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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인터뷰] 한국 여성 작곡가의 대모, 이영자 교수

이지연 기자
입력일 2011-11-15 수정일 2011-11-15 발행일 2011-11-20 제 2771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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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순간까지 음악 열정 불사르리라”
1956년 데뷔 … 음악 향한 열정 ‘현재진행형’
오는 20일 연주회 열며 56년 작곡 인생 정리
“혼 다할 때까지 평화·사랑 담은 작품 만들 것”
팔순을 맞아 작품발표회 ‘내 혼에 불을 놓아’를 여는 이영자 교수. 그는 “이번이 마지막 작품 발표회이지만 죽을 때까지 작품을 쓸 것”이라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내비쳤다. 사진·오혜민 기자
한국 여성 작곡가의 ‘대모’, 첫 유학파 한국 여성 작곡가 등. 작곡가 이영자(클라우디아·80·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전 이화여대 교수 앞에 붙는 수식어는 한두 개가 아니다. 팔순의 나이에도 여전히 작곡 열을 불사르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이 교수를 서울 반포동 자택에서 만났다.

■ ‘음악’ 수렁에 빠진 열정의 작곡가

“호랑이가 수렁에 빠지면 나오려고 갖은 노력을 해도 나올 수가 없잖아요. 나도 마찬가지예요. 음악이라는 수렁에 빠져서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어요.”

이영자 교수에게 음악은 ‘혼’이다. 1956년 데뷔해서 작곡인생 56년 동안 음악에 대한 열정이 식어본 적이 없다. 그의 음악 인생은 그보다 더 앞선다. 처음 피아노를 접했던 것은 10살 때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피아노를 가르쳐 줬다. 이 교수는 이를 두고 “보이지 않는 뮤즈의 힘이 저에게 온 것”이라며 “이것이 내 음악인생의 시발점”이라고 말했다.

춘천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에 입학했다.

하지만 한 달 만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말았다. 친인척 하나 없이 서울에서 지냈던 그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3일 동안 걸어서 겨우 도착한 고향에도 아는 사람 하나 남지 않았다. 피란 간 가족들은 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다. 전쟁 통에 살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90일을 버텼다. 북한군을 피해 빈 집에 들어가 생활했다. 먹는 것도 부실할 수밖에 없었다. 몸무게가 35kg까지 됐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마음 아픈 경험이었다.

“그때 결심했어요. 하늘을 보면서 기도했어요. 내 혼이 닳아 없어지도록 다른 사람 마음에 평화와 사랑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쓰겠다고요.”

1953년 전쟁이 끝나고 이듬해 작곡가로서 첫 작품을 써서 1955년 발표했다. 그 작품이 바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955’이다. 이 작품을 보고 스승인 작곡가 나운영씨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더불어 나운영씨는 이 교수에게 유학을 추천했다.

“모두가 가난하던 시절이잖아요. 그런데 나운영 선생님께서 어떻게 하든지 꼭 유학 가라고 했어요. 외국에 가서 현대음악을 공부하라고 하셨어요. 나 선생님은 저의 두 번째 뮤즈인 거죠.”

그가 걸어온 음악가의 길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작곡이 생소하던 시절 유학을 떠났고, 여성작곡가의 대모로서 많은 어려움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있기에 자신감 넘치고 열정적인 모습의 이영자 교수가 존재할 수 있었다.

“물론 제 음악을 비판하는 분들도 계시겠죠. 하지만 어떤 분들은 음악 안에서 저의 혼을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또 음악을 통해 이영자의 가슴과 관객의 가슴이 연결되는 것을 알 수 있을 거예요.”

팔순의 나이는 작곡하기에 적지 않은 나이다. 그럼에도 그는 작곡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여름에 넘어져서 고관절이 깨졌어요. 몇 달을 가만히 누워있는데 머리에서 작품이 막 떠오르는 거예요. 멀쩡할 때 한 줄도 안 나오더니 배 속에서 뭉클뭉클 올라오더라고요. 그래서 결심했죠. 죽을 때까지 해야겠다. 연필을 잡을 힘만 있으면 해야겠다고요. 혹시 알아요. 말년의 음악에서 이영자의 히트곡이 나올 수도 있잖아요.”

