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교회 소공동체 20년] (3) 소공동체의 이해 ②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2-01-18 수정일 2012-01-18 발행일 2012-01-22 제 2780호 11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진정한 기초
성숙한 신앙 교육 위해 교도권에 의해 추진
삶 속에 뿌리내리는 참된 공동체 양성 목표
● 지역 교회별 소공동체

■ 아프리카

아프리카 가톨릭교회의 소공동체 모습은 지역별로 형성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으며 비교적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발한 작업이 이뤄졌다. 첫 소공동체 모습은 1960년대 자이레에서 찾을 수 있다. 이어서 1966년에는 탄자니아에서, 또 1971년에는 잠비아에서 시도된 것으로 알려진다.

아래로부터 신자들에 의해 시작된 남미의 경우와 달리 아프리카에서의 소공동체 운동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가치와 기본 소명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지 못한 신자들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교육하기 위한 것이 일차적 목표였고, 그런 면에서 교도권에 의해 소공동체 육성이 추진됐다. 사목 지역은 넓고 성직자들은 부족했던 지역적 상황이 그 배경의 뿌리라 볼 수 있다.

초기 선교사들은 지역 어려움을 해소하고자 농촌 본당에 많은 공소를 세워 소성당이나 선교지로서의 기능을 담당토록 했다. 그러나 신자들의 사목적 욕구를 채우기에는 무리가 따랐고 능력있는 평신도들이 있다 해도 신자 양성이나 지역교회 활동 참여를 이끌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도 가톨릭 신자들은 다른 종파나 프로테스탄트 교회로 계속해서 옮겨가는 상황이었다.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메리놀회 사제들은 이 같은 현상을 문화인류학자 마리 프랑스 페리제(Marie-France Perrin Jassy)에게 연구 의뢰했고, 페리제는 탄자니아 북 마라(North Mara) 지역을 조사, 1973년 그 결과를 발표했다.

“가톨릭 신자들은 대부분의 경우 수동적인 역할만을 담당하며 여러 가지 이유로 교회의 본질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책임을 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아프리카 독립교회들은 보통 규모가 작고 마을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공동체 의식이 강하다. 그 안에서는 소수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지도력을 발휘하며 사도직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여기에서 독립교회는 선교 교회나 토착 교회 안에서 외국인의 지배를 벗어나 현대적이고 토착화된 방법으로 복음을 수행하려는 동기에서 발생한 교회 운동을 말한다.

외국인의 지배를 벗어나 현대적이고 토착화된 방법으로 복음을 수행하려는 동기에서 발생한 독립교회에 대한 연구결과에 주목한 아프리카 주교회의는 아프리카교회 발전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소공동체를 강조했다. 사진은 잠비아 무풀리라에 있는 테레사본당의 미사 입당 장면. 이들은 아프리카 전통춤을 추며 부족어인 벰바어로 성가를 부른다.
1973년 동아프리카 주교회의는 이 연구 결과에 주목, 이미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공동체를 위한 노력을 수용하고 소공동체를 양성키로 결정했다.

1974년 제3차 세계 주교대의원회의에서 ‘강생의 신학’을 전개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한 주교회의는 ‘소공동체가 가정 다음으로 모든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진정한 기초가 될 것’임을 강조하고 ‘이 소공동체들은 교회 공동체와 각 신자들의 생활 중심으로서 삶의 자리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했다. 소공동체들이 교회의 지역적 육화로 간주된 것이다.

이같이 아프리카 주교단은 소공동체 설립에 사목적 우선성을 부여하는 입장을 천명했다. 또 소공동체 건설은 아프리카 민족의 생활 기초가 되는 진정한 인간적 가치들을 수호하는 최상의 길로 묘사됐다.

