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예수님과 사도들과의 동행’ - 제4차 정통 크루즈 성지순례 (3) 이스라엘 ②

박지순 기자
입력일 2011-11-23 수정일 2011-11-23 발행일 2011-11-27 제 2772호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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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생과 수난·죽음·부활을 체험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약 8km 떨어져 있다. 지척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 죽음 그리고 부활이 이뤄졌다. 목자들의 들판 성당에서 예수님 탄생을 기쁨과 환희로 경배한 순례객들은 다시 버스에 몸을 싣고 예루살렘으로 이동했다. 짧은 이동 시간 동안 예수님이 구원 역사를 이룬 현장이면서 성경의 핵심 사건들이 일어난 장소이기도 한 성지에 다가가는 순례객들의 긴장과 흥분으로 버스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이스라엘의 임금님은 복되시어라.”(요한 12,13) 예수님이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그분을 맞으러 나간 군중들이 외치는 소리가 어디에서 울려 퍼졌을까 상상하며 바깥 풍경을 훑어 봤다.

예루살렘에 진입하기 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접경지역을 통과할 때 총을 든 병사가 버스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와 순례객들을 한 번 둘러보고 내려갔다.

예수님의 고통이 전해진 ‘고통의 성당’

예루살렘에 들어서 처음 찾은 곳은 예수님이 붙잡히시기 전 고통 속에 기도하면서 제자들에게 “깨어 기도하라”(마태 26,41)고 이르셨던 자리에 세워진 ‘고통의 성당’이었다. 성당 건축 기금을 세계 여러 나라가 댔다고 해서 ‘만국 성당’이라고도 불린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지금도 올리브나무가 역사를 증언하듯 여러 그루가 보호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 유다가 다가와 입을 맞춘 후 붙잡혀 가시던 예수님의 행적을 목격한 나무들이다.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가 기념식수한, 열매 달린 올리브나무도 보인다. 올리브나무의 수령은 800년 정도라고 하지만 뿌리에서 같은 유전자를 지닌 새로운 가지가 계속 뻗어 나오기 때문에 2000년 전 예수님의 피땀 어린 기도를 봤던 그 나무가 지금도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성당 한쪽에는 자연암석을 깎아 조각한 예수님의 간구하는 기도 모습이 보는 이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고통의 성당 내부는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이 전해진 듯 어둡고 무겁다.

총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온 문’

1967년 ‘6일 전쟁’의 총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시온 문(Zion Gate)’을 지나 예수님이 성체성사를 세우신 ‘최후의 만찬 성당’에 도착했다. 주변에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성화나 영화에서 보던 최후의 만찬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지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나눠주던 신앙인의 본향과도 같은 곳이다.

‘성모영면 성당’은 최후의 만찬 성당과 바로 이웃해 있었다. 터키 에페소에 사도 요한이 성모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성모님의 집’이 있는데 예루살렘 성모영면 성당도 전승에 의해 성모님이 최후까지 살던 곳으로 전해진다. 이곳에서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영면에 든 성모님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예수님이 어린 아이처럼 작게 묘사된 성모님을 안고 있는 벽화는 순례객의 눈길을 한곳에 모은다. 순례객들은 영면해 있는 성모님을 옆에 두고 메모지에 정성스럽게 소망을 적어 전구를 청했다.

주님의 기도와 성당 구조가 절묘한 조화 이뤄

예수살렘 둘째 날 순례는 오전 7시부터 일찌감치 시작됐다. ‘비전호’에서 내린 순례객들은 아스돗 항구에서 버스에 올라 타 1시간 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쳐 주셨고(마태 6,9-13) 전 세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바치는 주님의 기도를 기념하는 ‘주님의 기도 성당’을 순례했다. 성당 외부 벽은 온통 세계 각 나라의 언어로 적힌 주님의 기도로 장식돼 있다. 탁 트인 성당 마당에서 바라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 있는 주님의 기도와 고색창연한 성당 구조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점자로 기록된 주님의 기도도 있어 관심을 끌지만 한글로 적힌 주님의 기도 앞에 모든 순례객들의 발길이 멈춰 선다. 부산교구에서 기증한 것으로 지금의 기도 문구와는 약간 차이가 있어 보인다. 1968년판 가톨릭기도서에 실린 기도문이다.

주님의 기도 성당에 이어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내려다보며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마태 23, 37~38) 한탄했다고 하여 ‘예수님 눈물 성당’으로 이름 붙여진 곳으로 이동했다. 성당은 매우 작았지만 높은 위치에 지어져 성당 안에서 창으로 바라보면 예루살렘이 한눈에 들어온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하느님께 바치려 했던 곳이 불신앙의 사람들로 가득해지자 예수님이 눈물지으며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했다.

다음 순례지인 ‘베드로 참회 성당’은 그러기에 더욱 묵상이 됐던 곳이다. 이 성당의 십자가 위에는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의 격심한 통회를 불러온 닭이 상징적으로 올려져 있다.

성당 마당에서 바라본 ‘주님의 기도 성당’ 전경. 고색창연한 성당과 각국의 언어로 적힌 주님의 기도가 묘한 조화를 이룬다.
‘주님의 기도 성당’ 외부 벽에 우리말 주님의 기도가 보인다.
‘베드로 참회 성당’ 십자가 위에는 상징적으로 닭이 올려져 있다.

베드로 참회 성당 순례

베드로 참회 성당 지하에는 겟세마니에서 끌려 온 예수님이 갇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하 감옥이 있으며 성당 옆 돌계단은 예수님이 감옥에 끌려 올 때 걸었던 길로 현재는 성목요일 하루만 개방해 방문객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순례객은 다시 버스에 탑승해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고 채찍질과 조롱을 당하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 언덕에 올라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길을 따르기 위해 예루살렘 옛 성벽 안으로 들어가 순례의 최종 목적지를 향해 숨가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옛 성벽 안은 밖에서 보던 풍경과는 무척이나 달랐다. 좁은 길에 온통 돌로 지은 집들이 답답할 정도로 즐비했고 이발소, 과일가게, 주택가가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변하지 않은 것은 예수님이 걸었던 ‘발자취’뿐인 듯했다. 십자가의 길은 ‘채찍 성당’에서 시작됐다. 빌라도 재판정은 현재 아랍계 초등학교로 사용되고 있어 출입할 수가 없었다. 세계 도처에서 몰려든 인파로 인해 순례객들은 대열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보조를 맞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드리며 움직였다.

골고타 언덕 향해 가는 십자가의 길

골고타 언덕을 향해 가는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과의 ‘진정한 동행’이었다. 10처부터는 골고타 언덕 위에 세워진 콥틱(Coptic) 정교회 건물 안에 자리한다. 콥틱 정교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예수님이 못박혔던 십자가 자리가 원판으로 표시돼 있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렸던 곳에는 커다란 직사각형 모양의 돌이 놓여져 있어 순례객들은 모두 양손을 뻗고 엎드려 경배했다. 또한 예수님께서 채찍질 당할 때 묶여 있던 돌기둥도 손으로 만져 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과거 공개됐던 예수님의 무덤은 성당 안의 또 다른 3층 높이의 보호건물에 가려 볼 수가 없다.

예수님이 골고타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힐 때 십자가가 서 있던 자리를 표시하는 원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진 자리에 놓여진 돌에 순례객들이 엎드려 경배하고 있다.

박지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