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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문화유산 순례] 6. 청주교구 감곡성당

리길재 기자
입력일 2012-02-16 수정일 2012-02-16 발행일 1997-08-24 제 2067호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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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각 중앙 종탑 높이 35m
좌우 양 탑보다 높아 ‘특이’
3개 종탑, 5개 제대 “특징”
제대 위 총탄 흔적 간직
충북 지방문화재 188호
충청북도에서 최초로 설립된 감곡성당은 장호원성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충청북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188호로 지정된 감곡성당은 1921년 터 닦기를 시작하여 1930년에 완공된 벽돌 구조의 고딕양식으로 중앙 종탑을 중심으로 좌우 양 탑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감곡성당 터는 명성황후의 6촌 오빠로 당시 충주 목사였던 민응식의 집으로 99칸의 큰 한옥이었다.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민비)가 일시 피신하기도 했던 민응식의 집은 일본군에 의해 불 탄 채 잔해만 남아 있었고 부이용 신부는 이 집을 1896년 5월 1백88불에 구입했다.

현 감곡성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시잘레 신부가 설계했고, 공사는 프와넬 신부가 보낸 중국인 기술자들이 맡았다. 시잘레 신부는 감곡성당 외에도 풍수원, 용소막, 답동성당 등을 설계했다.

1930년에 완공된 감곡성당은 장방형 평면에 주 출입구를 서쪽으로 두는 고딕 성당이다. 감곡성당의 원 설계는 현재의 건물보다는 규모가 컸으나 건축 당시 재원과 석재가 부족했고, 공사 기간 중 심한 장마로 인해 설계대로 건축할 수 없어 축소됐다.

감곡성당의 평면은 삼랑식의 장방형으로 열주와 천장에 의해 신랑과 측랑의 구별이 뚜렷하고, 좌우 양측의 돌출한 출입구에 의해 라틴 십자형의 구성을 하고 있다.

구조 방식은 조적조로, 벽돌로 일반 벽체와 부축벽을 이루고 있고 내부의 열주는 석재로 구성되어 있다.

종탑에는 프랑스 루르드에서 주조한 「벨라뎃다」「데레사」「마리아」라고 이름 붙여진 3개의 종이 매달려 있었다. 이 종들은 일제 말기에 공출 당했으나 해방 후 역대 본당 신부들과 신자들의 노력으로 용포공소와 이천성당에 흩어져 있었던 2개의 종을 최근에 다시 찾았다.

성당과 함께 건립된 사제관은 석조 건물로 1934년에 완공됐다. 사제관은 지상 2층, 반지하 1층이며 원형 보존이 아주 잘 돼 있다. 현재도 창문은 옛 것을 그대로 쓰고 있고, 자하에는 민응식의 집 대문이 보존되어 있다.

감곡성당은 그 자체가 한국교회의 문화재이지만 그 안에 많은 보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먼저 감곡성당 제대 위에는 한국 동란 당시 총탄의 흔적을 아직도 간직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모상이 있다.

감곡성당 제대는 모두 5개소의 석조로 되어 있다. 주 제대와 익랑의 부 제대 중 4번과 5번 위치의 제대는 화강석으로 되어 있고, 2번과 3번 위치의 제대는 받침 부분만 화강석이고 나머지는 대리석이다.

특히 2번 제대는 예수 성심상, 3번은 요셉 성인상, 4번은 소화 데레사 상이 있고, 5번 제대는 순교 성인 범 노렌조 주교와 나 베드로, 정 야고버 신부의 머리털과 김대건 성인의 가슴뼈가 모셔져 있다.

감곡성당은 3개의 종탑을 갖고 있다. 8각의 중앙 종탑은 높이 35미터로 좌우 양 탑의 높이 16미터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이 특징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종탑이다.

한편, 감곡본당은 지난해 본당 설정 1백주년을 맞아 성당을 교회 사적지로 보다 잘 보존하고 연구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실측조사를 실시, 「감곡성당 건축사」를 펴냈다.

리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