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 가톨릭 문학산책] 15 「황무지」에서 성인상(聖人像)에로 - T.S. 엘리어트

성찬경ㆍ시인ㆍ성균관대 대우교수
입력일 2012-02-28 수정일 2012-02-28 발행일 1996-02-04 제 1989호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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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압도한 종교적인 시상
만년에 가톨릭 사상 뚜렷이 표출
종교적 상념 떠난데서 오는 삭막ㆍ황폐한 세계 철저히 부각
“문학에서는 고전주의자요 정치에서는 왕당파요 종교에서는 영국국교 가톨릭파”
96년은 문화체육부가 정한「문학의 해」이다. 출판계의 불황이 끝이 안보이는 가운데 문학의 자리는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첨단 영상문화의 거센물결에 그 본래의 자리를 위협받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기까지 하고 있다.

하지만 심오한 정신적 영역을 건드리는 깊은 사색과 영혼의 양식을 제공하는 문학의 힘은 시대의 조류에 의연하게 살아남을 것임을 많은 사람들은 믿고 있다. 특히 위대한 인간 정신, 신의 섭리와 은총을 문학의 주제로 삼는「가톨릭 문학」작품들은 불멸하는 고전으로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가톨릭신문은 지난 91년「가톨릭 문학산책」이라는 이름으로 고금의 빛나는 가톨릭문학 작품들을 소개한 바 있다. 독자들의 열띤 호응 속에 게재된 이 시리즈가 92년 11월26일 제14회 파스칼의 명상록「팡세」를 끝으로 중단된 뒤 많은 원로 작가들과 문화계 인사들, 그리고 일반 독자들로부터 재개에 대한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문학의 해」를 맞아 풍요한 정신적 가치를 지닌 가톨릭문학 작품들을 선정, 권위있는 필진의 해설을 통해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가톨릭 문학산책」이 지녔던 품격을 이어받기 위해「신 가톨릭 문학산책」을 제목으로 하는 동시에「가톨릭 문학산책」의 횟수를 뒤이어 제15회부터 시작된다. 위대한 작가들이 전하는 깊고 뜨거운 신앙의 고백, 인간과 신에 대한 심오한 사색의 샘으로 빠져들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이제 20세기도 거의 다 저물다시피 했다. 20세기가 낳은 위대한 시인을 생각할 때 우선 떠오르는 이름이 몇 있는데, 엘리어트가 그 중의 한 사람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마 이때 사람들은 보통 엘리어트와 더불어 아일랜드 출신의 W.B. 예이츠, 독일의 라이너 마리아 릴케, 프랑스의 폴 발레리를 생각할 것이다.

엘리어트의 시 세계를 생각할 때에 나는 그가 참으로 신기한 일을 용케 해냈구나 하는 감회를 금할 수가 없다. 그는 본질적으로 종교적인 시인이었으며, 특히 만년에 갈수록 가톨릭 사상의 경향을 뚜렷이 드러낸 시인이었다.

20세기는 도저히 종교적인 경향이나 주제를 환영하는 시대가 아니다. 오히려 20세기의 시대적 사조는 무신론쪽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시대에 엘리어트는 종교적인 시상(詩想)을 가지고 세상을 압도하고 이끌어간 것이니 그의 시가 지니는 힘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할 만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결코 종교적인 세계를 성가 부르듯, 소박하듯 찬미하며「종교시」를 쓴 시인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초기 시는 종교적인 상념을 멀리 떠난데서 오는 삭막하고 황폐한 세계를 철저히 부각시키고 있다. 이 일 역시 역설적인 의미에서 매우 종교적인 추구라 할 수도 있다. 한 마디로 엘리어트의 종교시는 매우 심각하다.

토마스 스턴스 엘리어트(Thomas Stearns Eliot, 1888-1965)는 미국 남부의 세인트루이스에서 개신교 중에서도 급진적이라 할 수 있는「유니태리언」교파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나중에 영국에 귀화했으며 종교도「영국 국교 가톨릭파(Anglo Catholic)」로 개종을 했다. 1928년경 엘리어트는 자신에 관한 세 가지의 입장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곧 『자신은 문학에서는 고전주의자요, 정치에서는 왕당파요, 종교에서는 영국국교 가톨릭파』라고 했다. 그러나 엘리어트는 영국 사회와의 조화를 위해서 비록 소속은 영국국교이지만, 자기가 제일 마음 편하게 느끼며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은 천주교 사상이라고 누차 말한 바 있으며, 그의 종교적 사상의 핵심은 천주교의 교리와 조금도 모순되는 점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종교에서의 그의 폭넓은 절충 능력을 감안하고서도 그렇다.

「4월은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장시「황무지」(The Waste Land)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어트가 왜 4월은 잔인하다고 말했는지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본 사람이 많을지 의문이다. 만약에 이 세상이「참 삶」과「참 생명」에 가득차 있다면 새싹이 움트고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은 그야말로 기쁨이 충만한 계절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이 세상에「참 삶」과「참 생명」은 없고, 있는 것은 다만 삶도 아니요 죽음도 아닌, 따라서 컴컴한 어스름 뿐이라면 어떻게 될까? 그런 경우면 차라리 모든 것이 눈 속에 덮여 있는 망각의 계절이 오히려 자비로울 수 있으며, 잠에서 기억과 의식을 되살려 주는 4월은 오히려 잔인하다 할 수 밖엔 없을 것이다. 장시「황무지」는 이러한 심각한 역설을 그 밑바닥에 깔고 있다.

