일 2012-02-28 발행일 1996-02-18 제 1991호 13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연중 제 7주일 (마태5.38~48)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무엇보다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누가 뭐래도 삶이 거룩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고 또한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레위19,1~2: 17~18)에서는,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만일에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삶이 거룩하지 못하면 그는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사랑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그 사랑이야말로 바로 거룩한 삶의 지름길이 됩니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 쉽고 즐거우면서도 다른 한편 또 너무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눈물나는 일입니다.

이를 테면 나한테 잘해주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습니다. 내 시간과 내 정력이 아깝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는 삶의 에너지가 크게 생깁니다. 그러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죽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는 것이 쉽고 유쾌한(?)일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 아주 위대한 일이 됩니다. 굉장히 어렵고 힘들기 때문에 더 공로가 되고 더 은혜가 됩니다. 자신이 죽어야만이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이라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랑이요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억지로라도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 때 그는 큰 축복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집에 며느리가 하나 들어 왔는데 이것이 아주 요물이라 시아버지 알기를 아주 우습게 여깁니다. 밥도 제대로 드리지 않으며 건듯하면 말 대답이요 한술 더 떠서 시아버지를 쫓아내겠다고 하니 참으로 가관이요 기가 찰 일이었습니다. 어쩌다 아들이 뭐라고 한마디 하면 눈에 쌍심지를 켜들고 대드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가슴앓이만 했습니다.

하루는 장에 갔다온 아들이 자기 마누라에게『세상에 별 희한한 일이 다 있습니다. 아, 글쎄 통통하게 살찐 영감을 사겠다고 소리치고 다니는 작자가 있던데 그걸 보니까 생각나는 것이 꼭 한가지 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누라가 무릎을 치며『맞아요. 아버지를 살찌워서 팔읍시다』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날부터 며느리는 시아버지 공경을 아주 극진하게 했습니다. 비싼 값에 팔려는 욕심 때문에 돈도 아끼지 않고 고기와 쌀밥으로 늘 봉양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먹는 것만 가지고는 살이 안 찔 것이라고 생각해서 시아버지의 맘을 편하게 해드리기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 바칩니다. 마을에 갔다 오면 안마도 해드리고 방은 늘 따뜻하게 지펴놓곤 했습니다.

이러니 시아버지가 참으로 살 판이 났습니다. 하루는 며느리에게 그랬습니다. 『얘야, 내가 요즘 마실에 다니면서 아주 기를 펴고 산다. 사람들이 온통 네 자랑이요, 칭찬이 자자하여 동네에서 원님 앞으로 효부상을 올리겠다고 하는구나. 세상에 시아버지 안마까지 해주는 며느리가 너 말고 누가 또 있겠느냐』하면서 감격해 하셨습니다.

그러자 며느리가 답을 했습니다. 『아이고, 아버님도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부모님 잘 모시는 것은 사람의 도리인데도 글쎄 요즘 우물가에 가면 동네 여자들이 저보고 속도 곱고 마음도 비단 같다고 칭찬들이 많아요. 사람들이 저희 집에 효도 구경 오겠대요』하면서 진심으로 시아버지 공경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날 밤이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은근한 목소리로『여보, 이제 저 정도면 값을 비싸게 받을 것 같으니까 오는 장날에는 아버지를 그만 내다 팔도록 합시다』하고 마음을 떠 봤습니다. 이때 부인이 남편 따귀를 냅다 갈기면서『세상에, 자기 아버지를 장에 팔자는 아들이 어디 있어요』하면서 자기는 시아버지 모시는 재미로 산다고 하더랍니다.

자기 편한대로 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해선 자기가 죽어야 하며, 죽어야만이 사랑할 수 있는 그 사랑이야말로 예수님처럼 가장 큰 사랑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기 위해서 죽어야(?)합니다. 정말 죽어야 합니다. 그래야 성서가 말하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죽지 못하면 우리는 바보 신자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던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배반하여 그분의 계명을 소홀히 한 잘못도 부지기수였습니다. 그래도 하느님은 우리를 늘 용서해 주셨으며 청하지 못하는 은혜까지도 채워 주셨습니다.

우리도 서로 사랑합시다. 특히 원수를 사랑하도록 합시다. 이것이 하느님의 거룩함을 닮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강길웅 신부ㆍ광주 지산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