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건전한 신앙생활을 해치는 운동과 흐름] 6 - 각종 예언술ㆍ풍수지리ㆍ전생ㆍ환생 신드롬

입력일 2012-02-20 수정일 2012-02-20 발행일 1997-11-23 제 2079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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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환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에 의해 영생 얻음을 깨달아야
성서 한 면을 펼치고 한 구절을 선택해 그 말씀 따라 하루를 살겠다는 좋은 뜻으로
「성서 점」을 치지만 점을 보는 것은 마찬가지다
우리의 오랜 관습이라고 하여 많은 이들이 새해를 시작할 때에 한 해의 운수를 점치며 토정비결을 본다. 뿐만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 스포츠 신문 등에 실리는 「오늘의 운세」로 하루 운수를 미리 점치는 사람들이 많다. 재미로 본다고 하지만 하루 내내 그 점의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

성서구절을 가지고 점을 치는 사람들도 있다. 아침에 아무데나 성서의 한 면을 펼치고 그 가운데 한 구절을 선택하여 하루의 운세를 점치는 것이다. 성서의 말씀을 따라 하루를 지내겠다는 좋은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점의 종류가 다를 뿐, 점을 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무작위로 펼친다고 하지만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오지 않으면 몇 차례씩 마음에 드는 구절을 찾아 그 말씀과 비슷한 좋은 일이 그 하루 중에 자신에게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사를 하거나 혼인을 할 때에도 「길일」을 택한다. 날을 잘 택해야 재물도 따르고 손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거는 것이다. 곧 행복을 운수에 맡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후손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해 묏자리를 고르거나 이미 쓴 묘를 이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후손에게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화가 생기는 원인이 묘를 잘못 썼기 때문이라고 믿는 것이다.

사실 어떤 장소가 인간의 쾌, 불쾌를 좌우할 수 있다. 어떤 곳에서는 쾌적함을 느끼고, 또 어떤 곳에서는 음산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좋은 장소를 가려 집을 짓고, 도시를 건설하는 일은 바람직하다. 비록 돌아가신 분이라 하더라도 그 시신을 좋은 곳에 묻는 것이 자식 된 도리이다. 또 부모에게 자식 된 도리를 다하는 사람들이 복을 받게 마련이다. 반면 부모에게 불효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상관관계가 마치 묘를 쓴 장소에 좌우된다는 물리적 관계로 취급되는 일은 분명 도가 지나친 것이다.

또 요즈음 전생 환생 신드롬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전생이나 후생을 이야기하는 환생은 그리스도교의 육신부활 교리와 마찬가지로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너머 새로운 삶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또 이 세상에서 살았던 공과에 따라 상선벌악이 이뤄진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러나 이러한 공통점과 달리 근본적인 차이점을 보이는 것이 있다. 그것은 상을 받거나 벌을 받아야 할 존재가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환생을 주장하는 사람들처럼 나 자신이 전생에 인도의 공주였다고 가정하자. 무슨 잘못으로 오늘의 내가 되었는가? 이 세상을 잘못 살아 후생에 어떤 동물, 가령 개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전생의 인도 공주는 오늘의 나라는 존재와 별개의 존재이듯이 후생의 그 개는 분명 나와 별개의 존재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서 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다는 일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그리스도교 육신부활은 나의 영혼이라는 인간의 반쪽만이 아니라 온전한 인간, 구체적으로 이 세상을 살았던 나 자신의 존재로서 하느님 앞에서 상을 받거나 벌을 받게 된다는 점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환생에 의해서, 곧 불멸하는 영혼에 의해서가 아니라, 바로 하느님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는 부활신앙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여러 예들은 하느님을 마치 종처럼 「부리려는」 태도들이며, 하느님의 섭리를 거스르는 행동들이다. 여기에서는 윤리 도덕적인 의무나 양심, 책임감 등을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하느님을 비인격적 존재인 우주의 기, 또는 영으로 여기고 있으며, 세상에서 건강하고 유복하게 사는 것만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자료제공=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