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한국교회 소공동체 20년] (1) 총론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1-12-27 수정일 2011-12-27 발행일 2012-01-01 제 2777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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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 유대 강화한 공동체가 미래교회 이끈다
한국교회는 1992년부터 ‘2000년대 복음화’라는 정기적 목표 아래 복음나누기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파급시켰다.
‘삼천년기 한국교회의 비전’, ‘교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지목되고 있는 소공동체가 한국교회에 도입된 지 20주년을 맞았다.

1992년 서울대교구의 ‘2000년대 복음화’ 선포로 본격화된 소공동체는 20년이 흐른 2012년 현재 주교회의 산하에 전담위원회를 두고 매년 전국 소공동체모임을 가질 만큼 질적?양적으로 주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또 여전히 한국교회 안에 새로운 사목 대안으로서의 중요 화두다. 그만큼 그에 대한 논의도 계속되고 있다.

본지는 차제에 한국교회 ‘소공동체’ 운동의 현장을 중심으로 20년 역사 전반을 점검하는 신년기획 시리즈, ‘한국교회 소공동체 20년’을 마련한다.

특히 이번 기획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주년을 맞고 있는 시점에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지향했던 현실 접목의 바람직한 방법으로 지칭되는 ‘소공동체’를 새로운 복음화의 큰 틀 안에서 조명해보는 기회가 될 예정이다.

이번 총론에서는 소공동체의 역사적 배경과 한국교회의 소공동체 여정을 다룬다.

■ 소공동체의 씨앗

‘소공동체’라는 용어는 교황청에서 규정하는 ‘기초 교회 공동체’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남미 주교회의에서 사용한 명칭을 교황청이 받아들이면서 거기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하려 했던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밝힌다.

교회 안에 ‘기초공동체’ 논의를 불러온 중남미 기초공동체의 출발은 1956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구역 바라도 피라이에서 움튼 공동체적 복음화 운동과 평신도, 그리고 교리교사들의 노력이 시작이다.

당시 아그넬로 로씨 주교는 사목자의 손이 미치지 않는 지역에서 평신도 교육자들을 통해 복음화 운동을 벌였는데 이때 시작된 기초공동체는 전국 곳곳으로 번져갔고 브라질 지역을 넘어 중남미교회 전체에 수십만 개의 조직으로 퍼졌다.

기초공동체가 발아한 후 10년이 지난 1968년, 이미 기초공동체의 중요성은 남미 주교총회에서 다뤄질 정도였다. 콜롬비아 메델린에서 열렸던 라틴아메리카 주교총회에서 주교들은 기초공동체를 ‘교회의 핵’으로 정의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후 기초공동체는 교황청의 공식적인 인정을 거쳐 바티칸공의회가 제시한 교회 쇄신의 산물로서 현대교회 복음화의 유효한 수단으로 권장되는 모습을 갖게 됐다.

교황 바오로 6세의 사도적 권고 ‘현대의 복음선교’는 제2차 라틴아메리카 주교총회가 발표한 메델린문헌에서 기초공동체를 인정한 이래, 교황청에서 나온 최초의 공식적인 가르침으로 알려진다.

교황 바오로 6세는 ‘현대의 복음선교’ 58항을 통해 “기초공동체는 교회적이고 인간적인 유대를 더 강화하고자 하는 데에서 발생한 새로운 교회 형태”라고 밝히면서 “복음 선교의 못자리가 되고, 보다 큰 공동체, 특히 지역교회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회칙 ‘교회의 선교사명’ 51항에서 “기초공동체가 그리스도 교육과 선교 추진의 좋은 중심처로 인정되고 있다”고 가르쳤다.

■ 한국 소공동체의 시작

1989년 세계성체대회 이후 서울대교구는 1991년부터 ‘복음화’라는 사목목표를 설정하고 ‘소공동체의 활성화’라는 방법을 제시했다.

1992년부터 2000년까지 9개년을 ‘2000년대 복음화’라는 장기적 목표 아래 두는 한편 소공동체 활성화 방안으로 아프리카 룸코(Lumko)에서 개발된 복음나누기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파급시켰다.

당시 한국교회 상황은 급속도로 성장한 외형적 교세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그로 인한 본당 비대화와 교회의 내적 공동화를 초래하는 등 “복음 정신에 입각한 사귐과 섬김의 공동체 모습에서는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는 자체적 진단이 나오던 상황이었다.

서울대교구는 1991년 사목교서를 통해 “신앙과 삶의 유리된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도록 우리 자신이 참으로 복음화 되지 못하고 따라서 물질주의로 인하여 갈수록 비인간화되고 속화되어가는 이 사회를 복음화하는 능력도 미비함을 겸손되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히면서 “오늘의 한국교회는 성찰하면 할수록 무사안일하게 현실에 안주할 수 없는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천명했다.

이러한 성찰 안에서 새로운 복음화의 방안으로 소공동체를 선택한 서울대교구는 기존의 반모임과 구역모임에 복음나누기 프로그램을 접목시켜 의욕적으로 소공동체를 확산시켰고 이는 전국으로 파급돼 나갔다.

2001년 제1차 소공동체 전국모임이 개최되면서 소공동체 운동은 보다 한국 교회 안에 그 자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2000년 AsIPA 2차 총회에 참가한 서울 마산 사목국이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목자들이 함께 모이는 자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준비 추진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교구 대표자들은 “소공동체가 복음화 신앙쇄신 등 한국교회의 당면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라는 공감대를 이뤄냈고 전국 차원의 지속적 모임 결의와 함께 주교회의에 전담 위원회 설립을 요청한다.

이에 따라 주교회의는 그해 추계총회를 통해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산하에 ‘소공동체소위원회’ 설립을 결정하고 위원회는 11월 23일 공식 가동됐다. 소공동체운동이 전 교회적 차원의 공감대 구성을 명실공히 이루게 된 것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2003년 2월 13일에는 사목국장 중심의 자발적인 전국 네트워크 ‘소공동체 사목전국협의회’가 결성됐고 협의회를 통해 2006년까지 소공동체 전국 모임이 개최됐다.

소공동체 전국모임은 2011년 모임 개최 10주년을 맞아 그간의 활동상에 대한 성찰과 함께 미래를 전망하는 자리를 가진 바 있다. 교구 벽을 넘어 교구나 본당의 소공동체 사목 실무자들이 함께 만나 사목을 나누고 교류하는 장이 됐던 이 전국 모임은 한국교회 소공동체 운동이 신자들 안에 뿌리 내리도록 하는 기반이 됐다.

소공동체 도입 20주년을 맞는 올해에는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원회 주최 ‘소공동체 세미나’ 등 한국 소공동체에 대한 점검과 발전 전망을 모색하는 자리가 활발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2011년 6월 청주 꽃동네 사랑의 연수원에서 한국교회 최초로 열린 소공동체 전국 모임. 이 모임은 소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목자들의 협의의 장으로 성장했다.
주교회의 소공동체소위가 주최해 2011년 9월 26~29일 수원 아론의 집에서 열린 소공동체 교육 10차 전국모임.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