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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UN이 정한 빈곤퇴치의 해] 3 빈곤 악순환 해결책 없나? - 빈곤 출발지 농촌을 진단한다

최정근 기자
입력일 2012-02-28 수정일 2012-02-28 발행일 1996-01-21 제 1987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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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 가난… 대물림, 가슴만 “답답,,
땀의 대가 미약… 무기력해지는 농심
복지시설 미흡, 자녀교육도 암담
고향 등지고 도시로…빈민촌 형성
『이젠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시유. 소작농이지만 할아버지가 그래도 농사를 지어오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살아갈 길이 막막하내유』

우리나라 농촌의 현실이다. 충남 부여군 내사면 묘원리에 사는 이운순(루시아ㆍ58세) 의 말이다. 단지 이씨의 말이라기보다 대부분 우리나라 농촌에 사는 이들의 처지를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농촌의 처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말일 게다.

살아갈 길마저 막혀버린, 그래서 기가막힌 삶을 하루하루 살아야 되는 이들이 바로 우리의 핏줄이요 젖줄인 농토를 가꾸며 살아가는 농민들의 현실이다.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져 거동을 못하고 있는 남편 이문형(요셉ㆍ68세)씨와 함께 다 쓰러져 가는 집을 지키며 사는 이들 노부부의 모습은 농촌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슬하에 다섯 자녀를 두었지만 어느 하나도 농사를 가업(家業)으로 생각하고 농촌에 남아있는 자녀가 없다.

농촌에서 발붙이고 그래도 열심히 살려고 했던 큰아들이 도시로 떠나버리고, 평생 의지하며 살아왔던 남편 마저 쓰러져 남의 논농사지만 생계를 유지했던 농사마저 짓지 못하게 된 현실을 두고 이운순 할머니는 오히려 담담하다.

『어떻게 살겠시유. 그저 하루하루 밭에 먹을 채소나 심어가며 살아야지유』하면서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는 이운순 할머니의 표정은 오히려 모든 것을 초월한 구도자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눈 속에는 삶에 대한 짜증과 고뇌, 목숨이 붙어있기에 어쩔수 없이 살아야 되는 세상에 대한 원망이 깃들여 있는 듯하다.

그래도 이들 노부부에게 있어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자신들의 가난이 아니다. 자신들이야 가난했지만 자식들은 그렇지 않기를 수없이 바랐다. 그러나 없는 형편에 제대로 공부를 시킬 수 없어 학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다섯 자녀의 앞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미여 터지는 듯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국민학교밖에 가르치지 못한 큰 아들. 지난해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시골에서 살아보겠다고 농사일을 했던 그다. 땀흘려 농사일을 했지만 1년 수입이 고작 1백25만원이었다고 한다. 이 중에서 콤바인 등 기계를 빌려 쓴 삯과 인건비 80만원을 제하고 나니45만원이 손에 쥐어지게 됐다고 한다. 1년에 45만원. 도시에서 막노동하는 노동자의 한 달 월급도 안돼는 것을 위해 그 더운 여름 땡볕에서 땀을 흘렸나하는 생각을 하니 삶이 무기력해지고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고향이 죽도록 싫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물론 하루 하루 먹고 살수는 있었지만 그에게 딸린 두 아이와 처를 위해 45만원으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결국 그는 병환으로 누워계신 아버지와 노모를 등지고 정든 고향을 떠나고 말았다. 그를 부모의 곁에서 또 정이 스며있는 고향 땅에서 내몬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가난이었다.

이문형 할아버지는 『서울에 사는 큰 아들 집에 가보았는데 우리 집만도 못해유』라며 다쓰러져가는 자신의 집을 둘러보면서 『아이 둘과 처가 살기에는 너무나 어려울 텐데 보태주지 못해 가슴이 쓰리네유』라고 느릿느릿한 어조로 자식 걱정을 했다.

이씨의 큰 아들은 서울 망우리에 3백50만원짜리 단칸방에서 두 아이와 처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직업은 인테리어다. 말이 인테리어지 목수라고 봐야할 것이다. 아마도 그에게는 그래도 농촌보다는 살기가 쉬운 서울, 그것도 달동네 판잣집(?)에서의 도시생활이 더 좋을 것이다.

큰 아들 뿐 아니라 다른 자녀들의 처지도 매일반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둘째 딸은 인테리어 하는 사위와 만나 서울 잠실에서 살고 있고 고등학교를 나온 셋째 딸은 전기공과 결혼 서울에서 살고 있다. 또 미혼인 넷째 딸은 미용기술을 배워 미용실에 근무하면서 오는 3월 중국집 주방에서 일하는 청년과 화촉을 밝히게 될 예정이고 충남공고를 졸업한 막내는 현재 군복무중이다. 다섯 자녀 가운데 고등학교를 두 명이 졸업했고 두 명은 중학교 한 명은 국민학교만을 나왔다는 게 요즘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믿겨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들뿐 아니라 농촌에 사는 빈농들의 처지가 거의 이와 비슷한 처지다.

부모의 가난 때문에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하고 농촌에서는 더이상 희망이 없어 도시로 떠난 이들 노부부의 자녀들의 처지 역시 부모를 경제적으로 돕기에는 하루 하루 살기가 빠듯한 실정이다. 농촌의 인구가 도시로 이동, 도시 변두리에 빈민촌을 형성하게 된 도시빈민 발생의 유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이 집안의 희망은 이씨 부부의 손자 손녀에게 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빈민촌에서 하루 살기가 바쁜 이들이 자녀교육에 얼마만큼 신경을 쓸 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도시의 슬럼가에서 자란 아이 전체가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고 말할 수 없지만 이들의 자녀들에게도 역시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가 걸어왔던 고달픈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문형씨의 자녀들처럼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 도시 빈민군을 형성하는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60년대부터 농촌인구의 도시유입으로 한국사회는 또 다른 빈곤문제를 낳고 있다. 농촌의 빈곤이 그대로 도시로 옮겨져 빈곤의 악순환을 낳고 있다.

우리의 농촌은 1년 농사를 지어도 투자비도 못 건지고, 현실성 없는 국가의 지원으로 이마에 골만 깊게 패이는 빈농. 어려운 자녀교육의 현실 등 산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도시빈민 문제의 출발지로 인식되어야 될 농촌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당사자인 농민과 소비자들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 1차적인 책임은 국가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개인의 문제이기 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쩌겠어유. 그저 사는데까지 살아야지유』라며 자신들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순박한 땅의 사람들의 모습이 가슴 한 곳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결국 우리사회 안에서 빈곤을 퇴치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농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왜냐하면 농촌은 빈곤의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최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