1922년에 완성된 이 시는 여러 가지의 주제와 동기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진행이 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모티브는「참 삶」과「참 죽음」은 마치 동전의 표리처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하나이며, 「참 삶」이 있어야「참 죽음」이 있고, 「참 죽음」이 있어야「참 삶」이 있을 수 있다는 매우 심각한 묵상이다.

「참 죽음」은 오히려 구원이다. 왜냐하면「참 죽음」에서「부활」곧「참 삶」이 오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구제받을 길이 없는 것은「삶」비슷하면서도「삶」이 아니요, 「죽음」비슷하면서도「죽음」도 아닌 그러한 상태이다. 그러한 상태야말로 영원히 저주받은「황무지」일 수 밖에 없다.

「황무지」제3부에 부동산 소개업으로 어느 정도 치부를 한 청년이 한「타이피스트」와 순전히 순간적인 성적 쾌락을 위해서 정사(情事)를 가진 후 사라지는 장면이 나온다.

애인에게 생색 내듯 마지막 키스를 해주고

불도 안 켜진 계단에서 길을 더듬는다…

한편 남자 애인이 떠났는지도 모르는「타이피스트」는 거울을 보면서 자동적인 손길로 머리 매무새를 고친다. 나는 이렇게 삭막하고 허무한 장면 묘사를 달리 찾을 수가 없다. 카프카를 연상하게 되기도 하는데 여기에서만은 카프카 조차도 엘리어트를 따를 수 없지 않을까 싶다.

1942년경 엘리어트가 완성한「네 4중주곡(Four Quartets)」은 엘리어트 자신에게도 필생의 대작일 뿐만 아니라 아마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상징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엘리어트는 전에「음악의 형식을 시에 응용해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는 그러한 의도를 이 작품에서 실험적으로,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룬 셈이다. 특히 그는 이 네 편의 시에 이른바 음악에서의「소나타 형식」을 거의 충실히 재현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이 네 편의 시는 그 주제가 비길 바 없이 넓고 깊은 우주적이어서 인생, 역사, 예술, 언어, 종교의 각 방면에 걸쳐 거의 나오지 않는 주제가 없지만 나의 생각으로는 그 중에서도 가장 중심적인 주제는「시간과 영원」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현명한 엘리어트가 겉으로 드러내놓고 있지는 않지만, 네 편의 시를 통해서 은은히 울리고 있는 것은 성인(聖人)의 경지에 다다르는 길, 그리고 성인의 경지 그 자체에 관한 추구와 묵상이다.

말하자면「성인학(聖人學)」이라 할 수가 있으며,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 모음 중에서 첫번째 시(詩)인「번트 노튼」에는 시간에 대한 엘리어트의 생각을 담은 시구가 나온다.

현재의 시간과 과거의 시간,

이 둘은 다 미래에 있을 것이다.

또한 미래는 과거에 포함돼 있을 것이다…

있을 수도 있었던 일은 하나의 추상이며

다만 사색의 세계에서만

영원한 가능성으로 남는다.

있을 수도 있었던 일과 실제로 있어온 일은

한 점을 가리키며, 그 점은 항상 현재이다.

난해하긴 하지만 이러한 시구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네 4중주곡」중 다른 곳에 나오는 시구도 참작해서 나는 엘리어트의 생각을 대략 다음과 같이 풀이해 본다. 「무진현재(無盡現在)」로서의「현재」는 바로「영원」의 모습이 나타남이다. 사람은 오직 현재를 통해서만「영원」에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시간을 통해서만 시간은 정복된다』)

그리하여 과거의 인연에 사로잡히지 말고, 또한 미래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도 말고 온전히 현재에 충실하게 살 때 그것이 바로「현재」와「영원」을 교차시키는, 그리고 영원에 참여하는 길이다…

두번째 시인「이스트 코커」에는 침묵과 수도에 관한 묵상을 담은 시구가 있다.

나는 나의 영혼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용히 있어라. 그리고 희망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희망은 그릇된 것에 대한 희망일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없이 기다려라.

왜냐하면 사랑은 그릇된 것에 대한 사랑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절은 16세기 스페인의 십자가의 성 요한의 다음과 같은 구절을 연상시키며, 엘리어트가 이 성인 신비가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가 있다.

모든 것에서 기쁨을 갖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기쁨을 갖기를 바라라.

모든 것을 알게 되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게 되기를 바라라.

이 네 편의 시 중에서 마지막 시인「리를 기딩」의 맨 끝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 불과 장미는 하나다.

참으로 간명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기는 구절이다. 여기서「불」은 모든 것을 정화하는 거룩한 불로, 「장미」는 지성(至聖)과 지복(至福)의 경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봐도 될 것이다.

이「네 4중주곡」은 비단 엘리어트 자신뿐만 아니라 20세기 세계 문학을 위해서도 높이 솟은 아득한 봉우리나 다름이 없다.

성찬경ㆍ시인ㆍ성균관대 대우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