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아시아교회가 간다] 아시아 교회 연대 그리고 복음화 향한 대장정 13. 태국교회 (2) 사회복지활동

최정근 기자
입력일 2012-02-20 수정일 2012-02-20 발행일 1997-10-12 제 2073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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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환자 뒷바라지에 총력
94년 프란치스꼬회서 첫 에이즈센터 건립
”AIDS 환자 외면하기보다 적극 끌어안아야”
약·시설비 비싸 임종 앞둔 이들 대상 봉사
새벽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방콕의 밤은 안개꽃이 만발한 화원이었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기분으로 그렇게 태국을 떠나면서 문득 그 불빛들 사이에 얼마 전 죽었다던 에이즈 환자 얼굴이 겹쳐지는 이유는 뭘까?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지 못했던 그의 죽음이 이렇게 내 가슴에 오래 남는 이유는 뭘까?

태국 취재기간 중인 지난 8월 6일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에이즈센터를 방문했다. 기자가 방문한 날 아침 그 집에서 가장 건강한 청년이 숨을 거두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수녀 2명이 환자들의 수발을 들면서 그들이 편안하게 임종을 맞도록 돕고 있는 이곳에서 오늘 아침에 죽어나간 청년은 얼마 전 친누나와 동생이 면회 오겠다고 연락을 해놓곤 오질 않았다고 한다. 그 충격으로 갑자기 임종을 맞게 됐다는 게 이 곳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곳에서 에이즈 환자를 돌보고 있는 엘리사 수녀는 『교회는 바로 이렇게 버림받은 이들 가난한 이들이 있기 때문에 존재 가치가 있다』고 지적하고 『아무도 지켜보는 이 없는 조그만 방에서 홀로 죽어간 청년의 모습 속에서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상을 느껴야 된다.』고 강조했다.

태국 에이즈 실태와 발생원인

현재 태국은 6천만 인구 중 에이즈 환자가 1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고 한다. 지난 84년 최초로 발병한 이후 13년 만에 핵폭탄보다도 더 위력적(?)인 1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의 태국에선 성관계로 인한 에이즈 바이러스(VHI) 감염된 주부들이 사실을 모르는 체 아이를 출산하게 되면서 주부와 아이들에게 에이즈 바이러스가 감염된다는 얘기다.

이렇게 바이러스에 걸린 임산부로부터 출산한 유아 중 70%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걸리게 되고, 이 아이들이 1년이 경과되면 그 중 30%만이 에이즈 바이러스 보균자가 된다.

따라서 현재 태국의 에이즈 환자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기하급수적으로 그 숫자가 늘고 있는 현실이다. 이 같이 태국에 에이즈 환자들이 늘고 있는 데에는 동남아 경제 선진국들과 유럽 등 선진국들 남성들의 몰지각한 섹스관광도 일조한다.

태국 에이즈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일본을 비롯해 한국 등 아시아의 경제 선진국과 특히 유럽인들의 무분별한 섹스관광이 에이즈 환자 생산을 부추기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섹스관광을 부추기고 있는 태국 정부와 경찰도 책임이 있지만 외국인들의 자제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태국은 현재 섹스관광의 천국(?)으로 많은 남성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더군다나 태국에 섹스관광을 오는 이들 중 상당수가 여성보다는 남성을 찾아오는데서 그 문제가 더더욱 심각하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그러나 태국 에이즈 환자 발생의 주된 원인은 변태적인 섹스 산업에 경찰과 군의 이권이 개입되어 있다는데 큰 문제가 있다.

구 안토니오 신부에 의하면 『태국에서도 미성년자의 매매춘 행위를 단속하고 있지만 이는 형식적이며 이러한 섹스산업으로부터 경찰이 이권을 챙기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에이즈 환자의 치료도 중요하지만 환자 발생의 원인이 되는 섹스산업에 대한 태국 정부의 단호한 의지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국교회의 사목과 방향

태국의 이 같은 심각한 에이즈 환자들에 대해 현재 태국교회는 병원과 사회복지 시설을 통해 이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94년 처음으로 프란치스코회가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센터를 건립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태국에는 교회가 운영하는 이 같은 센터가 다섯 곳에 있다고 한다. 지금도 각 수도회별로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시설 건립을 모색 중에 있어 이 숫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태국교회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만삽 주교는 『태국에서의 에이즈 문제는 교회뿐 아니라 범국가적인 문제』라고 전제하고 『태국 가톨릭교회는 현재 독자적인 시설뿐 아니라 불교와 연대 이들을 돌보는데 총력을 기울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만삽 주교의 말대로 태국교회는 에이즈 환자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현재 이들을 위한 시설, 공동체 건설을 위해 범교회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노력은 한정된 재정 여건 때문에 그다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약과 시설이 너무 비싸, 경제적인 부담이 크다는 게 주된 원인이다.

그래서 태국교회는 미진하지만 에이즈에 걸려 임종을 앞두고 있는 이들을 위한 사목에 치중하고 있는 현실이다.

