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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빈곤퇴치의 해] 2 빈곤의 악순환 해결책은 없나? - 누가 가난한 이웃인가?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2-02-27 수정일 2012-02-27 발행일 1996-01-14 제 1986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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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빈곤층 2백만 … 대책 미흡
복지시설 수용 행려자만 1만5천명
수도권 비닐하우스 거주민 2만가구 추산
장애인ㆍ무의탁 노인 위한 정책 ”아쉬워”
『여기서 뭐 하세요? /누구? … 아무 것도 안 해요/ 집에 안가요? /집없어요/ 밥은 먹었어요? /안 먹었어요/여기서 그냥 잡니까? /잘 때도 있고 안 잘 때도 있어요/춥지 않아요? / 왜 안 추워요/ 직업은 없어요? /없어요/ 뭘 먹고 살아요? /그냥 살아요/ 술은 어떻게 구했어요? /그냥 생겼어요/ 계속 여기 있을 꺼예요? /몰라요, 놔둬요』

오래 입어 얄팍해진 솜 파카에 때가 자리를 틀고 앉아 거북이등처럼 갈라지기까지 한 목 언저리를 반지르하게 기름때에 절은 목도리를 칭칭 두른 채 지하철 2호선 을지로 입구역과 을지로 3가역 사이의 지하 보도에서 잔뜩 웅크린 채 떨고 있는 김O씨(46세).

지구 온난화 현상 때문(?)인지 옛날에 비해 겨울 날씨가 한결 따뜻해 졌다지만 그건 가스 보일러로 따끈하게 덥힌 거실 소파에 앉아 있거나 털코트로 바람이 샐세라 온 몸을 휘감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꺼리 일뿐, 집이 없는 행려자들에게 춥기는 마찬가지이다.

저녁이 되어 햇볕으로 그나마 미지근하게 달구어졌던 시멘트 거리도 완전히 온기를 잃고 찬 바람이 귓볼을 따갑게 할 때가 되면 도시의 이곳 저곳에서는 땅 밑으로 찾아 드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김씨가 거대도시 서울로 짐을 꾸려 올라온 것은 지난 80년. 고향인 경남 함양에서 부인과 함께 무작정 올라온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막노동뿐이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집이었다. 그럭저럭 입에 풀칠은 할 수 있었지만 잠자리를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도시의 변두리를 헤매면서 강제 철거 당하기를 여러 차례, 이리저리 인간 대접 받지 못하고 쫓겨 다니면서 생활에 지친 부인이 집을 나갔다. 애들을 먼 친척에게 맡긴 그는 부인을 찾는다며 돌아다니다가 심란한 정신에 공사판에서 넘어지기를 몇 번 거듭하고 허리를 다쳐 결국 일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배운 기술도 없고 그나마 전 재산인 몸마저 망치고 나자 그는 하릴없이 거리를 헤매기 시작했고 급기야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최저생계비 산출법 의문

성장의 그늘, 대도시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에는 이처럼 가난에 휘둘리다가 그 끝에 도착한 행려자들. 속된 말로 부랑인들이 쓰러져 있다. 죽어서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이들은 매년 서울에서만 5백여 명이 굶주림으로, 병으로, 추위로 죽는다. 전국적으로는 1천여 명을 웃도는 행려자들이 거리에서 죽어간다. 이렇게 죽은 무연고 행려 사망자들은 화장, 또는 가매장되거나 일부는 의료기관에 해부용으로 기증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현재 복지시설에 수용돼 있는 행려자만 1만5천명으로 집계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4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면 이들 4만명만 구제하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이들이 지나온 빈곤의 터널에는 지금도 수십, 수백만의 가난한 사람들이 끝이 뻔히 바라다보이는 암흑의 터널을 허덕이며 떠밀려오고 있다. 그리고 그 터널의 끝에는「부랑」또는 적어도 그 비슷한 절망이 기다리고 있다.

서초동, 양재동을 비롯해 서울 외곽이나 재개발지역에는 비닐하우스 가건물로 추위를 나는 사람들만 8만에서 1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들을 포함해 법이 정한「가난한 사람들」의 숫자는 약 2백만, 전 국민의 5% 남짓이다. 이 정도면 상당한 복지국가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수치는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정부는 지난 95년 기준으로 1인당 최저생계비가 18만8천원 이라고 밝혔다. 그 이상을 벌면 영세민이 아니다. 그 정도 수입이면 적어도 최저 생활수준은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는 노총이 올해 임금인상 협상을 위해 내놓은 도시근로자 월 최저생계비(가구당 3.74인 기준)인 1백45만8천여 원은 물론, 정부(통계청)가 작성한 도시가계연보(94년)의 가구당 월평균 가계 지출비 1백10만5천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액수이다.

실제 생활에서 최저 생계비가 추산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예산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활비의 규모가 정해지기 때문에 이런 터무니없는 결과가 나온다. 그나마 이 2백만의「절대빈곤층」에 대해서도 거의 대책이 없는 상황이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빈곤,「가정해체」의 한 원인

빈곤 계층의 현실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서울과 수도권 주변「빈터」에 들어선 비닐하우스촌이다. 94년 10월 현재 서울에는 비닐하우스 거주민이 1만 가구에 이르며 수도권까지 포함하면 2만가구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강남구 개포동의 구룡마을의 경우, 1986년경부터 서울시에서 철거당한 세입자들을 중심으로 사유지를 무단 점거하면서 마을이 형성돼 94년 10월 현재 2천3백여 세대가 정착해 있다. 구청에서 보내준 이동식 화장실 20여 개, 재래식 공동화장실로 화장실문제를 해결하고 판잣집 이라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무덥다. 창문도 제대로 없어 연탄난로에서 새나온 가스에 중독되는 일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빈곤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는 최악의 상황을 야기한다. 해체된 가정에서 부랑인이, 소년소녀 가장이나 고아가 발생한다. 노령으로 아무 능력이 없는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의 경우에는 생존 자체가 심각하게 위협받는다.

특히 노인 인구가 현재 2백50여만 명에 달하고 2천년에는 3백2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노인복지에 대한 대책은 거의 없다. 70세 이상 노인으로 생활보호 대상자나 자활보호 대상자인 18만여 명에게는 노령수당이 매월 지급되지만 터무니 없이 적고 12만이 넘는 무의탁 노인들을 위한 복지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장애인에 대해서도 정확한 통계조차 없을 정도로 복지정책이 허술하다. 정부는 90년 현재 전국의 장애인은 1백만명 정도로 추산하지만 장애인 단체들은 세계보건기구(WHO)의 근거에 바탕해 약 4백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중 복지시설의 혜택을 받는 장애인은 1%도 채 안 된다. 30%가 무학이며 70%가 무직이다. 92년 통계를 보면 장애인 중 월 소득 20만원 미만이 20%, 40만원 미만이 57.1%로 절대 다수의 장애인이 절대 빈곤 속에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라도 구제 못하는 가난(?)

한 연구에 의하면 전체 가구의 7. 64%를 절대 빈곤 가구로 산정했을 때 이들을 절대빈곤선 이상으로 끌어올리는데 필요한 비용은 연간 1조8백10억이다. 그 돈이면 3백만명에 가까운 국민들을 인간 이하의 생활 조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나라 연간 방위비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