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그리스도인에게 자선이란

이주연 기자
입력일 2011-12-07 수정일 2011-12-07 발행일 2011-12-11 제 2774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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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이들 위한 우선적 선택·사랑
신자 누구나 살아야 할 복음적 요구
주님께 받은 자비를 나눔
인격적 궁핍한 이들 역시 자선의 대상에 포함돼야
대림 제3주일은 자선주일이다. 1984년 한국 주교회의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따라 고통받는 이들에게 자선을 실천하도록 권고하기 위해 특별히 정한 날이다. 그리스도인의 특별한 자선 행위는 우리가 삶 속에서 체험한 하느님의 자비를 고통받는 이들에게 전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취지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선은 어떤 의미일까. 자선주일을 맞아 교회에서 가르치는 자선에 대한 이해들을 살펴본다.

사전적 의미에서 ‘선의를 베풂. 특히 불행, 재해 등으로 자활할 수 없는 사람을 구조함’으로 풀이되는 ‘자선’은 한편 그리스도교에서 전통적으로 회개의 중요한 형식 중 하나로 여겨져 왔으며 기도·단식과 함께 신앙생활의 주요 요소를 구성한다.

자선에 대한 관심은 구약성경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강조되고 장려되었음을 알수 있다. 구약시대의 자선 개념은 정의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강하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정의롭게 행동하시는 것처럼 그분을 믿는 이들도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의미였다.

궁핍한 사람에 대한 실천적 사랑이 이웃 사랑의 임무(신명 15, 11 이사 58,4-7)임을 밝히는가 하면, 해질 무렵 가난한 사람이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담보로 잡힌 그의 겉옷을 돌려주는 일(신명 24,13) 등의 구절이 그렇다.

또 개인적인 자선의 종교적 성격이 강조되는 모습도 보인다. 욥은 하느님을 향한 자신의 경외심이 궁핍한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쉴 곳을 베풀어 주도록 재촉한다(욥 31,16-23)고 말한다.

신약에서 ‘자선’이라는 의미의 단어는 그리스어 ‘엘레에모시네’에서 비롯됐다. 본래 ‘동정’을 의미하는 이 단어는 자비로운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됐다.

신약에서의 자선은 예수의 말씀과 행적 안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양상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던 예수의 활동 자체가 자선의 의미였으며, 또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는’(루카 4,18) 메시아로서의 사명 자체가 자선의 의미를 복음적 차원으로 부각시켰다.

그렇다면 현대적 의미에서 자선은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어떤 뜻을 지닐 수 있을까.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평신도교령 8항을 통해 “음식, 음료, 의복, 주택, 의료, 직업, 교육 등 참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 없고, 재난이나 질병으로 고통을 받으며 추방을 당하고 옥고를 겪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그들을 찾아내어 열성적으로 보살피고 위로하며 도와서 고통을 덜어주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조항이 시사하는 바처럼 현대에서 교도권은 교황 회칙이나 여러 문헌들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선택’ 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사랑’이라는 표현을 통해 가난은 물질적으로 궁핍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궁핍한 이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사회적 관심」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또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이라는 말 의미를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의 실천에서 그 편을 먼저 선택하는 특별한 형태의 우선을 말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바 있다.

그리고 그 일차적 대상은 “굶주리고 곤궁하고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및 더 나은 미래의 희망이 없는 사람들”로 제시했다.

또한 회칙 「백주년」에서는 오늘의 사회에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이고 정신적 빈곤이 만연해 있다”고 지적하고 “가난한 이에 대한 교회 관심이 교회로 하여금 기술적이고 경제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빈곤이 지속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세계로 향하도록 촉구”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현대의 자선은 그리스도인에게 더욱더 전인적인 투신을 요구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장을 밝히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자비로운 마음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고통을 주님의 고통처럼 받아들이고 주님께 해드리듯 그들의 고통을 어루만져 주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주님께서는 고통받는 이들을 자신과 동일시 하셨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베푼 것이 바로 자신에게 베푼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하나로 귀결되며 이 사랑은 가난한 이들과 함께 나눔으로써 실천된다. 그렇게 자선은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할 복음적 요구라 할 수 있다.

대전교구 법동본당 황용연 주임신부와 신자들이 쌀을 나르며 환하게 웃고 있다. 전 신자들이 금식해 모은 쌀을 관할지역 240여 가정과 함께 나눈 법동본당은 평소 이웃사랑 실천에 적극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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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