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취재 현장속으로] 서울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농부학교, 제6기 현장실습

이우현 기자
입력일 2011-10-25 수정일 2011-10-25 발행일 2011-10-30 제 2768호 12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흙 밟고 생명 키우는 새 삶 꿈꾸고 있어요”
농사로 수익 내려면 5~6년 걸려
환상 버리고 체계적인 준비 필요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회원들이 22~23일 전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지리산분회를 찾아 농사일을 하고 있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청산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

작자 미상의 고려가요, ‘청산별곡(靑山別曲)’ 첫 부분이다. 해석이 분분하지만 글자 그대로 ‘청산’은 시름에 잠긴 이들에게 이상향이자 현실과 대조되는 공간이다. 작자는 현실의 각박함에서 벗어나 자연을 먹고, 자연에 묻혀 사는 삶을 바란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자연으로의 귀의는 꽉 매인 속세를 떠나 주님이 주신 자연의 품을 깨닫는 가장 원초적이고, 소박한 바람일 터. 서울대교구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본부장 조해붕 신부)가 마련한 농부학교는 이러한 바람을 가진 이들이 모여 생명농업과 마을공동체에 대한 강의 및 토론, 현장실습 등을 통해 생각을 전환하고 땅과 함께하는 삶을 모색하고 있다.

지난 22~23일, 농부학교 제6기 회원들이 ‘청산’, 자연으로 떠났다. 전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지리산분회(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입석리)로 현장실습에 나선 것. 이들은 1박 2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실제 농사일을 배워보고, 그 속에서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법을 체득했다.

■ 하늘·땅·밥·농부

명절 귀경길 같은 정체를 뚫고 한참을 달린 버스가 전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지리산분회 김영길(사도요한) 분회장의 집 앞에 섰다. 일행이 버스에서 내리자 신선한 땅 내음이 들숨으로 파고들었다. 자연과 한 발짝 더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눈앞에 펼쳐진 지리산의 경관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리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점심때를 훌쩍 넘겨 도착한 일행에게 안주인 이철승(체칠리아)씨가 식사를 대접한다. 직접 기른 각종 나물과 고추장을 넣어 쓱쓱 비빈 비빔밥 맛이 일품이다. 두 그릇은 기본, 세 그릇은 선택이다.

식사를 마친 일행에게 본격적으로 주어진 일은 고춧대 뽑기와 밭 정리. 호미, 똥, 하늘, 밥, 지게, 땅 등 몇 개 모둠별로 나뉘어 각 고추밭으로 이동했다.

한쪽이 고추 줄기를 받치던 노끈을 잘라내면, 한쪽에서 고춧대를 뽑아낸다. 서툰 손길이지만 정성만큼은 깊다. 자연이 좋아, 땅이 좋아 찾아왔기에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허리를 굽혔다 펼 때마다 보이는 하늘?땅도 다르게 느껴진다.

정석현(하상바오로·서울 송파동본당)씨는 “이렇게 일을 하다보면 낭만과 로망으로 보이던 농사일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게 된다”며 “무엇보다 찬란하다고 표현해야 할 정도로 아름다운 이 자연 풍광을 우리가 지켜나가야 한다는 사실도 배우고 있다”고 밝혔다.

귀농, 귀촌을 꿈꾸는 젊은 부부도 배우는 자세로 열심이다. 박지영(로사·서울 명동본당)씨는 “남편과 함께 5년 안에 귀농, 귀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며 “농부학교에서 다양한 강의와 실습을 통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일들이 구체화되는 것 같아 즐겁다”고 말했다.

하나둘씩 손발이 맞아나가니 일에 가속도가 붙는다. 척하면 착, 노끈을 끊는 가위소리와 대를 뽑는 소리에 리듬이 맞아떨어진다. 금세 밭 하나가 깨끗하게 정리됐다.

■ 대화마당 ‘귀농 바로 알기’

일을 마치고 한자리에 모인 농부학교 제6기와 전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지리산분회 식구들 사이에 자연스레 대화가 오간다. 김영길 분회장은 농촌 생활이 생소한 농부학교 일행에게 귀농생활 10여 년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귀농을 하게 되면 먼저 땅부터 사겠다고 생각하지만, 땅을 사는 것은 나중 일입니다. 귀농자가 농사로 어지간한 수입을 벌려면 귀농 이후 5~6년이 걸리지요. 그 전에는 기술과 판로가 부족하기 때문에 ‘맨 땅에 헤딩’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요. 지역과 작물을 다양하게 경험하면서 자신에게 맞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농부학교 일행은 대화를 통해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귀농, 귀촌생활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는다. 귀농, 귀촌생활이 기대감이 아닌 실생활로 다가오자 일행의 마음이 더욱 분주해졌다. 김 분회장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일행은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귀를 기울인다.

“요즘 귀농, 귀촌은 문화가 많이 달라졌어요. 제가 처음 귀농했을 당시와 달리 그 인원도 정말 많아졌지요. 이 주변에도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무엇보다 농사일은 단순노동에다 외로운 일입니다. 주위에 말벗이 있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때문에 귀농을 원한다면 꼭 배우자, 가족 등과 상의해 함께 오시는 것이 좋습니다.”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자연을 상대하고, 자연을 길러내는 것은 혼자만의 힘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일행은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이야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김 분회장의 부인 이철승씨가 직접 담근 햅쌀 막걸리와 안주거리가 나왔다. 지리산분회 식구들과 일행은 그제야 농사일에 지친 몸의 긴장을 풀고, 시끌벅적한 친교를 나눴다.

■ 다시 일상으로

둘째 날, 인월장 구경과 인월공소에서의 미사 봉헌 등 일정이 마무리됐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언제나 아쉬움이 남는다. 자연에 몸을 맡긴 1박 2일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1박 2일의 짧은 경험은 이들에게 우리 땅,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몸소 깨닫게 해줬다.

일행은 잠시나마 소박한 꿈을 꾸는 농민이 됐다. 그리고 오늘 배운 것이 내일의 소중한 밑거름이 됐다. 돌아오는 버스 안, 일행은 다시금 자연의 품으로 돌아올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손화선(클라라·서울 논현2동본당)씨는 “일찍 시작하신 분들의 삶을 직접 와서 겪어보니, 부럽기도 하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며 “이번 일정을 통해 배운 것들이 나중에 나만의 농사를 지을 때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전했다.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농부학교 제6기 회원들이 고추밭에서 일을 거들며 농촌 현장 체험을 하고 있다.
농부학교 회원들과 전주교구 가톨릭농민회 지리산분회 식구들의 기념촬영.

이우현 기자