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브로츠와프 세계성체대회 개막에서 폐막까지 이모저모

박영호 기자
입력일 2012-02-13 수정일 2012-02-13 발행일 1997-06-08 제 2056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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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쾌락·물질로부터 자유를”
⊙···자유를 주제로 8일간 진행됐던 제46차 브로츠와프 세계성체대회는 폴란드인들의 고유한 저력을 보여 준 장엄한 축제이자 뿌리 깊은 가톨릭 국가로서 신앙의 깊이를 과시한 자리였다.

지정학적 역사적 이유로 슬픈 운명을 멍에처럼 짊어지고 살아온 비극의 땅 폴란드는 숱한 고난을 신앙의 힘으로 극복해 낸 전설같은 민족사를 지니고 있다. 이번 브로츠와프의 주제인 「성체와 자유」는 폴란드의 이러한 민족사와 깊은 연관을 맺으면서 전 세계에 참된 자유의 원천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교황이 없었다면 폴란드는···”

⊙···폴란드 대통령 알렉산더 크바스니에프스키는 5월 31일 고국을 방문한 교황을 환영하면서 『교황 성하와 폴란드의 가톨릭교회가 없었다면 폴란드는 아무런 변화도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공산주의의 악령에 지배됐던 당시 교황과 가톨릭 신앙은 폴란드 국민들의 가슴에 자유를 향한 불같은 염원을 불러일으켰고 끝이 없어 보이던 싸움은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믿음에서 힘을 얻어 마침내 자유의 쟁취로 결말이 났다.

제46차 브로츠와프 성체대회는 바로 이러한 폴란드 역사 안에서의 자유의 경험을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증거하는 자리였고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모든 이들이 세속주의, 쾌락주의, 물질주의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성체성사의 신비를 생활화해야 한다는 점을 명백하게 선포한 축제였다.

3년 뒤에 47차 세계성체대회

⊙···5월 25일 브로츠와프 주교좌 성당인 세례자 요한 성당에서 봉헌된 개막미사로 시작된 이번 성체대회는 31일 교황 방문, 6월 1일 장엄미사로 막을 내렸으며 4년마다 치루어지던 것과는 달리 3년 뒤인 2천년 대회년에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그 실천을 모색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이번 성체대회 프로그램은 크게 미사와 학술 회의, 성체조배와 특별 행사로 구분해서 볼 수 있다.

시민회관서 매일 미사·강론

⊙···성체대회 기간 중 매일 아침 10시 시민회관(Hala. Ludowa)에서는 교황청과 각국의 저명한 교계 인사를 초청, 미사를 집전하고 깊이 있는 강론을 마련했다. 그 중에는 프란시스 아린제 추기경, 에두아르도 가뇽 추기경, 에드먼드 쇼카 추기경 등이 있었다. 오전과 오후 두 차례에 걸쳐 마련된 학술 강연은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 미국의 존 오코너 추기경, 이탈리아 주교회의 의장 까밀로 루이니 추기경 등이 맡았다.

7개 국어로 매일 세미나

⊙···브로츠와프 시내 12개 성당에서는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불어와 폴란드어 등 7개 국어로 매일 세미나가 개최됐다.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위원인 한국의 한홍순 교수는 29일 「성체에서 생활로」를 주제로 영어권 세미나 강의를 맡았다. 한 교수는 지난 세비야 성체대회에 이어 두 번째로 강연을 맡았다.

⊙···특별 행사 중에서 29일 열린 성체거동은 단연 폴란드 교회의 저력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 장엄한 행사였다. 오전 10시 미사를 마무리하면서 5만여 명에 달하는 참석자들은 시민회관에서 주교좌 성당인 세례자 요한 성당까지 2시간 30여 분에 걸쳐 조용하고 엄숙한 행렬을 이루었다.

폴란드의 독보적인 성체신심

고유의 민족 의상을 갖춰 입은 각국 대표단은 수십 개에 달하는 연도의 성당들을 배경으로 행렬을 이뤘는데 폴란드의 독보적인 성체신심을 보여주듯 수많은 시민들이 행렬을 지켜보며 성체 앞에서 무릎을 꿇어 공경심을 표했다.

⊙···한편 2백30여 명의 대규모로 구성된 한국 대표단은 항상 말끔한 한복을 입고 각종 행사에 참석해 곳곳에서 폴란드 시민들과 각국 순례단들로부터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개막 이튿날인 26일부터 24시간 성체조배에 돌입한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회원들은 성체조배 장소인 꼬르뿌스 끄리스띠 성당을 하루종일 지키며 고리 성체조배를 실시했다.

