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앙과 기도] 믿음을 키우기 위한 기획 4 마리아의 신앙

정하돈 수녀ㆍ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입력일 2012-02-28 수정일 2012-02-28 발행일 1996-02-04 제 1989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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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하는 여종으로서 신앙의 본보기
인간적 이해 능가하는 무한정적인 신앙 보여
우리는 한 인간의 깊고 넓은 신앙을 마리아 안에서 볼 수 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자, 희망하는 자, 믿음의 헌신자, 주님의 여종, 순종하는 여종의 원형이며 신앙의 본보기이시다.

루가 복음서 제1장 천사의 「예수 탄생예고」에서 보듯이 마리아는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자, 은총을 입은 자이시며, 마리아는 신앙의 근원적인 고백을 하셨다 : 『나는 주님의 여종입니다. 당신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 바랍니다』(루가1, 38). 「Fiat! (될지어다!)」안에서 절정에 이른 마리아의 이 첫 말씀은 그녀의 생에서 완전히 피어나고 실현된다.

하느님께서 마리아에게 천사를 통해서 당신의 계획을 알리셨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그녀 자신과 더불어 무엇을 계획하고 계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일이 이루어지는지를 물으셨다. 그것은 마리아의 이해를 능가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하느님께 신뢰하며 그분의 계획에 「네」하고 응답하셨다. 이렇게 마리아는 하느님의 뜻에 동의하셨고 이 동의를 생의 어두운 순간에서도 지키셨다.

마리아의 말씀은 그녀의 자유를 전제하였다. 마리아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마음대로 쓰실 수 있도록 그리고 그분께 자신이 봉사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맡기셨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하느님이 당신 계획대로 우리를 쓰실 수 있도록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내 맡겨야 할 부름을 받았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온전히 열려 있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부르심은 마리아의 열린 귀와 열린 마음에 와 닿았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그분께 문을 열었다. 하느님께 대한 개방성은 그분과의 만남을 가능케 해 준다. 마리아는 그리스도교적 개방성의 귀감이시다.

마리아의 찬가 「마니피캇(Magnificat)」(루가 1, 46~55)은 십자가를 통해서 부활의 영광과 최후 완성에 이르신 당신 아들의 삶을 앞서 산 마리아의 생을 노래한 것이다. 마리아의 찬가는 하느님을 찬송한 노래이며 동시에 하느님께 대한 마리아의 깊은 신뢰의 증거이다. 하느님께서 당신을 부르고 당신께 신뢰한 자를 받아들이셨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예언을 하였다 : 『복되어라, 믿으신 분!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들이 이루어지리니』(루가 1, 45).

복음사가의 이 짧은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마리아의 이런 신앙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었는 지를 엿보게 한다 : 『마리아는 그 모든 일을 당신 마음속에 새기어 곰곰히 생각하였다』(루가 2, 19). 또 잃었던 아들 예수를 성전에서 다시 찾았을 때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루가 2, 28ㆍ50)

마리아는 좌절됨이 없이 인간적인 이해를 훨씬 능가하는 참되고도 무한정적인 신앙을 보여주신다. 가나 혼인잔치에서 거절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예수의 말씀을 견디어야만 하셨다 : 『부인이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요한 2, 4). 그러나 마리아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대답하셨다 : 『그가 무엇이든지 당신들에게 이르는 대로 하시오』(요한 2, 5).

마리아는 제일 먼저 예수의 복음을 듣고 따른 분이다. 그러기에 『복되어라!』하는 행복 칭송은 마리아에게 어울리는 칭송이다 : 『당신을 배신 태와 당신에게 젖먹인 가슴은 복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오히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들은 복됩니다』하고 말씀하셨다」(루가 11, 27~28).

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셨고 신앙안에서 그분의 아들을 받으셨다. 어느 누구도 마리아처럼 하느님으로부터 은총을 받은 이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은총을 가득히 입으신 이여』하고 인사한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하느님이 우리에게 「선사하도록」하고 그분을 신앙안에서 받아들임으로써 그분의 차고 넘치는 은총을 받도록 하자!

신앙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이다. 아브라함, 이스라엘 백성, 무수한 신앙인들, 시편 작가들 그리고 마리아는 근본적으로 같은 체험들을 하였고 또한 이를 증거하고 있다 : 신앙은 하느님과 나와의 개인적인 관계이다. 우리 모두는 자기만의 체험을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마리아이거나 아브라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 마리아 그리고 다른 모든 이는 우리안에 있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의 신앙은 개별적인 것이지만 그들 안에서 신앙의 모범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의 공동체이다. 이것은 또한 히브리서가 말하고 있는,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구름처럼 많은 증인들』(12, 1)이며 그들은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게』(히브 12, 2)한다. 그러기에 내 개인적인 신앙은 언제나 나를 앞서 간 이들의 신앙안에 포함되어 있다.

마리아를 통해 빛나는 기쁨은 하느님과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신 그분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기쁨이다. 우리가 마리아를 항상 바라본다면 마리아를 닮게 되고 기쁨을 갖게 될 것이다. 마리아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과 아들 예수를 더욱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 아들 예수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이 마리아의 큰 기쁨이기 때문이다.

정하돈 수녀ㆍ대구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