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나는 왜 냉담했나] 13 이향으로 인한 냉담

김상재 기자
입력일 2012-02-28 수정일 2012-02-28 발행일 1996-02-18 제 1991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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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원인 분석/그 예방을 위한 기획
도시서 느끼는 건 소외감 뿐
「촌놈」이라고 따돌림…… 외로움도 한 몫
자격지심까지 겹쳐 신앙생활 더욱 곤란
권순식(가명 55세ㆍ테오도로)씨는 고향에서 물려받은 농사만을 지으며 묵묵히 살아온 전형적인 농부로 슬하에 2남1녀를 둔 태중교우였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을 때 권씨는 공소회장을 맡기도 하는 등 주변에서 예수쟁이로 불릴만큼 열심한 신자였다.

『땅과 함께 살 때처럼 마음 편한 적이 없었지요. 그때는 하루에 일용할 양식이 있었고 한마음으로 같이 생활하던 신자들이 있었어요』라며 지난 날에 대한 진한 향수를 들려준 권씨는 지금부터 10년 전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해왔다.

권씨의 이주의 첫째 이유는 자녀들의 교육문제였다. 권씨가 살던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10여km 떨어진 곳으로 학교는 초등학교 분교 하나만이 있었고 아이들이 도시에 있는 상급학교로 진학하자 이중살림에서 오는 부담이 컸다.

자녀들의 교육문제와 맞물려 경제적 어려움을 느끼던 권씨는 농한기가 되면 아이들이 있는 도시로 와 며칠씩 아이들의 자취방에 머무르며 막노동을 하기 시작했다.

막노동을 하면서 날마다 손에 쥐는 현금에 재미를 붙인 권씨는 10년 전 아예 고향의 땅을 팔고 도시로 이주해왔다.

『딱히 돈 때문이 아니라 부모없이 저희들끼리 학교가고 밥해먹는 아이들의 모습도 애처로웠고 또 도시에 보내놓고 나니 아이들이 주일미사도 참석하지 않는 등 아이들의 신앙문제에 있어서도 고민이 많았지요』

권씨는 처음에 아이들이 도시에 나가서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도록 권유했으나 아이들은 도시본당 학생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처음 몇 번만 본당에 나갔다가 성당에 발을 끊었다고 한다.

권씨의 아이들은 시골에서 왔다는 열등감이 있는데다 미사가 끝나면 친한 친구들끼리만 모여 놀고 누구도 자신들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없어 처음 몇 번은 서먹서먹한 채로 주일미사만을 나갔지만 성당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도시로 이주해온 권씨는 아이들의 이런 행동을 나무라면서 자신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권씨는 주일미사를 빠지지 않기 위해 일을 나가는 일요일이면 새벽미사를 참례하고 가는 등 처음 얼마간은 꾸준히 신앙생활을 했으나 본당에서 누구도 자신에게 관심을 두지않자 차츰 본당에 나가는 것이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고향에서 공소생활을 할 때는 누구나 한 집 같았어요. 힘든 농사일 속에서 공소예절이 끝나고 신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막걸리라도 함께 한 잔 하다 보면 신앙생활의 기쁨이 절로 솟아났고 교리를 몰라도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워 일주일 내내 주일이 돌아 오기만을 기다렸지요』

한마디로 권씨는 그동안의 도시생활에 대해「외로웠다」고 표현한다. 미사를 마치고 혼자만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왜 그렇게 을씨년스러웠는지 몰랐다는 권씨는 도시생활 삼년만에 냉담했다. 이에 대해 권씨는『신앙을 혼자서 지키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알았다』면서『배운 것이 있든 없든 신앙생활은 즐겁고 기뻐야 하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사귀어야 하는데 시골사람이 도시에 와서 느낀 것은 소외감뿐이었다』고 말한다.

경제적인 문제도 많이 작용을 했지만 권씨는 지금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고향에 돌아가서 예전처럼 흙과 함께 살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싶다는 권씨에게 도시본당의 신자들은 너무 무정했다.

처음 권씨가 도시본당에 나갔을 때 본당신부를 찾아 인사를 했지만 그 이후 본당신부의 따뜻한 말 한 마디를 받아보지 못했고 본당단체라도 들고 싶어 여기 저기를 기웃거려 봤지만 어떤 곳에서도 선뜻 자리를 내주는 곳이 없었다. 또한 시골에서 생활할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많은 생활비와 각종 기부금도 권씨의 기를 죽게 만들었다.

권씨에 따르면 권씨와 같은 처지의 많은 이향신자들이 도시본당에 가면「촌놈」이라고 따돌림 받는다고 아예 미사참례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권씨는『천주교 신자들이 무뚝뚝하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고 여기다가 가진 것 없이 도시로 나오는 이향민들의 자격지심까지 합쳐 농촌을 떠나온 사람들이 신앙생활 하기란 더욱 어렵다』고 말했다.

권씨는『각 교구마다 이향신자들을 사목하는 부서가 있어 교구 내에서나 혹은 타 교구에서 전입해오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처음 얼마간 관심을 가지고 지도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란은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자신이나 혹 주변에 냉담과 관련한 사연이 있으시면 연락해 주십시오(02-778-7671 : 053-255-2485). 신자 여러분들의 참여와 다양한 의견을 기다리겠습니다.

김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