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군선교 현장탐방] 육군훈련소 김대건본당 세례식 탐방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2-01-10 수정일 2012-01-10 발행일 2012-01-15 제 2779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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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뿌려진 복음의 씨앗 언젠가는 결실 맺어
연간 1만 2000∼1만 4000명 세례자 배출
제대 후 방치 않되도록 지역교구와 협조 필요
논산 육군훈련소는 대한민국 남자의 절반이 거쳐 가는 곳이다. 육군훈련소를 ‘선교의 황금어장’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신앙을 모르거나 멀리한 채 입대한 젊은이들이 언제든지 ‘선교의 그물’에 걸려 신앙을 새로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새해 들어 첫 토요일이었던 7일은 육군훈련소 김대건본당(주임 김성현 신부) 세례식이 있는 날이었다.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쩌렁쩌렁 울리는 구호 소리와 함께 신형 베레모를 쓰고 방한용 귀마개를 한 훈련병들이 성당으로 밀려들기 시작했다.

세례식 전 ‘집중교리’에 앞서 최양업 교육관 내 본당 사무실에서는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세례 인원을 파악하고 관련 서류를 처리하는 박춘일 수녀와 군종병, 본당 사무실 직원의 움직임은 자로 잰 듯했다. 김성현 신부는 김대건본당에서만 월 1000~1200명, 연 1만2000~1만4000명의 세례자를 배출한다고 설명했다. 육군의 55%, 전군의 40%에 해당하는 수치다. 7일 세례식에서는 360여 명의 새로운 하느님 자녀가 탄생했다.

김 신부는 “군종교구는 ‘독립된 교구’가 아니다”고 말했다. 입대 전, 군복무 중, 전역 후 세 시기가 젊은이들의 신앙생활에서 서로 별개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김 신부는 지역 교구에서 입대를 앞둔 입영대상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고 자대 본당과의 연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군복무 중 영세한 군인들이 제대 후 사회에서 방치되지 않도록 지역 교구와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한 통 한 통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자필편지들을 꺼내 보였다. 김대건본당에서 세례를 받은 후 자대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는 장병들이 보낸 편지들이다. 지난해 12월 25일 날짜가 적힌 편지에는 훈련소 첫 주에는 개신교회에 갔다가 둘째 주부터 성당에 나와 세례를 받게 됐는데 자대에 가서 불침번 설 때 묵주기도 20단을 바치며, 행군 중에는 성가를 부르기도 했고 훈련소를 떠났지만 주님을 떠나지는 않았다는 내용이 진솔하게 적혀 있었다. 군종교구에서 너무 단기간에 세례를 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한 번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언젠가는 발아한다”는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의 말을 떠올렸다.

김 신부는 “육군훈련소는 종교 전쟁터”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공교롭게 7일 하루에도 개신교 세례식과 불교 수계식이 겹쳐 있었다. 김대건본당 바로 인근 개신교회에는 오전부터 전국 각지에서 목회자들이 타고 온 차들이 즐비했다. 김 신부는 조심스럽게 “신앙은 엄격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신교나 불교에 비해 김대건본당을 찾아오는 훈련병들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타 종단처럼 훈련병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물량공세를 펼치거나 화려하고 흥미로운 이벤트를 준비하지 않는다는 것이 김 신부의 고백이다.

‘신앙과 삶은 하나여야 한다’는 신앙관에 따라 김 신부는 ‘울지마 톤즈’, ‘미라클 메이커’ 같은 신앙 영상물과 피정 성격의 생활성가 공연 등을 통해 훈련병들을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 ‘재미 없는’ 김대건본당을 찾는 훈련병들이 기특하고 고맙다고 했다.

김 신부는 본당 사무실을 나와 성전으로 이동해 세례를 앞둔 훈련병들에게 가톨릭교회의 핵심 교리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산고의 고통’이 느껴질 만큼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4주에서 5주 동안만 훈련소에 머무는 훈련병들에게는 30분 내외의 집중교리(세례 전 교육) 시간은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김 신부는 숙련된 조교처럼 제일 먼저 합장하는 방법, 성호경 긋는 순서를 구분 동작과 연속 동작으로 나눠 시범을 보였고 이어 개신교와 천주교의 차이점, 십자가와 삼위일체의 의미, 성모 마리아에 대한 올바른 공경 등에 대해 설명했다. ‘즉석 교리 퀴즈’를 맞힌 훈련병에게는 선물로 초코파이 한 상자가 주어졌다.

박춘일 수녀는 졸고 있는 훈련병들 뒤에서 어깨를 다독이며 깨우고 있었다. 집중교리가 진행되는 동안 고해실에서는 신자 훈련병들이 인근 군종교구 충경본당 박진양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보는 모습이 보였다. 사회에서 냉담했던 훈련병들이 훈련소에서 고해성사를 보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오후 4시부터 세례식이 시작됐다. 집전은 김 신부와 군종교구 성요셉(부사관학교)본당 김창중 신부, 박진양 신부, 증평본당 이정희 신부가 함께했다. 김 신부는 세례식 강론에서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될 여러분들은 남에게 피해를 안 주면 된다는 소극적 선이 아니라 힘들어 하는 동료의 군장을 대신 들어주는 적극적 선을 행하라”며 “세례를 받는다고 당장 선해지는 것은 아니니 삶을 통해 예수님을 증거하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세례명 ‘발렌티노’로 세례를 받은 김현우 훈련병(28연대)은 “입대 전부터 천주교에 호감을 갖고 있어 김대건성당에 오게 됐고 자대에 가서도 성당에 꾸준히 나가겠다”고 말했다.

김대건본당 김성현 신부가 훈련병에게 세례식을 집전하고 있다.
육군훈련소 김대건본당 세례식에서 훈련병들이 손을 합장한 채 기도하는 모습.
세례식 전 집중교리 시간에 훈련병들에게 합장 시범을 보이는 육군훈련소 김대건본당 김성현 신부.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