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긴급진단] 청소년 폭력·성 문제 이대로는 안 된다 (상)

우재철 기자
입력일 2012-02-14 수정일 2012-02-14 발행일 1997-07-27 제 2063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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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의 뿌리는 기성세대 저질문화
미성년 접대부ㆍ 퇴폐이용소ㆍ포르노 비디오ㆍ가족 이기주의 ……
청소년 탈선의 온상 퇴폐문화를 추방하자
청소년들이 스스로 촬영해 판매한 음란비디오 문제로 나라 전체가 온통 청소년 폭력과 성 문제에 집착돼 있다.

무엇인가 터졌다 하면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한바탕 전쟁을 치르다가 곧 흐지부지해지고 마는 것이 다반사였지만 최근에 터진 청소년들의 성문란 및 성 폭력 문제를 보는 시각이 매섭다.

갈 데까지 가버린 청소년 문제를 더 이상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과 함께 뭔가 새로운 방도를 찾아 빗나간 청소년들이 다시 돌아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특히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청소년 문제, 즉 성 폭력과 성 문란 등 갖가지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성인들의 잘못된 풍조」를 그 원인으로 지적하는가 하면「이미 만들어진 구조 속에서 다만 청소년들이 희생 당하고 있을 뿐」임을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사회 곳곳에 산재해 있는 퇴폐문화가 청소년들의 탈선의 온상이 되고 있다」고 설명하고 동시에「입시 위주, 성적 위주의 교육제도 또한 청소년 문제를 일으키는 주범」이라고 지목한다.

입시 위주 교육도 문제

결국 청소년 문제의 온상, 퇴폐문화를 추방하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입시 위주의 교육, 즉 모든 인간의 가치와 척도를 점수로만 매기는 제도는 청소년들에게 엄청난 좌절감을 주게 되므로 개개인의 존엄성을 수용하는 교육으로 그 방식이 바뀌어져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아울러 청소년 문제 전문가들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에서 청소년 문제 해결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청소년들을 단지 소비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무차별 공격을 가함으로써 아직 성숙되지 못한 청소년들은 문화적 충동을 느끼게 되고 편리하고 좋은 것을 좇아 자신도 모르게 탈선의 길로 빠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특히 기성세대의 경우 자기 자녀들은 안전하게 성장하길 바라면서도 술집 등을 찾아 미성년 접대부를 찾는 잘못된 풍조, 자기 자녀들은 만화방이나 비디오방, 전화방 출입을 엄격히 막으면서도 10대 청소년들을 마구잡이로 끌어 들이는 상혼 등 이런 의식구조부터 스스로 고쳐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팽배해 있는 가족 이기주의도 청소년 문제를 야기시키는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80년대를 지나면서 냉소주의가 사회를 지배함에 따라 남이야 어떻든 나만, 내 가족만 잘 되면 된다는 가족 이기주의는 남을 의식하지 않는 사회를 낳았고 더불어 사는, 함께 살아가는 의식을 송두리째 빼앗아 버렸다.

내 자녀만 괜찮으면 …

따라서 내 자녀만 보호하면 된다는 의식이「상호 상대방 자녀를 경쟁적으로 병들게 만든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 청소년 문제를 보는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이런 근원적인 문제와 함께 청소년들을 바라보는 기성세대의 시각도 변화돼야 한다고 청소년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성에 대한 호기심과 성적 욕구를 강하게 지니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그들이 지니고 있는 문제성을 분출해 낼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놓지 않고 억압과 통제에만 급급한 실정에서 청소년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너는 공부만 해라」는 식의 학교와 입시학원의 굴레에서 벗어나 또레집단과 같은 소공동체 활동을 통해 책임과 역할을 부여하고 자기 행동에 대한 시행착오를 스스로 수정해 나갈 수 있는 다양한 문화들이 청소년들에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설명이다.

허락된 것은 공부뿐

학교 공부 밖에는 허용된 것이 없는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 밖에 없다는 것이 일선 청소년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지적이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 교포 학부모가 한국에서처럼 아이들을 일년 내내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학교에 보냈더니 미국인 교사가 그 학부모를 불러「학생을 매일 학교에 빠지지 않고 보내야 할 문제가 집안에 있는지 물었다」는 얘기처럼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 학교에만 보내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고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이 먼저 아이의 관점에서 청소년들과 대화하려는 노력을 보임으로써 청소년과 기성세대가 함께 비뚤어진 청소년 문화에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정부 단속 강화돼야

아울러 심각한 청소년 성 문제와 폭력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단속도 병행돼야 한다.

