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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선교의 뿌리를 찾아서] 평신도 - 여성 평신도의 표상을 보여준 조이들 (1)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2-02-14 수정일 2012-02-14 발행일 2012-02-19 제 2783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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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신앙 지킨 124위 중 여성 평신도 수는 24명
여성 평신도의 표상으로 일컬어지는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
‘하느님의 종 124위’ 가운데 여성 평신도의 숫자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성 평신도의 표상으로 일컫는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를 포함, 하느님의 종 가운데는 24명의 여성 평신도들이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나이 많은 여성 혹은 과부를 뜻하는 이두 ‘조이(召史)’라는 이름으로 불린 여성들이 많다. 이들은 주로 남편으로부터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게 됐지만, 그 신앙을 바탕으로 독립적인 덕행을 실천했고 순교의 삶까지 나아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김조이(아나스티아)는 충청도 덕산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나 이성삼(바오로)과 결혼한 여성이다. 본래 원만한 성격을 가진 그는 남편으로 인해 천주교를 알게된 후부터 모든 이에게 더 큰 사랑을 받았다. 자신의 가정을 성가정으로 이끌기 위해 자녀들의 교리교육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교리를 실천하는 데도 열심이었다.

1839년 기해박해 당시 체포된 김조이는 자신이 바라던 참수형을 당하지 못하고 옥중생활에서 얻은 병과 형벌로 인한 상처로 목숨을 다했다. 그의 열성적인 교리교육으로 딸 이봉금(아나스티아)의 이름도 124위에 올랐다. ‘시련을 당해도 신앙의 가르침에 충실하겠다’고 어머니에게 말한 그는 옥중에서 어머니의 순교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에도 신앙을 버리지 않아 12세의 나이에 교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또 하나의 조이, 심조이(바르바라)는 홍봉주(토마스)의 아내다. 1801년 순교자 홍낙민(루카)이 그의 시할아버지였고, 훗날 함께 체포돼 순교한 홍재영(프로타시오)은 그의 시아버지였다.

심조이는 지능이 매우 낮아서 아무리 노력을 해도 중요한 교리 외에는 배울 수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의 신앙은 말할 수 없이 굳었으며, 많은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었다. 실제로 시아버지의 유배로 인해 심조이가 전라도 광주에서 살고 있을 때, 교우들이 박해를 피해 자신의 집으로 의탁해오자 짜증을 내지 않은 것은 물론 음식을 아까워하지도 않았으며, 짐이 된다는 눈치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체포돼 고문을 당할 때 한 살 된 막내아들이 굶주림과 병으로 천천히 죽어가는 것을 보았음에도, 심조이는 이를 신앙의 힘으로 극복하고 사형을 선고 받았으니 당시 그의 나이 26세였다.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