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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가톨릭 박해사] (17) 가경제의 박해(가경제~아편전쟁까지) (5)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입력일 2012-02-16 수정일 2012-02-16 발행일 1997-08-24 제 2067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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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제도 대 이어 박해 계속
북경의 4개 성당 모두 정부서 몰수
복자 원재덕(요셉) 신부는 1766년 사천 팽현에 열심한 구 교우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성격이 온수하고 신심이 두터워 매 신부의 추천으로 29세에 신부가 되어 광안,합주,정원,동량,대족,영창 등지에서 열심히 사목하였다. 교우 등이낭이 품행이 좋지 않아 동정녀 이씨가 여러 번 충고를 주었는데도 말을 듣지 않자 원 신부가 심하게 야단을 쳤다. 등이낭이 여기에 앙심을 품고 관에 고발을 하여 원 신부와 교우들이 체포되었다. 유서정 신부가 원 신부의 동생으로 가장하고 감옥으로 찾아갔을 때 원 신부는 『하느님 생각 속에 있으므로 조금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였다 한다. 원 신부는 1817년 6월 23일 교수형으로 치명하였다.

복자 유한좌(바오로) 신부는 사천 낙지의 열심한 교우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 신부는 특히 병자성사를 열심히 주었는데 말이 없어 수백 리 길을 도보로 다녔는데 박해시대였으므로 행상으로 가장하기 위해 등에 짐까지 지고 다녔다고 한다. 유 신부가 덕양현의 최씨 성을 가진 교우 집에 와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를 할 장소를 마련하기 위해 천막을 치는데 목수가 잘못하여 나무랬다. 목수는 신입 교우였는데 앙심을 품고 관에 고발을 하여 유 신부와 교우들이 체포되었다. 차역이 5천 문을 주면 석방시켜 주겠다고 하였다. 동정녀 전씨가 은전과 초모(草帽)를 유 신부에게 갖다 주었다. 유 신부는 『이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십시오』하고 초모만 받고 돈은 받지 않았다고 한다. 판관이 교우들의 이름을 대라고 하자 유 신부는 『말할 수 없습니다』하고 잘라 말했다. 판관은 화가 나서 유 신부의 입을 40판이나 때리게 하였다. 유 신부는 1819년 2월 21일 동교장에서 교수 치명하였다. 관산에 매장하였다가 마반산으로 이장하였다.

◆도광제의 천주교 박해

가경제가 1820년 서거하고 황자 민영이 계위하니 이가 곧 도광제이다. 도광제는 부친 가경제의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여 가경제 때 형벌을 받은 교우들에게 사면을 내리지 않았다.

1807년 동당에 화재가 크게 나서 조정에 신축 신청서를 냈는데 허락이 내리기는 커녕 오히려 남당으로 가서 거주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관원들이 와서 성당과 사제관을 파괴하였다. 동당에는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거주하였으며 북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선교사들이 책 정리를 하는데 등잔불이 넘어져 화재가 났다고 한다.

당시 궁중에는 리베리오(이공진) 신부와 페레이라(복문고) 신부, 세라(고수겸) 신부, 피레스(필학원) 주교, 통역관 라미오트(남미덕)신부가 공직하고 있었다. 조정에서 라미오트 신부는 학술 미숙이란 이유로 귀국시키고 서당을 폐하였다. 페레이라 신부는 1824년 서세하고 세라 신부는 1827년 귀국하였다. 정부에서 북당을 폐하기 위해 북당에 있는 선교사들을 남당으로 옮기게 하였다. 이때 귀중품은 서만자성당으로 보내고 책은 정복사로 옮겼다. 정복사는 북경에서 7km 떨어진 곳에 있었으며 처음에는 예수회 회원들의 묘지였으나 예수회가 해산된 후 라자리스트 회원들의 묘지가 되었다. 피레스 주교는 1826년 흠천감을 사직하고 산학관에서 일을 하다가 1838년 11월 2일 71세로 서세함으로써 궁중에 공직하는 서양 선교사는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었다. 흠천감에 중국 관원들이 서역을 만들 수 있게 되자 서양 선교사들이 필요 없게 되었다. 피레스 주교가 서세하자 남당도 정부에서 몰수하여 러시아 동정교에 넘겨 주었으며 러시아 선교사들이 남당의 책과 정복사의 책을 사용하였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사제관을 헐어 팔아서 천주교에 넘겨 주는 호의를 보이기도 하였다. 북경의 4개의 성당 중에 남은 것이 오직 남당이었는데 남당도 러시아 정교회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포르투갈의 보교권 때문에 포르투갈 출신의 라자리스트 회원들이 북경에 많이 와 있었다. 북경을 거점으로 하여 선교하던 것은 끝이 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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