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지방시대 지방교회를 연다] 10 광주대교구

김상재 기자
입력일 2012-02-20 수정일 2012-02-20 발행일 1997-10-05 제 2072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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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쇄신 통해 보다 열린 세상으로
2천년까지 5개년 계획 수립
신자 재교육ㆍ소공동체에 역점
■ 교구 5개년 사목 계획

광주대교구 교구장 윤공희 대주교는 앞으로의 교구 사목 방향에 대해 『신앙의 기초에 충실하면서 그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신앙의 기본 안에서 현안사업들을 풀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대교구는 사목의 지속성을 위해 지난 96년부터 2천년까지의 교구 5개년 사목 계획안을 수립하고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됨」을 그 대주제로 삼아 한 해 한 해 목표에 접근해 가고 있다.

새로운 복음화의 해로 정한 1996년에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사목지표로 삼아 신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는 생활을 강조하는 한편 가정성화와 적극적인 신자 재교육 등을 강조해 선교의 새 시대를 맞는 마음가짐을 다지게 했다.

교구 설정 60주년과 목포 선교 1백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교구 공동체」를 사목 지표로 정해 자기쇄신의 영역을 보다 확장하였으며 이러한 자기쇄신을 통해 내년에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하는 교회 공동체」로 사목 지표를 잠정 결정하고 교구 사제단과 의견을 수렴 중에 있다.

자기쇄신의 과정을 거쳐 세상으로 파견돼 증거의 삶을 사는 것을 목표로 삼은 교구 5개년 사목계획은 앞으로는 통일과 북한 동포 돕기 등 민족 복음화를 위한 길로 그 거보를 내디딜 계획이다.

광주대교구에서 5개년 사목 계획을 준비하면서 특징적인 것 중의 하나는 내년도 사목 계획에 교구 전 사제가 참여하는 것이다.

교구에서는 6월경 내년도 교구장 사목교서 초안을 사제들에게 발송하여 지역 사제회의에서 논의토록 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윤공희 대주교는 이에 대한 『사목의 방향을 설정하면서부터 교구 사제들과 함께 함으로써 공동체의 모습을 구현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렇듯 계획 수립의 처음부터 그리스도 안에서의 일치를 강조하는 광주대교구가 5개년 사목 계획의 성공적인 실현을 위해 가장 공을 들여온 것은 신자 재교육과 소공동체의 활성화이다.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됨이라는 대주제 구현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회의 존재 이유인 그리스도와 깊은 일치를 이루어야 하고 이는 그리스도에 대한 묵상과 공부가 급선무라는 진단에서다.

교구는 신자 재교육을 위해 96년 사목 계획의 실천과제 중 각 본당에서 신자 재교육을 우선 순위에 두도록 했으며 새 신자 피정과 쉬고 있는 신자들을 위한 피정을 실시하는 한편 성서와 가톨릭교회 교리서 등을 활용한 다양한 신자 재교육 프로그램을 계발하여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교구 설정 60주년 교구 희년을 맞은 올해는 「마르코 복음 읽고 쓰기」 운동을 펼쳐 전 교구민이 60일동안 마르코 복음을 읽고 쓰면서 묵상하고 있다. 또한 지난 95년에 평신도 인재 양성을 위한 설문조사를 통해 평신도 인재의 지속적 양성 계획을 수립했다.

교구에서는 이러한 설문조사 등을 바탕으로 유능한 평신도들이 사목자들의 사목 활동에 능동적으로 협력하도록 하기 위해 신앙대학, 교구 말씀의 봉사자, 반모임 지도자 교육, 주일학교 교리교사 양성 교육 등 다양한 교육 과정들을 펼치고 있다.

또한 신앙과 생활의 분리를 막기 위해 교구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하나는 소공동체의 활성화로 교구에서는 일방적인 모델의 제시보다 각 본당에서 본당 공동체에 적합한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각종 자료와 교육 기회를 제공하며 소공체의 뿌리 내리기를 시작하고 있다.

광주대교구의 소공동체 운동은 서울에서 룸코식 소공동체 교육을 실시하기 이전부터 반모임 자문위원회를 통해 시작했으며 현재 기존 반모임과 룸코식 소공동체 교육을 병행, 접목시키면서 시안에 따른 교육과 자료집 발간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소공동체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광주대교구는 소공동체 운동을 펼치면서 인위적 정착을 시도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뿌리 내리도록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

■ 교구 설정 60주년 목포선교 1백주년

올해로 교구 설정 60주년과 목포지역 선교 1백주년을 맞는 광주대교구는 이 역사적 의의를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의 지표로 삼기 위해 금년을 교구 희년으로 선포했다.

교구의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교구 희년을 기점으로 이제까지 교구 공동체의 족적을 되짚어보고 자체쇄신을 통해 제3의 천년기를 준비한다는 원대한 구상을 안고 있다.

따라서 현재 활동 중인 교구 희년준비위원회를 올해가 끝나면 자동적으로 2천년 대희년준비위원회로 개편해 교구 희년의 정신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그 희년 정신을 「빛이 되게 하소서」라는 주제로 집약했다.

교구는 교구 희년을 맞이하면서 무엇보다 먼저 사제들의 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고 금년 춘계 사제연수회를 통해 사제 생활의 내적 외적 생활과 계속교육 등에 대한 자기진단을 먼저 실시했다.

