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취재 현장속으로] 시흥시 노인종합복지관 저소득 홀몸어르신 도시락 배달

오혜민 기자
입력일 2012-01-03 수정일 2012-01-03 발행일 2012-01-08 제 2778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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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가득 도시락으로 얼어버린 몸·마음 녹이세요”
15명 봉사자 모여 130여 개 도시락 준비
노(老) 부부 2년 째 봉사…건강·행복 되찾아
아무도 없는 집, 문득 누군가 누르는 초인종 소리마저 그리워질 때가 있다. 하지만 혹한의 인생에도 빙점(氷點)은 없다고 했던가. 외로움과 벗하며 생활하는 저소득 홀몸 어르신들의 집에도 그해 겨울, 누군가의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딩동’.

■ 지금 만나러 갑니다

지난해 12월 28일 오전 10시, 경기도 시흥시 노인종합복지관(관장 안은경)에 봉사자 15명이 모였다. 부엌에 모인 이들이 능수능란하게 준비하는 것은 반찬과 국. 저소득 홀몸 어르신들에게 배달할 소중한 음식들이다.

반찬도시락은 주3회, 국까지 담긴 도시락은 매주 수요일 1회 배달한다. 따뜻한 국물이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국이 배달되는 이날은 ‘까치’처럼 반가운 손님이다. 오늘의 도시락은 얼갈이된장무침과 오이지무침, 삼치구이, 삼계탕. 배달될 130여 개의 도시락을 식탁 위에 줄맞춰 펴놓고 음식이 되는 대로 맛깔나게 담는다. 벌써 2년여 간 지켜온 작업이라 일이 봉사자들의 몸과 손에 그대로 뱄다.

복지관이 문을 열 때부터 도시락 배달봉사를 해온 김박(비오1세·71·수원교구 연성본당)·예정희(테레사·67)씨 부부. 남편은 반찬을 도시락에 담고 아내는 국을 뜬다. 어르신들의 점심시간에 맞추기 위해 고되지만 한시도 손을 쉬게 할 틈이 없다. 아내가 말한다.

“유방암 수술을 하면서 우울증도 오고 좀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하지만 덤으로 사는 인생, 보답하고 싶어 복지관에 나와 어르신들에게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를 자원하게 됐지요.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오후 12시 30분. 어느새 모든 준비가 완료됐다. 이제는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위해 떠날 시간이다. 김박?예정희씨 부부의 차에 함께 올랐다. 자신들의 사비를 들여 하는 봉사다. 도시락 배달을 가는 길, ‘누군가 배불리 먹을 때 누군가는 끼니를 걱정한다’는 공익광고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벌써 2년여째 홀몸 어르신 도시락 배달 봉사를 하고 있는 김박·예정희 부부. 추운 날씨에 양손 가득 도시락을 들고, 외로이 사는 어르신들의 집을 방문해 사랑을 전하고 있다.

■ 이 겨울, 이웃과의 만남

101호 할머니는 귀가 어둡다. 203호 어르신 부부는 발걸음이 느리다. 801호 할아버지는 이 시간에 자주 자리를 비운다. 점심시간을 맞추기 위해 잰걸음을 하는 부부의 머릿속에는 오늘 만날 이웃들의 정보가 가득이다.

초인종을 눌러도 기척이 없자 문을 두드리며 “계세요”를 연발한다. 귀가 어두운 할머니는 부부의 소리를 듣고 문을 열어주었다. “안녕하세요”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짧은 인사였지만 늘 마주하는 사이라 어색함은 없다.

결혼 42년차 부부는 요즘 다시 신혼을 맞았다. 바쁜 남편과 늘 그를 기다렸던 아내는 인생의 우여곡절을 굽이굽이 돌아 ‘이웃과 나누는 사랑’ 앞에서 다시 만났다. 남편은 일 년 전 세례를 받아 외짝교우였던 아내의 얼굴에 더 큰 웃음을 가져다줬다. 신앙과 나눔 안에서 부부는 지금 새로운 사랑을 키우고 있다.

최순회(보나·74) 할머니의 집에 도착했다.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가라며 붙잡는 할머니의 손이 따뜻하다.

“얼마 전 암수술을 받아서 매운 것을 잘 못 먹어요. 그런데 이런 삼계탕 같은 국물이 오면 참 좋아. 수급자 돈으로는 못 먹고 살아서 식당에서 재활용 음식을 거두는 일을 했었는데 이제는 아파서 그것도 못해요.”

할머니의 이야기는 사연에서 고마움으로 이어진다. 더우나 추우나 도시락을 배달하는 부부를 보면 고맙고, 안타깝고, 죄송하고, 대접하고 싶은 온갖 마음이 교차한다고 했다.

“이런 사람을 우예 이렇게 대접해준답니까. 봉사자들을 위해서 다른 것을 해줄 것이 없으니 기도를 합니다. 제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전기세를 아끼기 위해 불을 켜지 않은 어두운 방 안에서 할머니의 은빛 묵주반지가 반짝 빛났다.

시흥시 노인종합복지관에서 봉사자들이 130여 개의 도시락통에 반찬을 담고 있다. 보온병에는 따뜻한 국이 담겼다. 완성된 도시락은 빨간 봉투에 차곡차곡 포장됐다.

■ 삼계탕 하나로 새해가 왔다

부부의 나이는 수혜자 어르신들만큼 적지 않은 나이다. 부부의 나이는 또래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잘 이해하지만, 부부의 젊은 마음은 어려운 이웃 어르신들을 위해 일하게 만든다. ‘딩동’. 초인종을 눌렀는데 대답이 없다. 인기척이 없다고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다. 또다시 문을 두드린다.

“답이 없으시면 겁이 나지요. 두 번, 세 번 대답하실 때까지 문을 두드리고 그래도 없으신 것 같으면 문 앞에 도시락을 걸어놓아요. 얼마 전에는 문을 잘못 닫아 못 여는 어르신을 위해 열쇠수리공을 불러 문을 열어드린 적도 있었다니까요.”

이어 찾아간 곳은 오정숙(모니카·75) 할머니의 집.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와 함께 냄비에 가져간 삼계탕을 붓고 반찬을 전달한다. 이곳에 마실 왔던 다른 할머니도 복지관 도시락배달사업의 수혜자다. 교통사고로 아픈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할머니의 종교는 개신교다.

국을 전달받기 위해 올라온 할머니의 식탁 위에 ‘가톨릭 기도서’가 놓여있다. 아들이 위로가 된다고 밖에서 가져온 책이다. 할머니가 부부의 손을 맞잡았다.

“삼계탕으로 보양을 시켜주시네. 아이고,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할머니가 꺼낸 냄비가 금세 삼계탕으로 가득 찼다. 가득한 냄비를 보며 할머니의 마음에도, 부부의 마음에도, 기자의 마음에도 새해가 왔다.

김박씨가 봉사자와 함께 도시락배달을 갈 어르신들의 집주소를 확인하고 있다.
김박씨가 오늘 배달할 도시락들을 자신의 차에 싣고 있다. 일흔을 넘긴 나이임에도 봉사를 하는 그에게서 지친 기색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오혜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