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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빈곤 퇴치의 해-빈곤의 악순환, 해결책은 없나? <1>

최정근 기자
입력일 2012-02-27 수정일 2012-02-27 발행일 1996-01-01 제 1985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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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 빈곤ㆍ신 빈곤 맞물려 공존
상대적 빈곤의 대물림 현상 여전
신 빈곤은 삶의 방식서 소외된 상태 가리켜
성서에 바탕 둔 적극적인 대처만이 해결책
◆(1) 총론:빈곤, 아직도 우리를 슬프게 한다

한국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불 시대가 됐다고 한다. 또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늘어 쓰는 것이 미덕인 시대가 됐다. 생활이 넉넉해지다 보니 그동안 우리에게 익숙했던 가난과 그 가난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숱한 애환은 이제 어느 한 편의 영화를 본 기억으로 남겨지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변에는 아직도 절대 빈곤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치 빈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가톨릭신문은「빈곤 퇴치의 해」를 맞아 연중기획으로「빈곤의 악순환, 해결책 없나?」란 제목 아래 빈곤을 어떻게 퇴치할 수 있으며 이에 교회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각적으로 검토하려 한다. 그 첫 회로 빈곤의 개념과 새롭게 발생하는「신 빈곤」에 대해 살펴보고 이에 한국 교회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총론 형식을 빌어 소개하고자 한다.

한 세대 전만 해도 국민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모두 빈곤한 생활을 했다 그래서 이를 벗어나고자 역사 이래 초유의 대탈출인 이촌향도의 큰 물줄기를 만드는 데 모두가 동참했다. 누적된 농촌 삶의 질곡을 벗기 위해 수천만 명의 인구가 도시로 옮겨왔고 이들 중 다수는 도시 산업화가 제공해주는 제한된 삶의 기회 때문에「약속의 땅」의 복음을 누리지 못했다. 이 인구 집단이 소위 말하는 제1세대 이농형 빈곤층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빈곤은「희망이 있는 빈곤」이었다. 비록 물질적인 역량이 부족했어도 정신과 생활방식, 그리고 세상을 보는 관점 모두「반듯한 판단」에 근거해 있었다.

오랫동안 도시빈민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은『배제와 착취를 일상활하는 도시 사회적 상황에서도 그들의 많은 부류는 꾸준한 노력을 통해「빈곤의 탈출」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집단이 되어 개발독재의 다양한 억압에 저항하는 의식을 발휘하기도 했다』고 입을 모은다.

즉 해방 이후 현재까지 저소득 계층으로 대변되는 도시 변두리의 빈민들은 나름의 노력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자 했다는 얘기다.

그러나 빈곤계층은 오늘날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빈곤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이다. 도시 가구당 월 평균 소득이 1백20여만 원이 되는 현재에도 소득이 월 20만 원이 채 안 되는 절대빈곤 인구가 도시 인구 전체의 4∼5%를 차지하고 있으며, 월 평균 소득이 임금의 50%에 못미치는 가정도 전 가구의 절반을 넘고 있다.

이런 계층들은 50년대, 60년대의 절박한 빈곤상태를 벗어나긴 했지만 이들의 삶은 여전히 그동안 변모한 사회보편적 생활 수준에 여전히 이르지 못한 상태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평균적인 풍요로부터「상대적으로 박탈된」즉「상대화된 빈곤」을 겪고 있다.

빈민운동가들은 이에 대해『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적 풍요에도 불구하고 빈곤은 여전히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풍요시대의 빈곤은 과거의 물질적 절대 부족으로 겪던 빈곤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신 빈곤」(new poverty)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와 한국도시연구소가 발행한「한국 사회 변화와 빈곤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신 빈곤」은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위한 충분한 자원을 가지지 못한 물질적 상태뿐 아니라 미래적 삶의 전망이 결여된 비물질적인 상태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신 빈곤의 대표적인 현상의 하나는「무주거자」또는「노숙자」로 번역되는 홈리스(Homeless)다. 이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기능의 파괴로 정신적 불균형을 이루는 이들이다. 즉 가정이 해체된 상태에서 발생된 이들의 문제는 사회의 급격한 변화 속에 나타난 문화 해체적 현상의 하나다.

「빈곤」이 복잡한 국면을 띠고 있는 사회적 현상으로서「인간다운 생활은 하기 위한 충분한 물질적, 재정적 자원을 가지지 못한 상태」로 광범위하게 정의된다.

자본가의 착취로 인해 절대소득이 적거나 고용이 극도로 불안정함으로써 겪던 상태가 곧「전통적인 빈곤」인 반면 지배적인 삶의 질서와 방식으로부터 소외ㆍ배제됨으로서 겪는 일상적인 결핍과 관련된 것이「신 빈곤」이다.

비록 빠른 성장을 한 덕택에 물질적 풍요는 이룩했지만 그 풍요가 모든 사회 성원에게 골고루 분배되지 않았던 만큼 사회적 분배체계의 주된 흐름으로부터 배제되고 소외된 인구 집단이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과거와 같은 절대빈곤 상태는 아닐지라도 삶의 기회, 질, 권리 측면에서 다양한 결핍과 박탈을 겪는 상태에 처해 있다.

그러면 1996년 한국의 빈곤 상황은 어떠한가. 많은 이들은 한국의 상황은「전통적인 빈곤」과「신 빈곤」이 공존하고 있다고 얘기한다. 즉 전통적인 이농현상으로 발생된 도시빈민과 아직도 빈곤에 허덕이는 농민들이 존재해 있고 고도의 산업사회가 가져다준 부랑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고도의 산업사회로 탈바꿈하려는 한국 사회의 이 같은 현상에 대처하기 위해 교회는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해왔다. 적어도 빈민사목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대처해왔고 앞으로도 교회는 이러한 빈곤계층의 사람들 편에서 빈곤과 적극적인 도전을 전개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교회의 모든 노력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병자들을 고쳐주고『너의 믿음이 너를 낫게 했다』라고 한 말 속에서 찾아야 된다고 많은 이들은 강조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자들을 구원해 줬지만 그들의 주체를 빼앗아 종속관계로 전락시키지 않고 그들의 주체를 살려 그들 스스로 살아나갈 수 있도록 했다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즉 한국 사회 안에서 교회가 아직도 우리를 슬프게 하는 빈곤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그 바탕을 성서에 두어야 하며 가난한 자들을 종속관계가 아닌 그들 스스로 험난한 현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게 빈민사목의 목적이라는 얘기다.

앞으로 가톨릭신문은 계속 빈곤의 다양한 유형과 빈곤문제 발생의 원인 등 빈곤에 대해 다각적으로 살펴보고 교회가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독자들과 함께 고민을 풀어나갈 예정이다.

최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