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 순교혈사] 48 고성대(베드로)와 고성운(요셉)

차기진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입력일 2012-02-14 수정일 2012-02-14 발행일 1997-08-03 제 2064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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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체포돼 형벌…… 순교한 형제 순교자
1851년의 을해박해 때 순교한 이들 가운데는 유명한 형제 순교자가 있다. 그들은 함께 복음을 받아들여 신앙생활을 하다가 함께 체포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고 같은 날 순교하였는데, 이러한 경우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다. 이들이 바로 덕산 별암(현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 출신인 고성대(베드로)와 고성운(요셉)으로, 어느 기록에는 요셉이 형이고 베드로가 동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베드로는 일명 「여빈」이라 하였고, 요셉은「성일」이라고 불렀다.

이곳 덕산지역은 이미 한국 천주교회 창설 초기에 내포의 사도 이존창(루도비코 곤자가)에 의해 복음의 씨가 뿌려진 곳으로, 별암 이웃인 황모실(고덕면)과 용머리(삽교읍)에도 그때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베드로와 요셉 형제는 일찍부터 부모에게 교리를 배워 그리스도의 종으로 성장하였다. 본래 형 베드로는 성격이 불같은 편이었으므로 이웃 사람들이 그와 교제하기를 꺼려 하였지만, 동생 요셉은 성정이 착하고 순량하여 형의 성격을 보완해 주고도 남았다. 그러나 형제의 효성은 아주 지극하였고, 신앙생활 또한 아주 열심이어서 성서를 읽고 다른 이들의 모범이 되었다. 그들은 부친이 병으로 앓아 눕게 되자 8개월 동안을 봉양하며 날마다 부친을 위해 열심히 기도를 드렸다.

덕산지역의 신앙공동체는 1797년에 시작되어 2~3년간 계속된 정사박해로 인해 와해되고 말았다. 이에 형 베드로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고산 저구리골(현 전북 완주군 운주면 적오리)로 이주하였는데, 1801년의 신유박해로 포졸들에게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서 형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용감히 신앙을 증거하고 순교하겠다던 처음의 다짐은 계속되는 형벌과 유혹으로 무너졌고, 마침내는 배교한다는 말로 석방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의 잘못을 크게 뉘우쳐『이 큰 죄를 보속하려면, 칼을 맞아야 한다』고 되뇌이곤 하였다.

이후 베드로는 아우 요셉과 함께 동정을 지키기로 하고, 참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경상도 청송 땅의 노래산(청송군 안덕면 노래동) 교우촌에서 교우들이 함께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곳으로 가서 합류하게 되었다. 이곳의 비밀교회는 누구에게도 알려져 있지 않았으므로 그들 형제는 바라던 대로 교회의 가르침대로 생활할 수 있었고, 교우들의 도움으로 생계도 꾸려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악마는 언제나 훼방을 놓기 마련이었다. 그들 형제가 노래산에서 생활한지 얼마 안 된 1815년 2월 22일에 교우들이 함께 모여 부활 축일을 지내고 있을 때, 배교자 전지수가 포졸들을 앞세워 이곳을 습격한 것이다. 그 결과 베드로 형제도 다른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어 경주로 끌려가게 되었다. 이에 앞서 교우들은 박해를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도둑들이 쳐들어 온 것으로 알고 힘세고 날쌘 고성운(요셉)의 지휘에 따라 힘으로 대적하였으나, 그들이 도둑이 아니라 포졸이라는 것을 알고는 모두가 순한 양처럼 포승을 받았다.

경주 진영에서 베드로와 요셉 형제는 혹독한 고문을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형제는『아무리 관장님께서 엄한 형벌로 다스린다고 할지라도 이미 배운 교리를 버릴 수 없으며, 마음을 뉘우쳐 신앙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라고 단호하게 대답하였다. 이제 그들의 몸과 마음은 목석과 같아 집요한 회유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마음이 약해진 교우들을 권면하여 신앙을 간직할 수 있도록 북돋워 주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런 다음 형제는 대구 감영으로 이송되어 더욱 가혹한 형벌과 문초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받는 형벌에서 고통을 느끼기보다 많은 교우들이 배교하고 옥 문을 나서는 것을 보면서 더 마음 아파했다.

이렇게 약 20개월 동안의 옥중 생활을 겪은 끝에 그들 형제는 마침내 서울에서 내려온 사형 판결문을 받게 되었다. 감사는 이내 그때까지 옥 중에 남아 있던 모든 교우들을 끌어내 형장으로 데려 가도록 하였고, 베드로와 요셉은 그렇게도 바라던 대로 신앙의 이름 아래 칼을 맞게 되었으니, 때는 1816년 11월 8일(양력 12월 26일)이었다. 그때까지 그들은 동정을 지켜오고 있었다.

차기진 ‧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