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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가톨릭 박해사] (16) 가경제의 박해(가경제~아편전쟁까지) (4) 복자 장대붕(요셉)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
입력일 2012-02-16 수정일 2012-02-16 발행일 1997-08-17 제 206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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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등지서 열심히 전교
처남 밀고로 수감, 끝내 교수형
장대붕(요셉)은 1754년 귀주성 도균에서 3형제 중에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대괴, 대학 두 동생이 있었다. 두 부모의 이름은 실전되어 알 수가 없으며 장대붕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정직하여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장대붕은 40세에 귀양으로 가서 왕씨라는 사람과 3동업으로 실 공장을 하였다. 왕씨가 북경에 갔다가 서양 선교사를 만나 교리서를 얻어 와서 장대붕에게 빌려 주었다. 장대붕은 그 책을 읽고 천주교가 참 종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1798년 봄에 나 신부가 융평상으로 오게 되자 장대붕은 나 신부를 찾아가 교리를 열심히 배웠다. 장대붕은 정처가 아들을 낳지 못하므로 소실을 얻어 아들 하나를 낳았는데 입교할 결심을 하고 소실 여부인에게 지참금을 주어 교우 두씨에게 재혼을 시키고 1800년 세례를 받았다.

당시 이미 금교령이 내려 있었으므로 관직에 있는 두 동생과 친척들은 자기들의 출세 길이 막힐 염려가 있으므로 장대붕에게 배교하라고 몹시 야단을 쳤다. 교우들은 관헌들과 천주교를 괄시하는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야 되었으며 신부가 와서 미사도 하고 성사를 줄 조용한 장소를 찾고 있었다.

장대붕은 친구들에게 돈을 꾸어 1백80은전을 주고 사형장 근처 육광문 밖에 주씨 성을 가진 사람의 집을 매입하였다. 이집 근처에는 외교인의 집이 하나도 없어 교우들이 모이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장대붕의 두 동생은 백련교가 반란을 일으킨 기회를 이용하여 천주교를 고발하였다. 그리하여 1800년 5월 5일 교우들이 체포되었으며 장대붕은 재빨리 피하여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장대붕이 양로원에 가서 봉사를 많이 하였는데 한 노인에게 대세를 주고 사망하자 천주교 식으로 장례를 치루어 주었다.

양로원 원장이 후에 이 사실을 알고 몹시 화가 나서 관에 고발을 하자 장대붕은 실 장사로 변장하고 흥양부로 피난하였다. 당약망 신부가 귀양에 와서 성당 옆에 학당을 짓고 장대붕을 원장 겸 교리교사로 초빙하여 장대붕은 귀양으로 가서 3년간 열심히 일을 하였다.

1811년 박해 때 귀양성당과 학당은 파괴되고 장대붕은 흥의부로 피신하였는데 장대붕의 외아들이 이때 체포되어 부친이 있는 곳을 대라고 갖은 고문을 당했으나 끝까지 말을 하지 않아 잔혹한 형벌을 받고 용천현으로 충군되었다가 고문 받은 상처 때문에 2년이 못 되어 사망하였다.

장대붕은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듣고 더욱 열심히 선교하여 안산 정번주에 10여 가구를 입교시켰다. 귀주 순무는 현상금으로 은전 30냥을 걸고 장대붕을 체포하게 하였다. 장대붕이 귀양에서 7리쯤 떨어진 양마묘라는 마을에 숨어 있었는데 처남 권씨가 은전 30냥이 탐이 나서 밀고하였다. 장대붕이 감옥에 들어갔을 때 이미 많은 교우들이 수감되어 있었다. 감옥 안은 매우 불결하고 어둡고 통풍도 되지 않아 악취가 심하였다 한다.

좁은 감방에 10~50명씩 구금시키고 발에는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한다. 감옥 안에 여러 개의 신상을 모신 민간 신앙인 먀오라는 것이 있었는데 다른 수인들은 모두 그곳에 분향하고 절을 하는데 교우들은 절을 하지 않아 매를 많이 맞았다. 판관은 땅 바닥에 십자가를 놓고 배교의 표시로 십자가를 밟게 하였다. 장대붕은 심한 고문을 당하면서도 절대로 배교하지 않았다. 장대붕은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사형 판결문 중에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죄인 장대붕은 여러 해동안 사학을 학습해 왔고 하개지 등 40여 명에게 사학을 전수시켰으며 또한 법을 존중하지 않고 귀주를 야만인들의 세계로 만들려 하였으므로 엄징하는 것이 시급하여 북경 형부에 죄인 장대붕을 교수형에 처할 것을 의뢰합니다』

장대붕이 사형 판결이 내려지자 사형수들이 많이 수감되어 있는 옥으로 옮겨졌다. 사형을 집행하는 날 차역이 관례대로 장대붕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정해진 형벌은 무엇이요?』 장대붕은『교수형이요』하고 대답했다. 휘광이가 T자 형의 말뚝에 장대붕을 묶고 밧줄을 장대붕의 목에 걸고 사형을 알리는 신호가 나자마자 밧줄을 세게 잡아 당겼다. 바로 그때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가 쏟아졌다. 가족들은 장대붕을 육광문 외에 세각담에 안장하였다.

서양자 수녀·한국순교복자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