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예수님과 사도들과의 동행’ - 제4차 정통 크루즈 성지순례 (4·끝) 그리스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1-11-30 수정일 2011-11-30 발행일 2011-12-04 제 2773호 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교회 공동체 세우며 열정 불사른 바오로 사도의 전도여행지 순례
1박 2일 동안 지중해 항해

예수님과 동행하며 골고타 언덕까지 올랐던 순례객들은 예루살렘 순례를 마치고 그리스 아테네의 피레우스(Pireus) 항을 향해 1박2일 동안 지중해를 항해했다. 사도 바오로가 전도여행을 하며 가로질렀던 지중해는 간간이 작은 섬이 눈에 들어올 뿐 사방팔방 온통 바다뿐이었고 파도가 잔잔한데다 물은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맑아 평화롭고 고즈넉했다.

“내가 달릴 길을 다 달려 주 예수님께 받은 직무 곧 하느님 은총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 마칠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야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사도 20,24)라고 말한 사도 바오로가 선교지로 향하던 모습을 상상했다. 사도 바오로가 탔던 배는 63빌딩보다 더 큰 규모인 ‘비전호’에 비하면 매우 작은 목선이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27장에 기록된 역풍과 태풍에 아비규환으로 곤두박질친 배 안에서도 의연함을 잃지 않았던 사도 바오로를 비전호 난간에 기대서서 머릿속에 그려보기도 했다.

동이 막 트기 시작한 오전 6시 무렵 순례객들은 피레우스 항에 도착했다. 비전호에서 내려다 본 ‘고대문명의 발상지’ 아테네는 여느 항구도시와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았다. 오전 8시경 배에서 내려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그리스 땅을 밟자 이채로운 광경이 버스로 이동하던 순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전영화나 세계사 책에서 봤던 청동 투구를 쓴 그리스 사람이 기념촬영을 해 주겠다고 서 있었다.

피레우스항에서 코린토까지는 버스로 1시간 거리. 나나무스쿠리의 노래가 연상되는 그리스 토속 음악을 들으며 버스 창 밖으로 바라본 아테네 거리에는 낙서가 지저분한 벽과 파업으로 인한 쓰레기 더미가 가득했다. 그러나 그리스를 기준으로 한 근동(Near East), 중동(Middle East), 극동(Far East)이란 말이 지금도 쓰이고 있는 것은 그리스가 오랫 동안 세계 정신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으니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를 선교지로 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에게해를 옆에 두고 달리던 버스는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섬으로 만든 코린토 운하를 건너 캥크레애에서 멈췄다. 안내 표지판에는 그리스어와 영어(Ancient harbor of Cenchreae)로 ‘고대 캥크레애항’이라 적혀 있었다. 사도 바오로 시대에는 항구였지만 해면이 높아져 물로 덮이면서 지금은 항구의 기능을 잃고 해수욕장이 돼 버렸다.

사도 바오로가 교회를 세웠던 캥크레애 고대 항구를 알리는 표지판.

캥크레애를 그리스 선교 거점으로

사도행전 18장 19절에는 ‘바오로는 서원한 일이 있었으므로, (시리아로) 떠나기 전에 캥크레애에서 머리를 깎았다’고 기록돼 있고 로마서 16장 1절에는 ‘우리의 자매이며 캥크레애 교회의 일꾼이기도 한 포이베를 여러분에게 추천합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사도 바오로가 캥크레애를 그리스 선교의 거점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사도 바오로가 세운 교회는 현재 물속에 잠겨 있으며 캥크레애항에서 멀리 바라보면 지대가 높은 곳에 성벽과 유사한 고대 창고의 일부가 보인다.

캥크레애항에서 코린토 고대 유적지까지는 20분 정도 거리로 가까웠다. 신약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둘째 서간이 씌어진 코린토는 사도 바오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며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만큼 향락과 타락이 만연한 도시였다. 순례객 미사에 앞서 관람한 고대 코린토 박물관에는 아름답고 찬란한 조각상들 사이로 남성 성기 모양의 조각품이 있어 의문이 일었다. 고대 그리스에는 질병에서 치유된 신체 부위를 조각해 신에게 바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성병이 만연했다는 뜻이다. ‘코린토인 같은(Corinthian)’이라는 말은 지금도 방탕과 간음을 은유하는 말로 쓰인다.

코린토 고대 유적지의 한 바위를 제대 삼아 순례객 미사를 드리며 코린토에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고 공동체의 분열을 걱정했던(1코린 11,18) 사도 바오로의 열정적인 발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올 것 같았다.

코린토 고대 유적지를 둘러보면 대형 공중 목욕탕 등 화려했던 코린토의 옛 모습과 함께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항에서 내려 걸어 들어오던 계단과 유다인들이 들고 일어나 사도 바오로의 선교를 막고 갈리오 총독에게 끌고 가 고발했던 재판정(사도 18,12-17)도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 아쉽게도 사도 바오로가 끌려갔던 재판정은 보수 중이어서 가까이에서 볼 수 없었다.

대형 공중 목욕탕 등 화려했던 고대 코린토 유적의 모습. 사도 바오로는 이곳에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고 공동체의 분열을 걱정했다.
사도 바오로의 선교 현장인 코린토 고대 유적지에서 봉헌된 순례객 미사 장면. 이기수 신부(가톨릭신문사 주간, 오른쪽)와 이원희 신부(의정부교구) 공동집전으로 봉헌됐다.
이기수 신부(가톨릭신문사 주간, 왼쪽)와 이원희 신부(의정부교구) 공동집전으로 봉헌됐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을 오르다

코린토에 이어 순례한 아테네에서는 사도 바오로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까지도 예배드릴 만큼 다신교와 우상숭배에 물든 아테네 시민들에게 사람의 손으로 만든 신전에는 하느님이 살지 않으시며 인간의 예술과 상상으로 빚어 만든 금상이나 은상이나 석상을 신과 같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고 역사적인 설교를 했던 아레오파고스(사도 17,19-29)를 찾았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은 2001년 5월 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그리스 정교회 크리스토 둘로스 대주교의 부축을 받으며 방문해 기도를 올린 곳으로 1054년 분열 이후 1000년 만에 이뤄진 동서 교회의 화해를 상징하는 곳이기도 하다. 아레오파고스 언덕을 올라가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1호인 파르테논 신전이 한창 보수공사 중이다. 사도 바오로가 우상숭배라고 비판했던 아테네의 숱했던 신전 중 최대 규모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파르테논 신전 안에는 지금은 사라졌지만 높이 12m에 금칠이 된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가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몇몇 사람이 바오로 편에 가담하여 믿게 되었다’(사도 17,34)고 하니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가 더욱 크게 느껴졌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 사도 바오로는 아테네 시민의 우상숭배를 비판하며 선교했다.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