이는 신자들에게 복음적 생활을 강조하기에 앞서 사제들이 솔선수범하는 삶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것으로 전 교구가 공동체 안에 하나되기 위해 전심 전력하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광주대교구는 이번 희년을 새로운 복음화의 출발점으로 삼기 위해 정신운동과 10월 12일의 기념 신앙대회, 교구 숙원 사업인 피정의 집 건립 등 3대 사업을 추진 중이다.

우선 희년을 맞는 마음가짐으로 묵주의 기도 1천만 단 바치기 운동을 전개해 6월에 이미 목표를 달성하고 연말까지 지속적으로 바치고 있으며 선교를 위해 8월 17일 각 본당에서 일제히 선교사 선서식을 갖고 교구 차원 40일간 동시 선교운동에 들어가 10월 12일 교구 설정 60주년 기념신앙대회에서 예비신자 환영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또한 『교구의 사목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는 윤공희 대주교의 판단에 따라 신자 교육에 심혈을 쏟고 있는 광주대교구는 교구 차원의 교육관이 없어 각종 교육과 신심행사에 어려움을 겪어왔던 만큼 교구 숙원사업 중 하나의 피정의 집 건립을 추진 중이다.

교구 희년을 2천년 대희년을 위한 초석, 제3의 천년기 복음화 작업의 기점으로 삼고자 하는 광주대교구는 이번 사업들을 통해 전 교구민이 신앙안에서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사목자와 평신도 모두가 한마음으로 신앙의 밭을 갈고 있다.

■ 교구의 어제와 오늘

광주대교구의 모본당은 레지오 마리애의 도입지인 목포 산정동본당(당시 목포본당)이다.

1896년 조선교구 제 8대 교구장 뮈텔 주교는 전라도지방 사목 방문시 본당 설립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제물포, 원산, 부산에 이어 개항된 목포지역에 본당 설립을 추진했다.

이에 본당 신설의 임무를 맡은 드애(Albert deshayes) 신부가 이듬해 10월 16일 목포 산정동에 본당 부지를 확정하고 사목 활동을 시작함으로써 목포본당이 시작됐다.

이후 1931년 3월 10일 대구교구에 속해 있던 전라도의 광주와 전주 두 지방이 하나의 감목 대리구로 설정되고 이어 1934년 5월 10일 전주와 나누어져 전남 감목 대리구가 되고 마침내 1937년 4월 13일에는 전교지역에 있어 교구 설정의 첫 단계인 지목구로서 광주교구가 설정됐다.

당시 교세는 신부 22명(한국인 3 선교 사제 19) 9개 본당 36개 공소에 신자 수 3천5백여 명이었다.

교구 설정 60주년과 목포지역 선교 1백주년을 맞는 광주대교구의 현 교세는 96년 말 현재로 신자 수 24만5천3백 명 신부 1백74명에 82개 본당과 1백12개의 공소로 성장했다.

광주대교구는 성장의 과정 속에서 일제의 압력과 한국동란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성직자들과 신학생들이 피납되고 순교하는 뼈아픈 역사를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1953년 현 하롤드 대주교의 수락으로 도입된 레지오 마리애는 교구 성장의 초석을 놓았을 뿐 아니라 한국교회 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는 중요한 몫을 담당했다.

또한 6ㆍ25 당시 많은 피난민들이 목포지역으로 몰려들자 본격적인 대 사회활동을 시작해 1955년 목포에 성 골롬반 병원을 개설하였고 60년에는 현 대주교의 초청으로 천주의 성 요한 의료봉사 수도회가 진출, 지역민의 보건사업 및 극빈자들을 위한 의료활동에 들어갔다.

56년에는 살레시오회에서 설립한 사레지오중학교를 시발로 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한 지역민들을 위해 교육사업을 시작했고 62년에는 대건신학대학(현 광주가톨릭대학교)를 설립해 많은 사제들을 배출했다.

빛고을 광주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권운동. 광주대교구는 설립 당시부터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기 위해 전력투구해 왔으며 70년대부터는 노동자 농민들의 입장에서 정의의 목소리를 높이는 한편 민주화 운동에도 투신했고 광주민주화항쟁 때는 지금까지 교구 전체가 사건의 진상 규명과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서오는 등 언제나 지역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해 왔다.

이처럼 광주대교구가 자기쇄신을 통하여 지역과 민족 앞에 열린 교회로 나가고자 하는데는 우리나라 현대사에 있어 광주대교구가 담당해온 십자가가 그만큼 큰 탓이기도 했으나 이는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다.

윤공희 대주교는 『그동안 교회의 대 사회사목은 인간개발의 측면에서 복지 개념이 강조되고 정의의 개념은 상대적으로 무시됐다』고 지적하고 『모든 활동은 인간의 존엄성이 기본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정의 평화 활동이 아주 중요하다』며 균형 잡힌 사회 개발을 강조했다.

『언제나 신앙인임을 자각하고 자신의 신원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윤공희 대주교의 말처럼 광주대교구는 지난 세월처럼 앞으로도 교구의 삶을 통해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빛이 되게 하소서」라는 소망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김상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