공권력과 결탁된 퇴폐문화야말로 국가가 청소년들의 탈선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게 한다. 언론 등에 보도되면 단속을 한다고 야단법석을 떨다가 곧 흐지부지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7월 1일부터 청소년보호법이 발효됐지만 과거 청소년보호법이 없어 청소년 유해 관련 사범들을 단속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학교 정화구역 내 행락업소의 처벌 등이 가능한데도 정부는 국가의 장래를 짊어진 청소년 문제에 별다른 대응책을 내놓지 못하고 방관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비디오방과 만화방, 전화방, 단란주점, 안마 시술소, 증기탕, 이발관 등 퇴폐의 온상으로 이미 낙인이 찍힌 이들 업소들이 오로지 청소년들을 소비의 대상으로만 인식, 무차별 공격해 오고 있는데도 기성세대들은「내 자식들만 가지 않으면 된다」는 식으로 방관만 하고 있다.

한 교회 평신도는 퇴폐이발관의 폐해를 의식, 「거의 모든 이발관이 퇴폐영업을 하기 때문에 머리가 길어 보이는 아이에게 이발관에 가서 머리를 깎고 오라는 얘기를 못한다」고 통탄해 하고 있다.

감옥 갈 사람은 어른들

서울 YMCA 이승정(세실리아) 청소년사업부장은「최근 음란비디오를 제작 판매한 청소년들을 감옥에 가두자는 여론도 있지만 감옥에 쳐 넣을 사람들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 자신들」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방치 또는 조장해 놓고 그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이승정 부장의 설명이다.

◆ 서울 YMCA 청소년사업부 이승정 부장

“공권력과 퇴폐문화의 결탁부터 근절돼야”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압력 밥솥에 들어 있는 아이들이라고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속에서 뛰쳐 나오기 위해서는 폭발하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이 처한 상황을 압력 밥솥 속의 아이들로 비유, 청소년 문제의 심각성을 설명하는 서울 YMCA 청소년 사업부장 이승정(세실리아ㆍ불광동본당)씨.

이승정 부장은 요즘, 성문제와 폭력문제 등으로 청소년 문제가 불거지면서「청소년단체 구성원으로서 내가 지금까지 무얼 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의욕 상실에 빠져 있다」며 최근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 청소년 문제의 단면을 강조했다.

특히 이승정 부장은 최근 더욱 부각되고 있는 청소년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 중요한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하고「문제를 일으킨 청소년만이 아닌, 왜 그렇게 됐느냐 하는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역설한다.

「문제가 부각됐을 때만이 그들과 전쟁을 치르듯 부산을 떠는 대응보다는 근본적인 문제에서 청소년 문제의 접근을 시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승정 부장은 먼저 교육제도의 근본적인 수정과 사회 구조, 가족 이기주의의 극복 등이 전제될 때 청소년 문제도 함께 해소될 수 있음을 지적했다.

「얼마 전 YMCA에서 서울 시내 44개 중고등학교 주변을 대상으로 정화구역 내 유해환경 조사를 실시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중 70%의 학교에서 학교 정화구역 내에 여관이나 행락업소 등이 즐비해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이런 종류의 유해 환경들을 고스란히 남겨 놓고 청소년 문제를 따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른들의 염치없는 행위라는 이 부장은 청소년 문제의 올바른 접근을 위해서 먼저 공권력과 퇴폐의 결탁을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근절시켜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승정 부장은「모든 것을 제쳐두고 공부만 하면 된다는 교육제도의 기형과 청소년을 소비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사회 구조, 자기 자식만 그렇지 않으면 된다는 가족 이기주의가 이 땅의 모든 청소년들을 그릇되게 이끌고 있다」고 역설했다.

자녀들에게는 안전을 강조하면서 술집 등에서는 딸과 같은 접대부들을 찾는 이중적인 아버지상을 벗어 던지지 않고서 최근 10대들이 저지른 비디오 촬영 사건에 대해 흥분할 자격이 없다는 이승정 부장은 따라서 기성세대의 자각과 반성이 함께 이뤄져야 청소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특히 이승정 부장은 이런 청소년 문제가 터질 때, 그 결과에 대한 분노를 앞세우기 보다는 냉정한 마음으로 나 자신부터 문제 해결의 주역이 되겠다는 각오를 다질 때 청소년들의 성 문제와 폭력을 막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도 이 부장은 청소년들에게 스스로 주체성을 기르고 시행착오를 통해 다시 극복해 낼 수 있는 힘을 길러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청소년 또래집단과 소그룹 활동들을 교회 등에서 적극 수용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우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