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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냉담했나] 12 금전거래에 얽혀 냉담

전대섭 기자
입력일 2012-02-28 수정일 2012-02-28 발행일 1996-02-11 제 1990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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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원인 분석/그 예방을 위한 기획
비신자보다 더한 재물욕에 실망
사목위원이 선동해 사기꾼으로 고소
누명 벗었지만 남는건 깊은 좌절감뿐  
『아무리 신자라고 하지만 재물에 대한 욕심에서는 비신자와 다를바가 없더군요. 어려울 때 너무나 어이없게 당한 일이라 충격과 때론 분노를 억누를 수가 없었습니다』.

박소현(가명ㆍ54)씨. 금전문제로 너무나 곤란한 경우를, 그것도 두 번씩이나 겪으면서 그 상대가 모두 같은 신자였다는 사실에 허탈감과 함께 부끄러운 생각이 든다고 했다. 결혼 32년째를 맞는 그녀는 남편과 함께 80년대 초 지금의 장소에 정착했다. 어렵게 마련한 전세금으로 세를 들었다. 소속 본당의 총회장 집이었으니 박씨는 내심 반가웠다.

『한참을 살다가 갑자기 회장님이 이 집을 살 마음이 없느냐고 하더군요. 상의 끝에 무리를 해서라도 사기로 하고 구두로 계약을 했습니다. 한가지, 다 낡은 그 집을 저희 책임 하에 개조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본당 회장님이니까 믿었었고, 그 자리에서 바로 매매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어서 계약서를 따로 만들지는 않았습니다』.

이것이 불찰이었다. 집을 개축한 후 6개월이 지났을 무렵, 주인은 계약한 사실을 부인하며 집을 비워 달라고 요구했다. 공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전세를 들였는데 그 전세금까지 책임을 지라는 것이었다. 『세입자가 임의로 집을 고치고 전세금까지 가져갔다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는데 기가 막혔습니다. 아들이 세무서 과장으로 있으니 해볼 테면 해보라는 것이었어요』.

장마철에 박씨 가족은 결국 내쫓겨 본당 여성회장 집에 기거하게 됐다. 전세금 40만원도 빚을 내 물어줬고 공사대금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했다. 그 와중에 아들 등 주인집 가족들의 폭언과 협박이 계속됐다. 엄청난 상처를 입은 박씨는 이후 1년 넘게 성당을 찾지 못했다. 그녀는 『어떻게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는지, 같은 신자가 그럴수가 있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 후 수녀님의 권유로 마음을 돌려 꾸르실료를 수료하고 레지오 단장으로 활동하는 등 신앙생활을 이어갔던 박씨는 몇 년 뒤 또 한 차례 시련을 당한다. 남편이 호텔신축 사업에 관여했다가 직원의 사기행각으로 자금난에 몰리게 된 것. 실제 사장은 다른 사람이었고 남편에게 사업을 맡긴 것이다. 사업규모는 당시로선 그 지역에서 가장 대규모였다. 그때까지 박씨는 여러 사람들에게 사업자금을 빌려썼고, 그 중엔 신자들도 두 명 있었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자 『자금압박으로 더 이상 공사를 할 수 없다』는 괴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도 들렸다. 박씨는 채권자들을 찾아가 사정을 호소하고 꼬박꼬박 이자는 줄 테니 기다려 줄 것을 요청했다. 문제는 엉뚱하게도 채권자들 가운데 신자들에게서 터져 나왔다. 유독 신자들만 나서서 『빌려간 돈을 내놓으라』며 윽박질렀다. 전혀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가 나서서 이들을 선동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는 다름아닌 본당 사목위원이었던 김모씨였다.

김씨는 이들을 선동해 빚독촉을 하게 할 뿐 아니라 『고의로 사고를 일으켜 돈을 떼먹으려 한다』면서 박씨 가족을 사기꾼으로 몰았다. 결국 이들의 고소로 말미암아 박씨의 남편은 구속될 처지에 놓이게 된다.

『당시 고소장을 접수 하면서 김씨가 주동이 되어 사목위원 10여 명과 본당 신부님이 직접 서명한 진정서를 함께 제출했습니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습니다만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서 관계자도 산자였는데 고소인 피고소인이 모두 천주교 신자라는 게 자신이 보기에도 부끄러우니 서로 합의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얘기까지 할 정도였어요』. 그러나 얼마안가서 신자들을 선동했던 김씨가 당시 이 사건을 빌미로 호텔사업을 가로채려는 무리들과 한패였다는 사실이 들통났고 박씨 가족의 누명도 함께 벗겨지게 됐다.

박씨는 사목위원들과 김씨가 있는 자리에서 사과를 받았고, 본당 신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오해를 푸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박씨와 가족들이 입은 상처와 아픔은 이미 깊을대로 깊어진 상태였다.

『인간적으로 내 돈이 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면 누구나 쉽지 않겠지요. 하지만 비신자들도 사정을 이해해주고 아량을 베풀어 주는데 신자들이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지 너무나 깊은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박씨는 친오빠가 신부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처음 어려움을 겪었던 그 집 주인도 가족 중에 신부님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씨는 『집안에 신부님이 계시다는데 뭘 못 믿겠느냐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고 덧붙였다.

전대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