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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냉담했나] 10 본당의 비민주적 운영으로 냉담

김상재 기자
입력일 2012-02-28 수정일 2012-02-28 발행일 1996-01-28 제 1988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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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원인 분석/그 예방을 위한 기획
대화ㆍ타협으로 본당 이끌었으면…
봉사 미명아래 막노동하는 신세로 전락
명령하달식 아닌 민주적 운영방식 절실
중소기업의 중견간부로 삼십대 후반의 강경수(가명ㆍ38)씨는 일남일녀를 둔 평범한 가장으로 나서기를 싫어하고 자기 일에만 충실한 사람이다.

대학시절 친구의 권유로 입교해 20년 가까이 신앙생활을 해온 강씨는 본당 일에 있어서도 이런 자신의 성격 탓인지 주일미사 참여와 가입한 단체에서 자신이 맡은 일만 묵묵히 해왔다.

10년 전 결혼과 함께 현재의 본당으로 교적을 옮긴 강씨는 당시 본당 신부의 권유로 삼사십대 신자들로 구성된 한 액션단체에 가입했다.

이 단체는 평협 소속으로 본당의 각종 행사에 봉사하는 업무를 주로 해왔고 회원들 간의 결속도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5년 정도 이 단체에서 활동해오던 강씨는 본당 신부와 평협의 지시에 의해 단순히 일만 해야 하는 단체의 임무와 비민주적인 활동지시에 거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강씨는 당시 단체 활동에 대해 『본당 신부나 평협의 지시에 따라 일만 해야 하는 일꾼에 불과했다』면서 『우리 단체의 간부나 회원들의 의견이나 건의는 형식에 불과했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막노동과 같은 일을 봉사라는 미명아래 해야했다』고 술회했다.

강씨는 『시키면 당연히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신부님과 평협 간부나 이런 일들에 대해 불만을 가지면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단체 구성원들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같은 연령층 중에서도 재력이 있거나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평협에 속해 산하단체인 우리에게 동참이 아니라 지시를 할 때 느끼는 소외감이나 자괴감은 참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본당에서까지 사회적 신분으로 대우가 다르다는 것은 교회가 나눔과 섬김의 공동체라는 모습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며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는 몇몇 신자들의 잘못된 생각을 부추기는 것』이라고 강씨는 강변했다.

이런 일들로 해서 본당에서의 단체 활동에 염증을 느끼던 강씨는 삼십대 중반이 되면서 회사에서 중견간부가 돼 회사일에 대한 중압감을 느끼기 시작하자 가시방석같았던 단체모임에서 자연스럽게 빠지게 됐다.

본당 일에서 소원해지자 성당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지고 힘이 들기 시작한 강씨는 주일미사를 궐하는 횟수가 점점 늘어나다가 1년 전부터는 아예 냉담하고 있다.

『솔직히 안보면 그만인데 성당에 가서 마음 상하고 남을 미워하는 그런 일들이 부담스러웠다』는 강씨는 『신앙이 온전히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때 깨달았다』면서 『본당은 신자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자유롭고도 민주적인 분위기를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씨는 자신의 체험을 통해 『우리 교회 공동체는 너무 마음맞는 사람들끼리만 몰려다니는 경향이 많다』고 지적하면서 『일의 결정과 추진에 있어 대화와 타협을 통해 좋은 방안을 도출해내고 실무자들에게 양해를 구하기보다는 힘있고 마음 맞는 몇몇 신자나 사목자에 의해 본당이 명령하달식으로만 운영된다면 신앙적으로는 순종할지 몰라도 인간적으로는 누가 승복하겠느냐』고 반문했다.

한 마디로 민주적인 교회운영이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는 강씨는 『사회는 세계화 민주화를 향해 날로 바뀌어 가는데 우리 교회는 아직도 사목자나 몇몇 신자들의 독단적 결정에 이끌려 다니는 봉건적 신앙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