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신 순교혈사] 45 동정부부 조숙(베드로)과 권 데레사

차기진·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
입력일 2012-02-09 수정일 2012-02-09 발행일 1997-04-13 제 2048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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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긍과 선행으로 교회 일에 앞장
1801년의 신유박해가 종결된 후 1815년의 을해박해 때까지 공식적인 박해는 잠시 멈춰진 듯하였다. 그러나 박해 끝에 반포된 천주교 배척의 윤음은 사사로운 박해까지 인정해 주는 법령과 같은 것이 되었고, 이로 인해 순교자는 끊이지 않게 되었다. 다만, 아쉽게도 그들의 순교 기록은 대부분 남아 있지 않고, 1819년 5월 21일 서울에서 목이 잘려 순교한 조숙(베드로)과 권 데레사 동정부부의 전기만이 전승되어 왔다.

경기도 양근 태생인 베드로는 「명수」라고도 불렸다. 신유박해 이전에 신앙을 받아들인 그의 부모들은 박해가 일어나자 강원도로 피신해 가서 살았는데, 베드로는 성장하면서 점차 출중한 재능과 착한 성품으로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외교인들 틈에 끼어 살면서 수계생활을 등한시하게 되었고, 어렸을 때 겪은 박해의 두려움 때문에 마침내 교회를 멀리 하고 말았다. 그가 다시 진리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순전히 아내의 권면 때문이었다.

베드로의 아내 권 데레사는 양근 출신의 유명한 교우였던 권이신(프란치스코 사베리오)의 딸로 어려서부터 훌륭한 하느님의 종으로 자라났다. 2살 때 모친을 잃은 데다가 1791년의 신해박해 때 부친마저 유배를 가다가 사망하였지만, 그들 4남매는 언제나 가난을 애덕으로 극복하였고, 박해의 두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하였다. 또 데레사는 성장하면서 부친이 순교하지 못한 이유가 너무나 깊은 효심 때문이라는 사실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러면서 부친이 이루지 못한 순교의 다짐을 굳혀 나갔다.

데레사의 다짐은 또 하나 있었다. 바로 동정을 지키는 일이었다. 이에 대한 결심은 그녀가 정결을 아주 중시하던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만나 성사를 받은 후에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는 처녀로 살면서 동정을 지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에 데레사는 혼인을 하되 동정부부로 살겠다고 다짐한 뒤 친척들의 권유를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이렇게 하여 베드로와 데레사는 부부로 맺어지게 되었다. 물론 베드로는 당시까지도 냉담 상태에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인한 첫날 밤 아내가 자신의 결심을 적은 글을 건네주자마자 일찍이 동정을 결심한 사람처럼 아내의 의견을 들어 주었다.

이후부터 두 부부는 남매처럼 지내기로 약속하였다. 또 베드로의 착한 심성은 점차 교리를 실천하는 데로 기울어져만 갔다. 그러다가 박해가 잠잠해지자 그들 부부는 서울로 이주하여 애긍시사를 생활의 지표로 삼고 완덕과 묵상, 통화의 삶을 살아나갔는데, 그들 부부의 권고는 언제나 주님의 은총 속에서 좋은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때 그의 집을 찾아온 교우들 가운데서도 황해도 출신인 고 바르바라 막달레나는 특히 온 마음을 기울여 교리를 배웠고, 그들 부부와 함께 살기를 원하였다.

이 무렵 한국 교회에서는 몇몇 교우들이 성직자 영입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이 운동의 선구자격인 정하상(바오로) 성인의 뒤에서는 베드로·데레사 부부와 바르바라 막달레나가 이 작업을 열심히 도왔다. 그러던 어느 날, 1817년 3월 말쯤에 바오로가 북경에서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던 베드로는 밀고자에 의해 포졸들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이내 베드로의 몸에서는 축일표가 발견되어 교우인 것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때 데레사와 바르바라 막달레나도 포도청 옥까지 그를 따라가 함께 갇혔다. 즉시 문초와 형벌이 그들 세 명에게 가해졌지만, 그들은 『천주는 모든 사람의 아버지이며,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므로 절대로 그분을 배반하거나 교우들을 밀고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면서 모든 고통을 감수하였다. 이에 바오로는 무사할 수 있었고, 이와 관련하여 다른 박해가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그들 세 명은 옥중에서 두 번이나 사계절을 보내야만 하였다. 그 2년 동안 그들의 마음은 결코 약해지지 않았으며, 교회의 본분을 충실히 지키는 것만을 낙으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원대로 함께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으니, 당시 베드로의 나이는 33살, 데레사의 나이는 36살, 그리고 바르바라 막달레나는 이미 환갑이 지났었다. 이후 순교자들의 시체는 교우들에 의해 한 달 만에 거두어졌는데, 데레사의 뼈만 남은 머리채를 넣어둔 바구니를 열 때마다 향기가 방안을 진동시켰다고 전한다.

차기진·한국교회사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