1976년 개최된 동아프리카 주교회의에서는 소공동체 건설에 사목적 우선 순위를 둘 것을 거듭 강조했고, 1979년 동아프리카 주교회의는 아프리카교회 발전에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써 소공동체를 강조했다. 이 회의에서는 소공동체에 대한 많은 정보와 소공동체 확립을 위한 현실적인 지침이 제시됐다. 이때 남아프리카 룸코(Lumko)연구소는 실제적이고 상세한 체험과 정보를 제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소공동체 건설에 주력한 동아프리카 주교회의 영향을 받은 남아프리카 주교회의도 1976년 개최된 회의를 통해 소공동체 장려를 승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현대의 복음선교」를 인용, 지역 내 소공동체 사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제안하는 등 소공동체의 가치를 인정했다.

이미 남아프리카 스와질란드 지역과 모잠비크 지역은 독립한 이래 계속해서 공동체들을 세워왔고 특히 짐바브웨 무타레교구에서는 공동체 조직에 상당한 노력이 기울여지던 터였다.

주교들은 또 이 자리에서 소공동체 형성과 성장에 있어 평신도들에게서 비롯될 수 있는 주도권 문제를 우려하면서 소공동체들의 균형있는 발전을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지도력과 성직자들의 소공동체에 대한 관심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이후 남아프리카 주교회의는 1989년 총회에서 “우리의 계획은 교회가 참된 공동체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 서로가 그리스도의 형제자매임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의 첫 번째 사목적 계획은 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이다. 본당에서 공동체를 건설하는 가장 강한 형태는 ‘작은 신앙 공동체 건설’”이라고 밝힘으로써 다시 한 번 소공동체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서아프리카의 경우 시에라리온에서 기초 교회 공동체 건설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비교적 활발한 편이다. 특히 케네마에 있는 사목센터는 공동체 건설을 촉진하는 일에 주력해 왔으며, 이 센터에서는 시에라리온을 비롯한 서아프리카 국가들은 물론 아프리카 전역과 기타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수회를 열고 있다.

아프리카 민족 특유의 흥겨움은 공동체에 활기를 불러 일으키며 서로간의 친교를 다지도록 돕는다. 사진은 2009년 8월 잠비아 솔웨지(Solwezi)교구 주교좌 성다니엘성당에서 거행된 사제서품식에서 신자들과 한데 어우러져 전통춤을 추고 있는 수도자의 모습.

■ 룸코연구소

‘말씀’ 중심의 소공동체 건설 주력

한국교회 소공동체 도입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로 지목되는 룸코연구소는 본래 남아프리카 선교를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1952년 4월 남아프리카 주교 총회 결정을 통해 인류학 선교학 등을 연구하는 연구소로 설립됐으나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에서 연구소 승인을 취소함으로써 1962년 연구소 책임을 맡았던 퀸즈교구 로젠탈 주교가 교구 차원의 연구소 ‘룸코 선교연구소’(Lumko missiological Institute)로 새롭게 출범시켰다.

‘룸코’ 명칭은 한 가톨릭 신자 가족 이름에서 연유됐다. 룸코라는 사람이 로젠탈 주교에게 개인 소유 땅을 기증했고, 그곳에 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룸코연구소라는 명칭이 붙었다.

1972년 남아프리카 주교회의로 소관된 연구소는 이후 주교회의 산하 사목연구소가 됐으며 이들이 계발한 30여 종 이상의 사목 모델과 프로그램들은 아프리카 지역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비롯 아시아 등 50여 개 나라에서 활용되고 있다.

연구소의 사목 비전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을 실현하고 가톨릭 교회의 복음화 과업을 촉진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공의회의 ‘하느님 백성’에 의거 성직자·수도자·평신도의 본질적인 동등성을 회복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예언직·사제직·왕직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함께 공의회에서 새롭게 발견한 ‘친교의 교회’를 실현하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원천으로 하는 공동체를 활성화하는 것이다. 더불어 사회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하는 참된 지역 교회 건설도 지향점으로 삼고있다.

즉 교회의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평신도들이 교회의 사명 수행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말씀’이 중심이 된 소공동체(small christian community) 건설이 주된 활동 목표라 할 수 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