람사이 에이즈센터를 건립한 구 안토니오 신부는 『에이즈 환자를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분위기는 잘못된 일』이라며 『그들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기에 그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며 교회가 이들의 문제를 외면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되는 당위성을 설명했다.

동남아시아 제일의 섹스 관광지대. 수많은 사람들이 섹스를 위해 관광지로 선택하고 있는 나라 태국. 아울러 태국정부도 이를 방관, 아니 오히려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어서 태국의 에이즈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에이즈에 걸려 아무런 희망도 용기도 없는 그들의 마지막 바람은 바로 가족들의 방문이다. 죽기 전에 가족들을 꼭 한 번 보고 싶은 게 그들의 희망이다.

하얀 가운을 입고 밥을 먹고 있던 10대 소녀. 몸을 가눌 수 없어 수녀가 떠 주는 죽을 먹고 있던 환자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방콕의 밤 풍경은 그들의 한 맺힌 눈물꽃들로 만발해 있었다.

◆태국서 최초로 에이즈센터 건립한 구 안토니오 신부

"경제사정으로 한정된 인원만 수용… 안타까워"

『태국인구의 95%가 넘는 이들이 불교 신자입니다. 그러나 태국의 불교는 국민들에게 윤리 도덕적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유교의 전통 위에 있는 한국에서는 도덕성이 중요한 덕목의 하나로 평가되지만 태국에서는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풍토가 심해 성윤리 역시 개인의 자유에 맡기는 게 통례입니다』

태국교회에서 최초로 지난 94년 7월 5일 람사이(Ranmsai)에 에이즈 환자를 위한 센터를 설립했던 프란치스코회 소속 구 안토니오 신부는 이러한 종교적 경향이 태국에 에이즈 환자 등 성윤리가 무너지게 된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태국에 선교사로 부임한 구 신부는 이곳에서의 복음화를 위해 가장 먼저 선택한 것이 에이즈 환자를 위한 공동체였다.

그래서 그는 방콕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7년여의 공사 끝에 휴양지를 겸한 에이즈센터를 건립했다. 주로 임종을 앞둔 환자만을 받고 있는 이곳 람사이 에이즈센터에는 현재 7-8명의 환자들이 죽음을 기다리며 봉사 수녀들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

구 안토니오 신부는 『더 많은 임종 환자들을 받고 싶으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한정된 인원만을 받을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며 『한국교회 등 아시아 각국 교회가 남의 일처럼 구경하지 말고 이들이 편안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도록 도움의 손길을 주어야 될 것』이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대부분 에이즈 환자를 우리는 성(Sax)과 연결시켜 바라본다. 많은 이들의 무의식 속에는 문란한 성생활에 대한 질책이 숨어있지 그들을 불쌍하다거나 도와주어야 될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데서 이들은 점점 더 이 사회 안에서 고립, 격리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에서 9년여의 사목경험이 있는 구 신부는 『특히 유교전통이 남아있는 한국에서 에이즈 환자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겪겠지만 이들은 우리들의 불쌍한 이웃』이라고 강조하면서 『태국교회가 이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그 역량이 너무 적어 외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거듭 도움을 촉구했다.

태국 방콕 한인본당 주임신부이기도 한 그는 교회가 지역사회 안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선 그 지역 문제의 가장 시급한 현안에 투신하는 것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구 안토니오 신부는 태국의 1백만 명이 넘는 에이즈 환자들의 이웃이 되기로 작심했고, 이 일을 하는데 아시아교회 나아가 세계교회의 원조가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람사이 에이즈센터」봉사자 안카야·엘리사 수녀

“부모·친구·애인 역할까지 해야 하는데… 너무 힘들어요.

태국 람사이에 위치한 에이즈센터에는 현재 성 빈센트 아 바울로 사랑의 딸회 소속 안카 수녀와 엘리사 수녀가 임종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엘리사 수녀와 안카야 수녀가 하는 일은 7-8명의 에이즈 환자들에게 식사 수발은 물론 목욕 등 하루 생활 전체를 도와주고 이들이 편안하게 임종을 맞도록 도와주는 역할이다.

태국 출신의 안카야 수녀도 『임종을 앞두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가족들이 유일한 희망』이라고 설명하고 『죽기 전에 가족들을 꼭 한 번 보는 것이 이들이 생명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특히 엘리사 수녀는 『이들도 병에 걸리기 전에는 분명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텐데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것 같다』며 『이들의 부모, 친구, 애인의 역할까지 해줘야 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힘들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매일 반복되는 임종 환자들과의 싸움, 힘들 때가 많지만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어줘야 된다는 일념 때문에 늘 함께 울며 웃고 있는 이 두 수녀들, 이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육체적인 노동이 아니라 삶에 대한 지나친 애착 때문에 자기들의 상황,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환들을 지켜볼 때라고 한다.

최정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