한복 입은 한국 순례단 인기

특히 한국 대표단은 원래 예정됐던 무대 공연이 취소되자 29일 비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도시 중심부인 시청앞 광장에서 화관무 부채춤 등 한국 민속무용을 선 보여 큰 박수를 받기도 했다. 세 그룹으로 나뉘어 순례를 실시한 한국 대표단은 30일부터 일제히 합류, 폴란드 고유 종교행사인 성체거동에 참여했고 31일 저녁에는 한국인의 밤을 개최하고 합동미사를 봉헌했다.

⊙···5월 31일 오전 11시 브로츠와프 국제공항에 도착한 교황은 간단한 영접 행사 후 바로 주교좌 성당으로 향해 이른 아침부터 교황을 기다리고 있던 신자들과 만났다. 교황은 오후 6시에는 시민회관에서 동방정교, 프로테스탄트 등 타 종파 지도자 및 신자들과 함께 그리스도교 일치 기도모임을 가진 데 이어 저녁 7시 30분 타 종파 지도자들과 별도로 만나 저녁 식사를 마쳤다.

교황은 성체대회 공식 일정이 끝나는 6월 1일 이후 10일까지 폴란드 각 도시를 방문, 예년과 달리 상당히 오랜 기간의 사목 순방길에 나설 예정이다.

교황 도착일 초겨울 날씨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도착하던 5월 31일 브로츠와프시는 며칠 전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겨울 날씨를 방불케 하는 차가운 날씨에 빗방울까지 떨어져 채 성당으로 들어가지 못한 신자들과 보도진들은 추위에 떨어야 했다.

신자들과 보도진은 이미 2시간 전부터 성당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던데다 설상가상으로 교황 성하가 예정보다 30분 가량 늦게 도착. 하지만 이빨을 부딪히며 추위에 떨던 신자들은 교황이 도착하자마자 추위를 잊고 반가움에 환호성을 올려 교황에 대한 깊은 애정을 느끼게 했다.

◆ 한국 대표단장 김옥균 주교

“생활 속에 뿌리 내린 신앙 신선한 충격”

『매우 짜임새 있고 조직적으로 잘 준비된 성체대회라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하지만 대회 운영의 기술적인 면에서는 다소 미흡한 감이 있지요』

엉성한 진행에 당혹감도

2백30여 명의 한국 대표단을 이끌고 제46차 브로츠와프 세계성체대회를 참가한 김옥균 주교는 이번 성체대회가 내적으로 충실하게 준비된 대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처음에는 엉성한 행사 진행,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안내원이 없는 등 국제 감각을 찾아볼 수 없는 손님 대접에 당혹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활 속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 신앙을 볼 수 있어 신선한 충격을 갖게 됐지요』

일반 신자 참여도 높아

김 주교는 특히 매일 아침 똑같은 장소에서 세계 교회의 권위 있는 인물을 초청, 미사를 집전하게 하고 깊이 있는 강론을 듣도록 배려한 점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또 시내 각 성당에서는 언어권별 세미나가 열리고 일반 신자들의 참여도가 높은 점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충실하게 이루어진 대회 준비를 엿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름다운 종교 문화유산

『성체대회는 성체성사의 참뜻을 깨닫고 바로 그 신비를 생활 속에서 살도록 하는 데에 그 근본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생활 속의 신앙을 실천하고 있는 폴란드 교회의 뿌리 깊은 신앙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할 것입니다.』

폴란드를 처음 방문했다는 김 주교를 브로츠와프 시민들의 여유 있는 모습과 아름다운 종교 문화유산들에 대해서도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95% 이상이 가톨릭 신자

『비록 95% 이상이 가톨릭 신자라고는 하지만 성당 하나를 지어도 주위 경관과 아름다운 조화를 생각하는 미적인 감각과 수십 개의 성당을 비롯한 풍요한 교회 유산들은 매력적이지요. 다만 아직도 수리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곳이 있어 조금 아쉽기는 합니다』

성체거동 인상적

김옥균 주교가 가장 인상 깊게 본 행사 중 하나는 이곳의 전통적인 종교 행사인 성체거동이라고 한다.

『수만 명의 브로츠와프 시민들과 순례자들이 시민회관(Hala Ludowa)에서 주교좌 성당인 세례자 요한 성당까지 두 시간이 넘는 장정을 엄숙한 분위기에서 걷는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한국 대표 준비 부족

한국 대표단의 활동과 관련해서 김 주교는 24시간 성체조배와 충실한 미사 참석 등을 치하하면서도 현지 사정에 대한 정확한 정보 미흡으로 인한 유연하지 못한 운영, 현지 준비위원회의 미숙한 준비로 인한 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쉬운 점으로 지적했다.

박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