■ 내 혼에 불을 놓아

이 교수는 20일 오후 3시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작품연주회를 연다. 이번 음악회는 팔순을 기념하는 동시에 열세 번째 작품 연주회다. 연주회 타이틀은 ‘내 혼(魂)에 불을 놓아’다.

“젊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저 늙은 사람으로 밖에 볼 수도 있지 않겠어요? 사실 늘그막에 작곡하기란 쉽지 않아요.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상당히 어렵죠. 그렇기 때문에 불을 사르지 않으면 할 수가 없는 일이에요.”

‘내 혼에 불을 놓아’는 이해인 수녀가 1979년 발표한 동명시집에서 영감을 얻었다. 음악회 중에는 동명의 곡이 연주되기도 한다. 1995년 KBS 가곡의 대향연에서 초연했던 작품이지만 그 이후에는 한 번도 연주된 적이 없었다. 이 교수는 복잡한 곡이라 성악가들이 힘들어하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는 한 번 선보이고 싶었다고 전했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955’도 연주된다. 이 교수의 초기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또한 ‘박경리 시에 의한 세 편의 노래-그리움, 기억, 내 모습’도 이번 무대에서 초연된다. 연주회 마지막 곡 ‘엘가의 사랑의 인사 주제에 의한 하프와 피아노를 위한 환상적 변주곡’도 역시 초연 작품이다. 이 교수의 딸 피아니스트 한난이씨와 하피스트 한준영씨가 연주한다.

“고(故) 박경리씨는 소설가잖아요. 그런데 2006년 미국 뉴욕 한국서점에서 박경리씨의 시집을 보고 허구를 창작하는 사람이 쓰는 시는 어떨까 궁금했어요. 읽어 보니 시들이 굉장히 담백하더라고요.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어린 시절 소설가를 꿈꿨다는 이 교수는 시와 수필에 대한 관심이 많다. 실제로 지난해 ‘현대수필’로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한 그는 연주회에서 수필 스승인 윤제천씨의 수필 ‘구름카페’로 곡을 쓰기도 했다.

이번 연주회는 이 교수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작곡가로서 마지막 연주회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부터 환갑, 고희, 희수, 팔순 작품연주회를 계획했다던 이 교수는 11월 20일이 지나고 나면 힘이 다 빠질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음악회까지만 하고 쉬자 생각했어요. 아직까지는 정신이 맑으니깐 작품을 발표하고 그 다음부터는 즐겁게 살고 싶어요. 제가 이렇게 말하니까 제자들은 두고 보라며 또 할 거라고 하더라고요.”

※문의 02-2266-1307

피아노를 치는 이영자 교수의 모습. 이 교수는 10살 때 처음 피아노를 배우게 된 것이 56년 음악인생의 시발점이라고 말한다. 사진·오혜민 기자

▤ 이영자 교수는

1931년 6월 강원도 원주 출생으로 춘천여자고등학교,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 및 동 대학원을 거쳐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음악원과 뉴욕 맨해튼 음대, 벨기에 브뤼셀 왕립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했다. 이후 프랑스 파리 Ⅳ-소르본 대학에서 음악학으로 D.E.A학위를 취득했으며, 1961년부터 이화여대 음악대학 작곡과 교수로 재직했다.

대학원 재학시절 문교부 주최 제4회 전국 음악 콩쿠르 작곡부문 수석입상(1956)으로 데뷔, 제8회 대학민국 작곡상, 올해의 음악가상, 한국음악상, 제27회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상, 2010 한국음악대상 등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선출됐다. 또한 1981년 ‘한국여성작곡가회’를 창립, 초대회장을 역임했으며, 이외에도 아시아 작곡가연맹 한국위원회 회장, 한국작곡가협회 부회장 등을 맡은 바 있다.

대표 작품으로는 관현악곡 광복 30주년 위촉 ‘축전 서곡’, 광복 50주년 위촉 칸타타 ‘대한민국 찬가’, ‘음악인 찬가’ 등이 있다.

이지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